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의 단편집.   

어전찌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의 모음이었다. 뭐랄까 예전의 나, 특히 십대의 내가 정말 좋아했을 것 같은 이야기들. 그렇다고 지금 이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십대 후반의 내 안에 남아있는 십대시절의 나를 자극하고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는 말. 퇴폐적인 것들에 끌리면서도 결벽성이 있었던 그 시절의 나...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은 <봄이여 오라>,<작은 갈색 병>, <어느 영화의 기억>, 그리고 표제작 <도서실의 바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장편작과 관련성이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존재감이 있어서 이 단편집으로 먼저 온다 리쿠의 세계에 들어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장편을 읽었다면 그 관련성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을 듯. 난 <황혼녘 백합의 뼈><밤의 피크닉><흑과 다의 환상>정도를 읽어본 것뿐이라 이제부터 관련 장편을 더 찾아읽고 후에 이 단편들을 곱씹어보려고 한다.  

 이 작가 풍경묘사도 심리묘사도 과하지 않고, '아! 정말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야!'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줘서(개인적으로 이런 점이 두드러지는 작가를 특히 선호함;; 대표적인 예가 미야베 미유키 님!!!) 마음에 든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거지? 그것도 참신하게!?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 번 자극 받았다. 그러고보면 그 꿈도 '퇴폐적인 것들에 끌리면서도 결벽성이 있었던' 십대시절 품었던 건데...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후에 적막한 도서실에서 친구와 그런 꿈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그 내가, 그 시간들이 그립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노스탤지어>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것처럼

   
  그리움, 그것만이 우리의 짧은 인상을 증명해 주는 증거다. 수많은 기억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든다.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니까.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 하지 않으면... 

  

+더 읽고/더 보고/더 들을 것: 시어도어 스터전<당신의 피를 조금>, 잇시키 지로<청환기>(소설/영화), 다치하라 에리카<사랑에 빠진 마녀>, 미나가와 히로코<묶다>, 온다 리쿠<여섯번째 사요코> 외, 미국 포크송이라는데 '작은 갈색 병'이라는 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마디로 낡은 느낌이 좋았던 책. 마치 변사가 해설해주는 듯한 문체며, 전후 배경이지만 훨씬 더 옛날을 배경으로 한 듯한 분위기(이누가미 일족=영주 같은 느낌)가  이 가족살해극을 더욱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가면을 이용한 바꿔치기 트릭 같은 건 알아차리기 쉬운 거고,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꼬여버린 상황은 어떻게 보면 추리물로써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해결편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우연히 이러이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 김이 빠지니까) 음습하고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그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 것 같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이자(;;) 일본의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씨는 형사 콜롬보 같은 느낌. 이 책을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이 시리즈 다른 책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약속시간이 되길 기다리다가 집어든 책.
추리소설이 고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악의>라는 제목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제목만 보고 문득 떠올린 이미지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인데 다 읽고 보니 노노구치가 품고 있었던 엄청난 '악의' 역시 '독'이라는 점에서는 내 느낌이 맞았네.

이 소설은 굉장히 신선한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처음 몇 챕터(노노구치의 수기)를 읽는 사이에 나는 이미 서술자 '노노구치'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고 도대체 히다카를 살해한 것이 누구인지 관련인물들을 살피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장(가가형사의 독백)에서 노노구치가 용의자이며 그러한 혐의에 대한 상당한 근거가 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결국 놀라운 뒷 사정과 함께 노노구치가 범인임이 밝혀지는데... 여기까지가 소설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아니, 이 이후로 대체 무엇이 펼쳐지는 거지?'하고 독자(나)가 당황하는 시점에서 가가 형사가 다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다. 경찰이 밝힌, 그리고 노노구치가 인정한 '진상'은 과연 진실인가. 여기서부터가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다. 제목 '악의'의 주체가 완전히 역전되면서 인간이 그렇게까지 파괴적인 '악의'를 품을 수 있는가하는.. 하지만, 역시 그럴 수 있다. 가가 형사가 '이해'했듯이 나 역시 알 것 같았다. 뭐라고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쌓이는 악의... 무서운 일이다. 그런 악의가 내 안에도 잠재하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작가가 쳐 둔 덫(?)에 제대로 걸려서 노노구치 입장에서 읽기 시작했고 내 안에도 노노구치가 품고 있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끝끝내 노노구치의 '필생의 작품'을 깨부수어버린 가가 형사가 깐죽깐죽 콜롬보마냥 얄미웠다; 노노구치를 옹호하자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다.(범인부터 알려주고 시작하는 콜롬보 볼 때도 늘 이런 범인의 기분이 됐는데;; 이건 다 구성탓??)

내 인간성에 대한 회의(?)를 남겨주었지만(이건 진짜 한 번 생각해봄직 하다-_-)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놀라웠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추리소설의 세 가지 요소 who/how/why 중 why에 중점을 둔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