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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절판


"엄마도 학교에 다녔어?"
"그럼."
소녀는 이상한 듯 사진을 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엄마에게 학창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나도 옛날에는 그랬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머니'라는 고유한 존재였다. 엄마의 엄마라서 '할머니'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생명이 연속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대체 몇 살쯤이었을까.
<봄이여 오라> 中 -17쪽

"그 애, 퇴근하고 무슨 학원이라도 다니는 걸까."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스물예닐곱 살은 사무직 여직원들이 고민하게 되는 나이다. 회사 안에서 자신을 추구할 것인가. 밖에서 추구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회사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결혼 계획이 있다든지 다른 목표가 있다든지, 그렇게 바깥세계가 있는 사람은 드라이하다. 감정의 서식지를 분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호 노리코는 명백히 후자였다.
<작은 갈색 병>中-36쪽

그러나 나는 어딘지 모르게 지금의 가족에게서 풍기는 가짜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임시변통, 진짜가 아닌 것. 나는 그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을 연기하는 법을 익혔다. 미노루앞에서는 예쁘고 완벽한 여자애를, 와타루 앞에서는 쾌활하고 소년같은 누이동생을, 할머니 앞에서는 야무지고 손이 가지 않는 손녀를. 여자애는 만들어진다. 남자애와 어른의 눈이 여자애를 만든다.
<수련>中-80-81쪽

다카코는 늘 침착하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같은 반이 된 날도 놀란 것 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듯했던 표정이 인상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노여움이 그녀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도오루에게는 답답했다. 도오루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데, 다카코는 늘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피크닉 준비>中-132쪽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일렁이는 사람뿐이다. 물 위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깜박이는 사람, 빛나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 형태를 불문하고 주인공의 성장을 테마로 하는 이상, 이 조건은 아마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즉 자기처럼 고민하지 않는 사람,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로서도 에피소드가 너무 없지 않나.
<도서실의 바다>中-185쪽

가쓰야는 동안인데다가 늘 방글방글 웃고 있어서 어리게 보이지만, 시실 속 알맹이는 대단히 어른스러웠다. 아무에게나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피하고 웃으면서 상대방의 가장 약한 부분을 푹 찌르는 냉혹함도 지니고 있었다.
<도서실의 바다>中-191쪽

호의와 악의. 말은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는데 전달되는 감정. 사람의 마음은 이 얼마나 신기하고 불확실한가.
<도서실의 바다>中-202쪽

그 비밀은 생각했떤 것보다 무거웠다. 기이한 전통을 짊어진 비밀. 혼자만의 비밀.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의 인생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나날이었다.
분명히 별일 아니었을 터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열쇠 하나를 갖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일 따위 나쓰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했던 이상으로 힘들었다. 비밀은 간직해 나간다는 것, 비밀을 이어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쓰는 몸소 체험했다.
<도서실의 바다>中-213쪽

"진짜 하고 싶어? 보통 힘든 게 아니야. 난 두 번 다시 싫다, 얘."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진저리치는 얼굴을 하며 나쓰는 마음 한구석으로 신선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사요코가 된다. 자발적으로 전설을 만든다.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도서실의 바다>中-214쪽

그리움, 그것만이 우리의 짧은 인상을 증명해 주는 증거다. 숨낳은 기억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든다.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니까.
<노스탤지어>中-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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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구판절판


스톰그렌은 책상으로 다가가, 그의 유명한 우라늄 문진을 만지작거렸다. 초조한 건 아니었다. 단지 결심이 안 서고 있을 뿐이었다. 웨인라이트가 늦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회견이 시작될 때 스톰그렌이 도의적으로 약간 우월한 입장에 설 수 있을 테니까. 논리와 이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이 하는 일에서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더 큰 작용을 하는 법이었다.-20쪽

스톰그렌은 한숨을 쉬었다. 전에도 수백 번이나 들은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스톰그렌은 자유연맹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톰그렌은 캐렐런을 믿었고,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였고, 스톰그렌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유연맹 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23-24쪽

따라서 인간은 아직도 자신의 행성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지구는 1세기 전에 비해 훨씬 발전했지만,행성 자체는 더 비좁아졌다. 오버로드들이 전쟁과 기아와 질병을 없애버렸을 때, 그들은 동시에 모험도 파괴해버린 것이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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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품절


아버지라면 이 모든 게 헛된 짓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햄릿을 위해서라니. 그렇지만 언제나 세상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가장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학은 내게 현실을 상징했다. 의대에 가기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은 현시로가 거리가 멀었고, 모든 게 놀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들에게 현실의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
전이도 마찬가지다. 환자는 가장 격렬한 감정적인 천성을 가진 의사에게 애착심을 갖는다. 여자 환자는 의사를 위해 울어줄 것이다. 자기를 바치려 하고, 그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구이며 망상이다. 현실에서 환자의 감정은 의사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의사는 방향을 적절히 돌려 환자가 가진 폭력적이고도 심란한 감정을 투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다. 분석가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역겨운 실수는 유혹이든 증오든, 이 인공적인 감정을 현실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액튼 양의 방으로 난 복도를 걸어가면서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115쪽

"시기심은 여성의 정신적인 삶에 큰 활력을 주는 게 분명합니다, 밴월 부인." 프로이트가 말했다. "그래서 여성은 정의감이 별로 없는 것이지요."
"남자들은 시기하지 않나요?" 클라라가 물었다.
"남자들은 야심이 있죠. 남자들의 시기심은 주로 거기서 나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시기심은 언제나 성애적이죠. 둘의 차이점을 백일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백일몽을 꾸죠. 하지만 남자들은 두 종류가 있어요. 성애적인 것과 야심적인 것. 여자들의 백일몽은 전적으로 성애적이죠."
"저는 절대로 안 그래요." 코감기가 있다는 통통한 부인이 단언했다.-288쪽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진짜지만, 그 모든 서술부의 주어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콤플렉스는 더 심해진다. 딸은 곧 어머니가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음과 미모를 갖추고 대적하게 된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라잡게 되고, 아들이 커감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밟고 지나가는 세대교체의 거센 물결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놓고 말하겠는가?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질투한다고 인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들에게 투영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신이 아들에게 은밀한 살해 욕망을 품은 게 아니라,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갈망하고 아버지의 죽음 꾀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이 질투가 더 강렬해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항해 더 파괴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국 아이들이 자신들을 적으로 보고 달려들게끔 만든다. 그들이 두려워하던 상황이 이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자체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 프로이트 박사는 오이디푸스를 오독했다. 오이디푸스의 욕망은 아이의 마음속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속에 있었다.-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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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힐러리처럼 - 꿈을 품은 모든 여자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는 법
이지성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3월
절판


철학 고전 4단계 독서법
1. 먼저 철학 고전 저자에 관해 쉽게 설명한 책을 읽는다.
2. 철학 고전을 통독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그냥 읽는다.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좋다.
3. 정독을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다. 특히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은 크게 소리 내어 읽을 것을 권한다.
4. 노트에 중요 구문 위주로 필사를 하면서 통독한다. 필사는 철학 고전 독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필사를 통해 철학 고전 저자의 사고 능력을 조금이나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사를 하면, 몇 번이고 정독을 할 때도 이해 불가능하던 구절들이 한순간에 이해될 수 있다.-184쪽

힐러리의 독서법: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철학고전독서)+소원칙
1. 텔레비전을 볼 시간에 책을 읽는다.
2. 책을 읽고 나면 토론을 한다.
3. 저자와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4. 10대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5. 하나의 사건에 관련한 모든 입장을 알려고 노력한다.-170쪽

힐러리의 글쓰기 노하우
1. 작게 시작하라.
2. 양으로 승부하라.
3.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라.
4. 자신의 생각을, 발로 뛰어서 쓰라.
5. 글쓰기 자료 수첩을 만들어라.-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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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하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절판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사귄다는 것은 곧 동경하던 대상이 자기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는 뜻이다. 그것은 근사한 체험이지만, 동시에 환멸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상대방이 자기와 같은 눈높이에 서는 것을 환영해 마땅한 상황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이 자기 것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환멸이 더 컸다.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자기본위적이고 불쾌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본심이었다.-78쪽

비밀주의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이야기를 남에게 할 마음이 들지 않을 뿐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데는 위험이 따르려니와 에너지도 든다.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게 나는 옛날부터 싫었다. 게다가 나의 사생활 따위 남에게 이야기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끝도 없이 제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일종의 재주와 서비스가 되는 사람도 간혹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시간을 폭력적으로 빼앗는 것에 부로가하다.-104쪽

그러고 보면 고해 시스템은 위대하고, 신은 역시 위대하다. 고백한 사람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라 해도 마음이 편해지게 마련이다. 힘든 것은 고백을 듣는 쪽, 고백을 받아들이는 쪽이다. 모든 사람의 고해를 들어주는 신은 잔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대할지도 모른다. -115-116쪽

사랑받는 사람은 언제나 오만하다. 사랑하는 쪽이 자기를 갂아서 사랑을 쏟는 것을 모른다. 사람은 호의에는 민감하지만 사랑받고 있는 건 눈치 채지 못한다. 그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않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고독하다. 사랑한다는 해우이만으로 벅차서 그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49-150쪽

직장인의 습성대로, 뇌가 각성하지 않았는데도 숨골의 반사만 가지고 몸이 멋대로 준비를 한다.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컴컴하니 눈이 떠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생체시계 센서는 무릎 뒤쪽에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태양광선을 무릎 뒤쪽에 비추면 몸은 아침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156쪽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도 해보지 않는다. 분명히 이제는 하늘을 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들 총으로 쏴서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을 위협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릴 때, 새로운 부자유도 따라온다. -185쪽

생각해 내고 싶은데 생각나지 않으면 그렇게 신경이 쓰일 수가 없다. 목구멍에서 나올락 말락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든지, 밤중에 자료를 죄다 끌어내서 뒤진다든지 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가요라든지, 아이돌 이름이라든지, 생각나지 않으면 괜히 분하다. 생각났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금세 흥미를 잃는데도.-223-224쪽

하지만 어쩌면 소녀들의 직감 쪽이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간을 달리하고 장소를 달리하며 몇 번이고 같은 사람을 만나는지도 모른다. 물이 순환하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것이 속속 생겨나기보다 생명도 순환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 편이 훨씬 낫다. 그 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가슴속으로 그런 말을 곱씹었다.
그렇게 믿자. 지금 잃으려고 하는 것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263-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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