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이 강도 살인의 피해자는 한 명이었다. 요새 같으면 분명 사형이 아니다. 컬트 집단의 테러 행위에 가담하여 무차별하게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가, 자수가 인정되어 무기 판결을 받은 것은 아직 기억에 생생한 일이다. 왜 이 남자는 사형이 아니고, 50년 전 여성 피고인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졌을까? 형법이 그 강제력으로 지키려는 정의는 어쩌면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닌 참사관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11쪽
아무리 아들을 잃었어도 남겨진 아버지에게는 지켜야 할 생활이 있는 것이다. 매일 세 차례씩 먹고, 싸고, 자는 것. 지인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노동으로 수입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바닷가의 단독 주택에 사는 우츠기 내외나 준이치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되풀이해 왔을 것이다. 이따금 밀려오는 힘든 기억에 일손을 놓고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며. 준이치는 애절함을 느꼈다. 사무라 미츠오에게 왜 좀 더 성의를 다해 사과하지 못했는지 후회되었다. 범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침투하여 그 토대를 들어내는 것이다.-131쪽
"자, 보라고. 이건 양자 택일이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두 사람이 물에 빠졌어. 한 명은 죄없는 사형수, 또 한쪽은 강도 살인범이야.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나?" 준이티는 머릿속에 그 답을 내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범죄자의 목숨은 범한 죄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준이치의 등에 차가운 것이 지나갔다. 상해 치사죄를 범한 자신의 목숨은 그만큼 가벼워진 것일까.-156쪽
그러한 일련의 관찰에서 난고가 얻은 결론은 사형수가 죄를 참회했다 해도, 이는 사형 판결을 받았기에 일어나는 결과라는 것이었다. 즉 응보형 사상이 지지하는 사형 판결에 의해 목적형 사상의 목표인 회오의 정(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을 유인해 냈다는 공교로운 현상 말이다. 그리고 지금 160번의 종교적 지도에 관한 내용을 접하며 난고는 또 하나의 얄궂은 감개를 느꼈다. 종교 지도에서 보이는 태도는 사형 확정수의 심적 안정을 측정하는 기준이며, 이는 형 집행시기의 결정 요인이 된다.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안식을 얻은 자일수록 빨리 처형당하고 마는 것이다.-184쪽
'나는 안 했어…….' 목숨을 구걸하는 470번 목에 밧줄을 건 행위는 그래도 옳았노라고 난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160번의 경우는 어떨까. 감형을 호소하는 유족의 편지가 말해 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천편일률적인 법제도로 심판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187-188쪽
난고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얄궂은 미소를 띠었다. 같은 해에 체포된 사카키바라 료가 이미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 오하라는 아직 확정도 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재판 제도가 지닌 문제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을 범한 경우,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인 쪽이 심의 과정이 지체되면서 오래 살 수 있다.-215쪽
형사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점멸했다. 큰일났다 싶어서, 형사가 물었다. "당신 누구요?" 상대방이 대답했다. "난고 쇼지의 쌍둥이 형, 쇼이치입니다." "이런 데서 뭘 하시나요?" "저만 대학에 갔거든요." 난고 쇼이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동생에게 빚을 갚으려고요."-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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