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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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그나마 무슨 날이라야 가는 부모님이 계신 집, 얼마 전부터 불현듯 부모님이 슬퍼 보이고 안쓰럽다. 또다시 5월이 오는 탓인가?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아픈 몸뚱이를 힘들어하며 넔두리하는 모습이 싫어 외면도 한다. "아프면 병원 가시지 왜 그러고 계세요." 파르르 성깔 부리며 앉으면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잘 지내지?" 어머니는 여전히 어머니 같은 말만 한다. 힘들다며 벌러덩 눕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 채로 말이다. 서른넷에 집을 떠난 자식은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를 늘 마흔 중턱 어느 봄쯤으로 기억하고 살았다.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 나온 지 43년이 지난 오늘, 가슴 뜨겁게 당신의 자리가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이 아팠다. 당신과 조심스레 깊은 눈을 맞춘 후 돌아서는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진다.

"이토록 모순된 유기적 생명 공동체가 세상에 또 있을까?" - 톨스토이

창비에서 출간한 <끌어안는 소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며 생기는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정지아,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 작가의 가족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은 잊고 있었던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했다. 모든 작품을 감동 있게 읽었지만 그중 가슴에 와닿은 소설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최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을 감동 깊게 읽었던 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는 노년을 바라보는 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며 어머니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녀도 한때는 철없이 투정 부리는 딸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삶은 가족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와 말을 하다 보면 이상한 대목에서 심장이 저렸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고 외할머니의 딸이던 시절에는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라 한때는 마음껏 투정을 부려도 되는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여한 작가들 중 가장 최근에 소설집을 낸 손보미 작가의 <담요>는 죽은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장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장은 콘서트 장에서 사고로 아들을 읽고 죽은 아들의 담요를 끌어안고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야간 순찰 중 영하의 날씨에 놀이터에서 떨고 있던 어린 부부에게 아들이 담요를 건네며 끌어안고 있던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들이 죽은 후, 장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회식 자리에서 만취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들을 잃은 후, 장의 생활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가 야간 순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독특한 이야기였던 황정은 작가의 <모자>는 가끔 모자가 되어버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당신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아버지는 그때부터 모자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순간이면 당황하며 얼어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안쓰러워하는 자식들의 시선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으로 보살핌 받았어야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세 남매의 할아버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폐암에 걸려 죽는 날까지도 꼿꼿하게 등을 펴고 누워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그 남편이 아직 젊었을 때, 하루는 밥상에 밥알을 너무 많이 흘렸다고 아들의 바지를 벗겨 놓고 엉덩이를 팡팡 때린 일이 있었다. 고작 다섯 알 정도를 흘렸고 주워 먹으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쓸데없이 꼬장꼬장한 남편을 상대로 말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일어났더니 자리끼로 놓아두었던 주전자가 비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주전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 그녀는 낮에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둘째 아들이 우물가에서 조그마한 모자가 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자였지만, 그녀는 모자가 그 아들인 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역시 독특한 발상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인적이 드문 섬 플라이데이리코더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삼촌과 살고 있는 아이는 어느 날 노란색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보게 된다. 잔해에서 찾아낸 블랙박스를 보며 엄마라고 한 삼촌의 말에 그것을 엄마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로부터 형성된 우주의 만물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삼촌의 말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게 서로 다른 종으로 태어날 경우 대화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그래도 몸을 기울이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방법은 우리가 발견해 내면 돼. 지금 엄마랑도."

소중한 것들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내일과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것 같던 내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 그 무엇으로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간다. 언젠가부터 아내와 딸이랑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손을 잡는 버릇이 있다.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손바닥을 긁어보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문질러 보기도 한다.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닮고 싶었을까. 아내와 딸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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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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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대제국의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맹목적인 자만과 폐쇄적인 교역으로 대외적 개방을 거부하고 찬란했던 과거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무기 기술을 앞세운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위해 아편과 대포를 앞세워 중국의 본토에 일격을 가했다. 이것이 아편전쟁이다.

"5백 년 전 그들은 곡식을 재배해 수확했기에 미혹 나무 잎이 무엇인지 몰랐다. 한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묘인들의 나라로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위가 높은 이들만 그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미혹 나무를 옮겨 오게 되면서 모두가 중독돼 버렸다. 채 50년도 되지 않아 그걸 먹지 않는 이들이 더 소수인 상황이 됐다. 미혹 나무 잎을 먹는 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할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일하는 것도 불가능해 모두가 한가롭다. 그래서 정부는 더는 미혹 나무 잎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 명령 첫날 정오, 황후는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며 황제의 뺨을 세 대나 때렸고, 황제는 그저 울 뿐이었다. 이날 오후 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미혹 나무 잎을 '국식'으로 정하겠노라고." p52

한 중국인이 친구들과 떠난 우주여행에서 어떤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이 행성에는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들이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죽고 주인공은 묘인들에게 잡혀 갇히게 되지만 탈출하게 되고 묘인들의 추적을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이용해 묘인들을 쫓아내지만 기절하고 만다. 눈을 떴을 때는 그를 옮겨온 '따시에'라는 묘인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는 미혹 나무라는 중독성 강한 나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눈치채겠지만 미혹 나무는 영국의 아편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밀수를 막기 위해 금지령을 반포했지만 관료들마저 매수되어 밀수를 자행해 금지령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대륙 전역에 유통되며 은의 대량 유출로 중국의 경제까지 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묘인들은 외국인과 싸우더라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자립을 하고 힘을 키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묘인들은 너무 교활해서 힘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외국인들이 서로 살육하길 신에게 간청하고, 약한 묘국이 강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나라가 묘국만큼 약해질 기회를 노리거나 말이다. 외국인들은 묘국 안에서 언제든 이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를 공격함으로써 묘국이 편익을 취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 대 강으로 붙으면 결국 분쟁이 일어나고, 싸워서 이겨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반대로, 그들이 연합해 묘인들을 능멸한다면 아무 손실 없이 큰 이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정책만 이러한 게 아니라, 묘국 내에서 일하는 개개인도 이러한 조건을 지킨다. 미혹 나무숲을 보호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지주만을 위하면서 묘국에 저항하는 자만 책임지기로 다 같이 약속하고 있다. 쌍방 모두 외국인이 보호하는 상태라면 누구든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도 한 것이다.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 자를 보면 양측의 보호자들이 합의하여 지주나 우두머리를 징벌한다. 이렇게 하면 묘국의 일로 외국인끼리 다투는 걸 피할 수 있고, 보호자의 지위를 우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묘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p102

아편을 앞세운 영국의 침략은 중국 사회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자본주의의 생성으로 봉건사회의 해체를 촉진했지만, 봉건적 착취 제도는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매판자본은 고리대 자본과 결탁하여 사회경제적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충격은 봉건 중국을 결코 자본주의적 중국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반 봉건적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외세 침략은 소설 속의 외국인을 연상시키는데 이들에게 의존했던 관료들은 수동적이고 비굴한 묘인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중국은 영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8개국 연합군에게 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베이징을 짓밟히는 민족적 수모를 당하며 서서히 반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비록 중국은 대외관계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미 불평등조약에 의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가 완전히 침탈되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중국 정부는 '양인 조정'으로 바뀌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에서 외국인을 앞세워 이익을 취하려는 묘인들의 모습은 1930년 경의 무지하고 비열했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고향을 위대한 중국, 태평하고 즐거운 중국이라고 칭하는 이것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에만 급급한 관료와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암울했던 중국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며,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묘성의 묘인들의 모습은 당시 과거의 영광 뒤로 저물어 가던 중국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답답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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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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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산을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요. 산을 완전히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 구름해석전문가 중에서 "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거미줄같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감정들을 결코 놓지 않을 듯 붙잡고 있다가도 언젠가는 놓아 주어야 하는 것을. 이제는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련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알고, 기억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부희령 작가의 소설은 접한 것은 단순 호기심 때문이다. 표지의 화려한 디자인 때문에 이끌렸고, 제목에 또 한 번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용 그 자체에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그녀의 초기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구름해석전문가>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단편들만 읽어보더라도 분명 나의 취향과 결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의 처음을 장식하는 <콘도르는 날아가고>는 70년 대를 배경으로 한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자신은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녀의 맹세는 깨어지게 되면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사랑에게서 달아나려는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짝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 표제인 <구름해설전문가>는 작가로서 동경하고 좋아하던 선우를 떠나 포카라로 떠난 이경은 선우를 잊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완전한 집> 역시 포카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금희 역시 잊기 위한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그녀는 헤어진 사람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일본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둔 <만주>에서는 주인공 임돈은 경성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지만 병원 운영을 위해 빌리 사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 태련의 부탁을 받아 독립자금을 전달해 주는 일을 맡게 되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귀가>에서는 과거에 폭력으로 시달리던 어두운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에서는 나름 상류층에서 살아가고 있는 네 명의 중년들은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념에서조차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는 내용이다.



​하루를 고스란히 써서 읽은 이 소설을 완독하고 느낀 점은 '자유를 원하는 갈망'이었다. 자신을 감싸고 억누르고 있던 어두운 기억,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에 이르기까지 표제의 구름 해석 전문가 이미지처럼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구름 같은 삶을 원하는 인물들이 느껴졌다.


"아무튼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선한 삶이 아니라 그저 삶을 불필요하게 짓누르는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매고 망설이며 좌절한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그 막막함과 같이 길을 찾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시간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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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다이다이 서점에서
다지리 히사코 지음, 한정윤 옮김 / 니라이카나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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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많은 서점이 문을 닫았다. 대형 서점의 이점을 넘어설 경쟁력이 없는 작은 동네 서점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전 도서 황금기와도 같았던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여전히 그때의 추억을 그대로 간칙한 채 수십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오고 있는 서점들이 존재한다.

"슬슬 연필을 깎아주세요. 쓰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같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이 카운터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P67


구마모토의 시내의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서점 다이다이 서점은 22년 전, 다지리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차린 카페 겸 잡화점'orange'의 옆 점포를 빌려 열게 된 서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밀 낭독회로 더욱 유명해진 이 서점은 아시아 최고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고해정토로 유명한 이시무레 미치코, 사진작가인 가와우치 린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문화 예술계의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독특한 서점이다.

편집자 오가와 씨의 부탁으로 쓰게 된 <다이다이 서점에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돈치 피클'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우쿨렐레 연주자 돈치씨, 이곳에서 일했었던, 지금은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는 치바짱과 노리짱, 재일교포 작가인 강신자 작가와 그 밖에 많은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마음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상상 속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곳은 단골손님의 부탁으로 피로연이 열리기도 하고, 각종 음악회와 미술 전시회, 심지어 반려동물의 입양처를 찾아주기도 한다.

"여전히 약자의 책만 가득하네."


​다지리 씨가 선택하는 책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그녀가 선택하는 책들은 미나마타병 환자에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전쟁의 무수한 피해자, 차별당하고 힘없는 사람들,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고른 것이다. 그녀의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시무레 미치코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다.(고해정토, 헌등사) 지금도 다지리 씨에게 책을 추천받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찾아오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수만큼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알고 싶으니까 읽는다. 입장이 다르면 풍경도 변하기 때문에 모든 입장에서 보고 싶다."


책이라는 매개체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일상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다지리 씨가 만들어가는 이 서점은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닌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이어지는 만남의 장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정겨움이 가득한 이곳은 오늘도 어김없이 활짝 문을 열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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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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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내가 태어난 80년 대만 하더라도 아이 키우기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라고 단정 짓고 그녀들이 도맡아왔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육아가 사회적 제도의 개선과 남성들의 인식 변화로 아기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키워주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각종 매스컴에서 아빠의 육아를 다른 프로그램이 많아지며 아빠들도 당연히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건 글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모인 5명의 아빠들이 겪게 되는 좌충우돌 육아일기이다. 한 달에 한 번 육아 일기를 남기는 이들은 다양한 연령대, 성별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들이라 그들의 글은 다양한 사람들과 언론의 주목까지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여전히 내가 아빠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거나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는 아빠가 되기 전 40년의 삶이 있다. 아빠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끔 어색한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한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함께 웃고 우는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더 자주 안아주고, 더 자주 아이 볼에 입 맞추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에 스스로 어색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조금씩, 오랫동안 내 안에 아빠는 단어의 크기를 키워갈 것이다." -34p


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는 육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계획에 없는 아이를 가지게 되어 아빠라 불리게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는 현실이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충분하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인해 회사를 쉴 수 없었고 육아 휴직을 사용했을 때 생기는 회사로부터의 불이익 때문에 와이프의 혼자 도맡아 육아를 하는 날이 많았고,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사회제도와 예상치 못한 아이의 건강 악화 등의 문제로 힘든 육아생활을 이어나갔던 것 같다.

"끝끝내 유튜브 2배속 재생 버튼을 누구고야 말았다."

그들의 글에는 아빠로서 공감 가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현실에 자신의 여가 생활시간마저 줄여야 했던 경험,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게 있어 자신의 생활 패턴은 모두 아이의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하는 현실도, 모든 것이 귀찮고 내 아이의 육아마저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아빠라는 낯선 경험을 쌓아가면서 아이와 함께 자신도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에요."

육아를 할 시간에 돈을 많이 벌어 다양한 학습을 통한 경험과 장난감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이와의 시간에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같이 즐겁게 놀아주는 것이 밝고 따뜻한 긍정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들의 말처럼 나 역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해주고, 더 많이 함께해 주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는데도 그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아빠의 육아란 의외로 단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진심을 다해 놀아주고 함께 호흡하는 일, 아이를 향한 아낌없는 사랑과 그 사랑을 언제까지나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육아이지 않을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이와의 시간에 부모로서 아이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가 됨으로써 가지게 되는 책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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