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구판절판


"그만큼 범인이 영악하게 움직였다는 얘기인가. 근데 그렇게 영악한 사람이 범행 장소는 상당히 경솔하게 택했단 말이야. 이런 좁은 곳에서 사람을 죽였으니 발레단 관계자 말고는 용의자가 없다는 걸 광고하는 셈이잖아. 그렇지?" 도미이의 말에 몇몇 수사관이 동의했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사람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가는 범인이 경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미이는 발레계가 얼마나 폐쇄된 세계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범인은 자신과 가지타가 관련된 다양한 기회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끝에 공간적으로나 인간관계 면에서나 가장 넓은 곳이라고 생각해서 이번 장소를 선택한 게 틀림없었다.-110쪽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잠을 자다니……." 미오가 그 남자를 보며 말하자, "저것도 나름대로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에요."라고 가가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말했다. "저 사람은 술에 취해 푹 자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은 거예요. 시합 같은 건 아무려나 상관없죠. 어쩌다 눈을 떴을 때 야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게 뭐가 재미있어요?"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레스 해소는 되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기 위해 야구장에 와요. 큰 소리로 야유도 하고 응원도 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야구장이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이 많다는 얘기겠지요?" "그런 사람은 발레는 안 볼까요?" "음, 아마 안 볼겁니다"라고 가가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발레를 즐기는 건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국민은 그중 어느 쪽도 아니에요. 다들 지칠 대로 지쳐 있다고 할까." "어째서 그렇게 지친 걸까요?" (이어서)-149-150쪽

(이어서) "사회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에요. 기계체조 같은 데서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죠? 그럴 때 가장 괴로운 건 가장 아랫단에 있는 사람들입니다."-150쪽

"꿈을 품은 사람에게는 그 힌트가 무한대로 널려 있는 도시예요. 그래서 그걸 모조리 흡수하고 가져오고 싶은데, 그게 도무지 안 되는 거예요. 사막을 청소기로 깨끗이 청소하려는 식이죠. 결국 저마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뭔가 꿈을 이루고 싶다, 라구요. 그러면 별다른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곳인가. 인간은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압박감 따위는 말끔히 잊게 해주는 도시예요. 날마다 새로운 자극을 누릴 수 있죠. 그런 사람은 그 나름대로 생각해요. 계속 여기서 살고 싶다, 라구요." (중략) "근데 당신은 왜 일본에 돌아왔어요?" 그러자 그는 몹시 씁쓸한 뭔가를 입에 넣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힌트는 무수하게 널려 있죠. 하나에서 열까지 죄다 힌트예요. 하지만 답을 찾아낼 수가 없어요. 그걸 깨달으면 문득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지금 마침 그런 시기였다는 얘기죠. 이러다가도 조금 지나면 다시 뭔가를 알듯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다시 힌트를 찾아 뉴욕행 비행기를 탑니다. 네, 그게 자꾸 반복되는 거예요."-72쪽

"당연하죠. 댄서는 그런 짓은 안 해요. 아니, 못하죠. 드라마 같은 데서 프리마 자리를 노리고 상대를 함정에 빠뜨린다는 촌스러운 스토리가 자주 나오죠? 근데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요. 댄서라는 건 춤에 대해서는 결벽증이 있고, 타인과의 실력 차를 객관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법이에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밀어내고 자신이 춤을 춘다는 건 본능적으로 못해요. 그 역할을 갖고 싶을 때는 실력으로 겨룬다, 그것밖에 없지.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우아해 보이지만 생존경쟁이 엄격한 세계라구요."-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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