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명예와 아름다움과 정조와 정숙함의 광맥은 그것이 가지고 있으며 네가 원하는 모든 부를 아무런 수고 없이 너에게 주고 있는데, 너는 뭣 때문에 땅을 더 깊게 파서 새로운 광맥을 찾고 어느 누구도 본 적 없는 보석을 찾으려 하는 건가? 광맥이 모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위험에 네 몸을 맡기면서 말이다. 결국 광맥은 나약한 본능의 아슬아슬한 발판으로 지탱되고 있으니, 불가능한 것을 구하는 자는 가능한 것으로부터 거부당하는것이 이치이다. 어느 시인이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지.
나는 죽음에서 삶을, 병에서 건강을, 감옥에서 자유를, 갇힘에서 출구를, 배반자에게서 충성을 찾노라. 그러나 한 번도 좋은 일을 기대해 보지 못한 내 운은 하늘과 합의를 보았으니, 내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기에 가능한 것도 내게 주지 않기로 말이다. (525-526, <당치 않은 호기심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다) - P525
그런데도 그 이상은 쓰지 않았습니다. 내 직업과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신중한 사람들보다 단순 무식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러한 책을 읽게 될 대다수의 교만한 속인들의 황당한 비판에 매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말입니다. 물론 많은 바보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몇 안 되는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게 더 낫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무엇보다 그 글을 끝까지 써보려는 마음을 내 손에서, 더 나아가 내 생각에서 앗아간 것은, 요즘 상연되는 연극을 보고서 내가 나름대로 정리한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극들은 창작물이건 역사물이건, 전부 혹은 대다수가 엉터리로 발도 머리도 없는 괴물이라는 거죠. 그런데도 속인들은 즐겁게 보고 들으며 훌륭하다고 인정한단 말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쓴 작가들과 그것을 상연하는 배우들은 다른 방식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써야만 속인들이 좋아한다고 주장한단 말이죠. 예술이 요구하는 대로 기획되고 제대로 된 줄거리를 갖춘 작품들은 불과 너덧 명의 생각 깊은 사람들만을 이해시킬수 있을 뿐 그 밖에는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런 예술적 장치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소수의 의견보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먹을 것을 얻는 편이 낫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앞서 말한예술의 법칙을 지키려고 기를 쓰며 책을 끝내봤자 그런 운명에 처해질 것이 뻔하고 결국 헛수고만 하게 되는 셈이지요. (726-727, 교단 회원이 기사 소설과 그의 지혜에 합당한 다른 문제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다) - P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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