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바리공주
김선우 지음, 정경심 그림 / 열림원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불나국의 공주라 했다.
딸아이로 태어났기에 버려졌다 했다.
버려진 아이라서 바리공주라 했다.

첫꽃이 비친 어느 날,
버릴 아기에게 피로 쓴 글씨를 남긴
누군가의 흔적이 사무쳐서 울었던 바리공주.

병든 아비가 자신을 찾을 때,
버린 자식이면서도 조건을 따지는 게 하 우스워서
아비의 피를 받아 합혈을 해보고야 궁으로 향한 바리공주.

정작 어미 아비를 보자 원망이 다아 풀리고
열 달의 피값을 갚으러 떠났다던가.

검은 빨래 희게 빨고 흰 빨래 검게 빨아
남을 위한 마음으로 바람도 이기는 돌탑을 쌓고
밭 갈며 염주 만들며 지난 서천서역 구만 리.

무장승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 후에 돌아갔지만
보이는 건 이미 싸늘한 아비의 시신.

뼈살이 피살이 살살이 숨살이 꽃으로 아비를 살리고
나라도 재산도 싫다며 버려진 것들의 원과 혼을 이끌겠다했지.

옛날 옛적에 간날 저 갓적에 아장지 설적저게…
영문 모르고 버려지는 것들의 슬픔이 있는 한
오늘도 바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시인이 조곤조곤 풀어놓던 바리의 이야기. 원래의 글에서 1연과 마지막 연의 1행을 빌어와 나름대로 그녀의 사연을 풀어봤달까. 섬세한 내면묘사와 수채화풍의 그림이 어우러지던 원작의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김선우의 바리공주를 떠올리면,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함께 그려진다. '세상이나 한 사람이나 다 같다. 모자라구 병들구 미욱하구 욕심 많구.'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가엾지.'라고 덧붙일 수 있는 바리. 왜 그녀가 무조신이며, 모든 버려지는 것을 품을 수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리고 생각나는 또 하나의 바리, 김혜린의 꽃바리. 작가의 말마따나 밑바닥 인생이면서 '사랑, 사람, 삶… 부르다보면 같아져 버리는 저 몇 마디 때문에 이 빌어먹을 세상이 그래도 참 예뻐.'라고 노래하며 꿋꿋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그들에게 주어진 바리라는 이름이 그들의 삶을 결정짓고, 그들이 살아나가는 모습이 다시 바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참 따뜻했다. 나 역시도 그의 품에서 쉴 수 있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책
Anonymous 지음, 조영학 옮김, 이관용 그림 / 서울문화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름 없는 책.’ 사실 책 제목치고는 낯설다. 저마다 자신의 이름 알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데 이름이 없다니. 작가 역시도 마찬가지다. Anonymous? 작자 미상이라고? 당신 대체 누구야! 라고 말하고픈 심정.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읽는 텍스트와 책 속의 책이 묘하게 겹쳐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끝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Chapter 1은 5년 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금연과 금주가 중죄가 되는 술집 타피오카. 담배 연기에 찌든 누런 벽과 술집 특유의 냄새가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자마자 그 곳에 이방인이 나타난다. 버번을 주문한 이방인에게 바텐더는 장난을 치고, 술집의 단골들은 텃세를 부린다. 그 모든 걸 다 무시하고 이방인은 버번을 비우는데……. 그리고? 모든 것은 상상에 맡겨둔 채 서술은 5년 뒤를 향한다. 
 Chapter 2에서는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수사 두 사람이 후발을 떠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어둠이 다가올 때 악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달의 돌.’ 그들이 향하는 곳은 5년에 한 번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도시 산타몬데가.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 과연 이들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산타몬데가에 있는 달의 돌. 사실 모든 문제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할렘을 연상케하는 술집들이 묘사되고- 그 사이에서 전경화되는, 절대로 마음씨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바텐더와 힘 좀 쓴다는 현상금 사냥꾼, 우연히 굴러들어온 행운(?)을 잡은 남녀, 이들과 교차되는 많은 사람, 사람들. 여기에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형사와 전설로 남은 버번 키드의 이야기가 섞여들며 Chapter 65까지 숨가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니, 달려간다. 도저히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끝을 향해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가 버번을 들이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시작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대하게 된다. 과연 다음 작품이라는 <달의 돌>에서는 이름 모를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또 얼마나 치밀하게 풀어놓을지. 


덧.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즐겁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짧은 덧말을 통해 수많은 영화 속 인물과 대사를 겨우 따라다닌 나와는 다를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