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책을 다루는 책은 많지만 읽을 만한 걸 찾기는 어렵다. 책에 관한 (좋은) 책을 쓰려면 우선 책을, 특히 양서를 많이 읽은 사람이어야 하고, 책에 대해 편협하지 않으면서도 확고한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목은 개인적인 것임에도 많은 이들을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책을 읽어야 책에 대해 노련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중년 이상이어야 하고 책 읽는 것이 업에 가까운 작가이거나 학자인 사람이 그나마 (내가 원하는) 책에 관한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헤세는 내가 원했던 저자였던 것 같다. 그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쉽게 한다. 책을 소재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 유파에 경도되지 않는 태도, 개인의 내면을 만물의 근본으로 바라보는 시선, 청춘에 대한 관대하면서도 날카로운 포착 등 (책을 많이 읽은) 한 현자의 에세이를 편안히 읽는 기분이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허세도, 다른 작가나 작품을 재판하겠다는 오만도 느껴지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 이전에 헤세라는 인간에 대한 호의와 믿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말하는 독서의 의미, 책의 매력, 문학과 사조, 트렌드에 대한 성찰, 나아가 틈틈히 내비치는 삶에 관한 통찰이 나의 것과 맞닿을 때, 마치 헤세가 내 삶을 보듬는 느낌이었다.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깊으면서도 포근한 에세이였다. 헤세의 매력을 뒤늦게 깨닫는다. (2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