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서 돈키호테가 누군데요
‘돈키호테’가 하나의 전형적 캐릭터를 나타내기 위한 대명사로 여기저기 쓰이는 걸 오랫동안 봐 왔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 또는 누군가를 ‘돈키호테’라 칭할 때마다 대체 무슨 의미인 건지 궁금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얕은 의미에서 더 나아가 기원이 된 소설 돈키호테에서 그린 그 인물의 입체적 모습도 궁금했고.

돈키호테에 대한 아무런 상식이 없는 내가 생각했던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용맹한 모험 기사,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피끓는 청년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는 예상밖의 인물이었다. 400년 전이었다면 노년기였을 50대의 말라깽이 남성에, 당시 오락물로 유행했던 기사 소설에 미친 사람. 기사 소설에 파묻혀 지내다 미친 나머지 결국 소설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웃긴 몰골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기사로서의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는 일상의 공간과 사물, 인간들에게 기사 소설의 겹을 씌워 괴상한 의미를 부여하고 웃음거리가 될 만한 소리를 일삼는 사람이었다. ‘돈키호테’가 근대인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하던데, 국가와 종교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을 그로부터 독립시키고 심지어 그 위에 군림하듯 행동할 정도로 ‘미친’ 인물이어서 그런 걸까?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에 미쳐버렸다는 설정 덕분에 기존 관습을 뒤엎는 소리를 길게 뱉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왕의 명령을 따라 죄수를 이송하는 군사들을 공격하여 포로들을 풀어주고, 성모 마리아상을 옮기던 사제들을 공격하여 국가에 반역하고 종교를 모독한다.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사랑은 또 어떻고. 다른 책이나 노래 가사에 ‘돈키호테’가 등장하면 사랑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용맹한 기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어떤 여자와 사랑을 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기사도’ 이미지에 필요한 덕목으로서 잘 알지도 못하는 마을의 한 여자를 자의로 ‘자신이 열렬히 구애하며 목숨 걸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이유’라는 자리에 앉히고 매번 말만 읊는다. “오, 제게 전투의 힘을 부여하시며 저의 유일한 마지막 종착역인 둘네시아여” 운운. 심지어 귀족도 아닌 사랑엔 관심도 없는 거친 여자를 귀족이라 이름 붙이고서 말이다.

과연 ‘돈키호테’를 대명사로 쉽게 쓰는 사람들 중 실제로 돈키호테를 완독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돈키호테라는 소설에서 그린 인물과 오늘날 사람들이 공유하며 발화하는 돈키호테의 사회적 의미는 구분하여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부화뇌동을 하지 않은 자만이 살아남는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당시 오락 소설로 소비되었던 듯한 기사 소설이 자기 복제 수준으로 넘쳐 나던 시절에 이를 패러디하듯 변형한 형식이어서 유머러스하고,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고 다양한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등장해 마치 긴 연재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정도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이 때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몇 백 년 동안 살아남는 건 그 시대의 시류 속에 푹 절어 있던 수백 개의 유사한 버전들이 아니라, 그 시류를 파악하고 그 흐름을 갖고 놀 줄 아는 자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구분점을 만들어낸 자의 작품, 그것만이 긴 시간을 통과할 줄 안다는 생각을 책 읽는 내내 했다.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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