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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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을 때 한국의 독립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도 승리하고, 러일전쟁으로 러시아를 몰아냈으며, 영일동맹으로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가쓰라 태프트 협정으로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차지한 다는 밀약을 맺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을 만들어 내며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테세라오 트세난

화국 이름이 아니라 라잔 이름이었다."

 

최근 [파친코]의 이민진,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허주은, [작은 땅의 야수들]의 김주혜 같이 타국에서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려 노력하는 작가들이 인기다. 하지만 이윤하 작가의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그녀들의 소설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SF라는 장르 위에 한국 독립이라는 시대상을 심은 특별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한국 독립운동을 다룬 수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SF라는 장르 위에 그려진 소설은 드물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두 작품이 전부인데, 하나는 복거일 작가의 [비명을 찾아서](장동건 주연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 그리고 이윤하 작가의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이다.

일제강점기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화국(조선)과 라잔(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잔의 지배를 받고 있는 화국민 제비는 화가로 일하기 위해 라잔의 화가 채용 시험에 응시한다. 하지만 응시에 떨어지게 되고 응시를 위해 라잔국 언어로 개명한 것을 언니 봉숭아에게 들키게 되고 그녀와 다툰 제비는 집을 나오게 된다. 집을 나온 제비는 그의 친구 학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게 되고 호기심에 들어간 방위성에서 장관 대리 하판덴에게 같이 일해 줬으면 하고 권유하게 되는데 하판덴은 언니 봉숭아가 반란군과 연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같이 일하게 된다면 그 사실도 모른척해준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방위성에서 일하게 된 제비는 자동 기계 용 '아라지'를 다루는 문양을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되고 문양을 통해 전쟁 도구로 사용될 아라지와 문양으로 소통해 구속되어 있는 아라지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책을 접했을 때 살짝 당황했던 것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제비의 언니 봉숭아의 아내라고 표현된 초반 부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는데 화국과 라잔의 세계관은 성별 구분의 의미 없는 동성과의 사랑 주를 이룬다. 주인공인 제비도 그의 감시자이지만 연인이 되어 버린 베이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윤하 작가가 살고 있는 미국의 정서 때문인지 아니면 이윤하 작가의 이상향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세계관이었다.

주인공 제비를 떠올리면 채만식 작가를 떠오른다. 일제 말기 채만식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친일 문인의 대열에 끼어야 했다. 불온 독서회를 배후 조종했다는 협의로 경찰서에 붙들려 갔다가 풀려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를 구해준 것은 친일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협회'라는 데서 날아온 엽서 한 장이이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친일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민족의 죄인]과 같은 작품을 통해 이 시기의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했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일제강점기에서 상처받았던 또 다른 측면의 사실성이 깃들여 있는 특별한 소설이며, 이것은 국적은 달라도 한국인은 조국의 상처와 아픔을 마음 한곳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이윤하 작가의 소설에는 가슴에 와닿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고, 조금 서툴지만 피부에 와닿는 한국인의 언어가 있다. 그녀의 언어는 언어라고 하기보다는 목소리라고 하는 것이 옳으며 그 목소리는 단순한 세태의 재현이 아닌 더 창조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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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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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언어로 이루어지는 모든 감각들은 그 자체로서는 하나의 의미의 훌륭한 작품이다. 그것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닫혀진 감각의 문을 열고 거기에 들어가는 자신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닫혀 있던 감각 속에 감히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그 세계로의 표현이 감미롭고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것인가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가서 종이에 올빼미나 다른 육식동물을 그려 창문에 붙인 다음, 주방으로 가서 향기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커피를 끓이는 것이다."

 

<감각의 박물학>에서 말하는 우리의 신체는 하나의 생태계와도 같아서 거기에 흐르고 있는 피는 조류와 비슷하며 우리의 몸과 감각은 태고의 모습에서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촉, 맛, 냄새, 소리, 빛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단어는 인류의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고 그것을 민속과 과학이라는 장르를 덧붙여 풀어나가고 있다.

 

"한 영혼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보는 것이다.

선명하게 본 것은 모두 시이고 예언이며 종교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 중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연이 가진 색깔은 한결같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색이다. 바람 부는 날은 바다가 흔들리고 바닷가 언덕 풀도 흔들리고 하늘도 흔들려 강렬하게 색으로 다가온다. 그 흔들림이 또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그런 바닷바람 속을 거닐다 보면 바람이 맑아 뒤에 두고 온 세상 풍경이 절로 잊힐 때도 있다. 푸른색을 펼쳐 놓은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에 드러내는 바다는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이다. 비 오는 바다의 하늘을 흑백으로 바뀌고 검푸른 바다 빛만 존재한다. 모든 색을 흡수하고 모노톤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바다를 느끼는 모든 감각을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에서 불어는 바람을 뒤로 초가을이면 잘잘하게 피기 시작하는 보랏빛 해국들과 해당화들이 나의 모든 감각들을 유혹한다. 나는 이런 바다 풍경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줄곧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 함께 가는 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 얼마나 서운하고 두려워지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언어인 이 책은 인간의 신체와 과학 간에 감각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앞에도 말했듯이 감각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일이란 결코 간단하거나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을 향한 이러한 간절한 시선의 밑바닥에는 일종의 '실존'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정서가 깃들어 있다. 감각이라는 아름다움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가능한 생물학적 에고이즘이 아닐까.

 

후각[Smell]

냄새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정확할 수 있지만, 어떤 냄새를 맡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반들거리는 새 책의 종이 냄새나, 등사기에서 갓 빠져나와 석유 내가 가시지 않은 인쇄물 냄새, 혹은 사체, 혹은 향수 박하니 층층나무, 라일락 같은 꽃이 뿜어내는 냄새의 미묘한 차이.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빛이 있을 때만 보고, 입속에 뭔가를 밀어 넣어야 맛을 느끼고,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와 접촉해야 감촉을 느끼고, 일정 정도 이상이 되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숨 쉴 때마다 냄새 맡는다.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고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지만, 코를 막고 더 이상 냄새를 맡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다. 어원학적으로 말하면, 호흡은 중성적이거나 온화한 것이 아니다. 호흡은 '익은 공기'다 인간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불을 때고 있다. 인간의 세포에는 아궁이가 있어서, 숨을 쉴 때 몸을 통해 들어온 세계를 살짝 익힌 다음, 약간 변화된 그것을 다시 내보낸다. p19

촉각[Touch]

모든 동물은 만지고, 쓰다듬고, 찌르는 것에 반응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생명 그 자체는 신체 접촉, 즉 서로를 접촉하고 관계를 맺게 해주는 화학물질 없이는 진화할 수 없다. 신체 접촉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다 병이 들거나 접촉 결핍증에 걸릴 것이다. 태아에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은 촉각으로, 신생아는 눈을 뜨거나 세상에 대해 알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촉각을 통해 느낀다. 우리는 태어나면 보거나 말할 수는 없어도 본능적으로 신체 접촉을 시작한다. 입술의 촉각 수용체 덕분에 젖을 빨 수 있으며, 따뜻한 것을 향해 손을 내밀어 움켜쥘 수 있다. 신체 접촉은 나와 타자의 차이, 나의 외부에 누군가, 엄마가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엄마와 아기는 신체 접촉을 굉장히 많이 한다. 엄마를 만지고 엄마의 손길을 받는, 최초로 경험하는 따스함은 헌신적인 사랑의 기억을 평생토록 남는다. p141

미각[Taste]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이 구성 요소다. 반투족은 음식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고 이들은 그때부터 '오트밀죽의 씨족'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므로 '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외부인을 가족과 연결시켜주는 상징적 행위가 된다. 세계 어디를 가나 중요한 사업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루어진다.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고,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아이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다. 종교 집회에서는 경외와 봉헌의 음식을 바친다. 길손들은 한 끼 식사를 대접받는다. 브리야 사바랭이 말한 그대로다. "사랑, 우정, 사업, 투기, 권력, 끈질긴 요구, 후원, 야심, 음모 등 모든 사회적 교류가 식탁 주위에서 이루어진다. " p221

청각[Hearing]

자궁 속에서의 휴식만큼 편안한 것은 없다. 정신 병동처럼 사방에 쿠션을 댄 방이었다. 우리는 욕망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신생아는 엄마 젖을 빨거나 그저 가만히 안겨 있는 동안 자궁의 끊이지 않는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인생은 지속되고 살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는 자신이 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멈출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이의 심장이 침묵할까 봐 두려워한다. 아침에 연인과 함께 침대에 누워 찰싹 달라붙은 두 개의 숟가락처럼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졸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와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P311

시각[Vision]

본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고대의 바다에서, 생명체의 피부에는 빛에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이 부위는 빛과 어둠을 구별할 수 있었고, 빛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기능은 아주 유용했고 눈이 발달하면서 물체의 움직임과 형태, 마침내는 세세한 모습과 색채까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눈은 대양에서 생겨난 탓에 항상 소금물에 젖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오직 그 풍부한 화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캄브리아기 삼엽충의 눈이 역사상 가장 오래된 눈이다. 지금 나는 작은 삼엽충 화석을 넣은 목걸이를 걸고 있다. 5억 년 전, 늪지에서 번성했던 삼엽충은 한 쌍의 겹눈으로 주로 측면을 보았고 불행히도 위쪽은 보지 못했다. 한편 가장 새로운 눈은 인간의 발명품으로, 전자 눈, 반사망원경, 미세 수술이나 안과 검진, 심각한 시각장애에 사용하는 다중 렌즈 등이다. 식물에는 눈이 없지만, 로렌 아이슬리는 진균류 필로볼러스에 눈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에는 포자낭을 제어하는, 빛에 민감함 부위가 있어서, 가능한 가장 밝은 곳을 향한다는 것이다. p401

공감각[Synesthesia]

시간이 흐르면서, 신생아는 모든 감각적 인상을 분류하고 길들이는 법을 배우는데 그중에는 이름이 있는 것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이름 없이 남는 것들도 많다. 언어화되지 않는 것들은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고 기억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아기방의 아늑함과 어렴풋함은 상식의 정밀한 범위 안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감각의 혼합은 그치지 않는다. '프랜시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구운 콩의 맛을 느끼거나, 거친 표면을 만질 때 노란색을 보거나, 시간의 흐름을 냄새 맡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 감각을 자극하면 다른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synesthe-sia(공감각)'는 그리스어의 'syn(함께)'과 'aisthanesthai(지각하다)'를 더한 말이다. 지각의 두꺼운 천은 여러 겹의 실을 섞어서 짠 것이다. 비슷한 말로 'synthesis'(종합)'가 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개념을 합쳐서 짠 생각의 천이고, 원래는 고대 로마인들이 입던 가벼운 무명천을 가리켰다.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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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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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임의의 낯선 사람의 삶에 가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사생활조차 상품이 되어 팔리는 미래의 세계에 개인의 비밀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슈웨블린의 장편 <리틀 아이즈>는 2018년에 발표한 장편 <Kentukis>의 다른 이름으로 만다라체상을 받고 이 작품 역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카메라는 인형의 눈에 달려 있었는데, 동물 모양을 한 이 인형은 밑바닥에

바퀴 세 개가 숨겨져 있어서 빙글빙글 도는가 하면 앞뒤로 움직이기도 했다"

 

켄투키라는 동물 모습을 한 인형에는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고 켄투키 인형을 사는 사람은 켄투키 연결카드를 사는 사람에게 관찰당하게 된다. 즉 연결 카드를 산 사람이 켄투키가 되어 자신의 주인을 지켜보고 되는 것이다. 그들은 서버에 의해 랜덤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대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주인이 되는 것과 켄투키가 되는 것의 장단점을 두고 다들 이런저런 말들을 해댔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은 드문 반면,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간섭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리어져 있는 누군가의 삶, 훔쳐보기가 가져다주는 짜릿함 때문일까? <리틀 아이즈>의 내용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미성년자들을 협박하여 끔찍한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만든 N번방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의 사생활이나 성행위를 훔쳐보는 관음증은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은 성행위를 즐기며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관음 행위를 벗어나 정부적 차원에서의 감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조지 오월의 1984에서의 텔레스크린과 사법경찰들의 감시, 심장 박동까지 감시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슈웨 볼린의 우려하는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 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불평 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고도화되고 정교화된 CCTV 카메라 자이와 디지털 파눕티콘 구조 속에 사람들은 차츰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슈웨 볼린의 글들이 진정한 공포로 다가오는 건 그녀의 상상이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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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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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에 이어 사만타 슈웨블린의 2번째 리뷰는 대표작 <피버 드림>이다. 원제 Distancia de rescate로 구조 거리이지만 영미권의 표제를 그대로 쓰고 있다. 작품을 읽게 되면 특이한 형식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간의 관계를 알 수 없는 독백에 가까운 대화들 속에서 희미한 기억을 잡아가며 그녀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정확한 순간은 바로 세세한 점에 있어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봐야 해요.


​소설 곳곳에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초자연적인 소재들로 소설의 분위기를 무겁게 이끌고 간다. 과연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인해 마을에 생기는 재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세세한 점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을 끊기 있게 읽어 나간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이것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아닌 바로 환경오염으로 비 져진 재앙이었던 것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비극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대신 이 재앙은 환경문제로서 우리 삶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될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덮고 있다는 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 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한 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붙은 도화선처럼 마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지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소설 속에서 드럼통 안에 들어있던 '이슬'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농약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로 이것의 발암 가능성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세계적 유전자재조합 종자회사이면서 농약회사인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포함된 이 성분을 세계보건기구 산하에 있는 국제 암연구소가 2015년 3월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 분류하면서 GMO 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글리포세이트 성분은 인체의 암 발생 문제와 연관됐다고 보고되고 있고 일부 연구에서는 선청성 기형아 발생 위험과의 연관성도 우려했다. 사만타 슈웨블린 역시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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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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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 기이하고 공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 번째 소설집 '입속의 새'는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입속의 새>는 새를 먹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이혼 후 아이를 맡고 있던 아내 실비아가 찾아오게 되고 이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한계라며 딸 사라를 가리킨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체 주인공은 아내를 지켜보고 되고 아내는 거실을 따라 차고로 들어가서는 구두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아내는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든 것처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서 참새 한 마리를 꺼내더니 새장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사라는 폴짝폴짝 뛰더니 새장으로 다가가 새를 꺼냈다. 사라가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새가 날카롭게 꽥 꽤 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가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새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해서 저러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라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라의 입, 코, 턱 그리고 두 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는 수줍게 웃었다. 커다란 입이 활같이 휘다가 벌어지면서 시뻘건 이가 드러났다."

<인어남자>는 어느 날 부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은 오빠의 친구 가게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중 부두에서 콘크리트 기둥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홀린 듯 인어 남자에게 다가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을 발견한 오빠는 인어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빠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름답고 온몸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가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한다. 그런데도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타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차에 타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냥 인어일 뿐이야. 그냥 인어일 뿐이야.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거야. 나를 기다리면서."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은 아내를 살해하고 그녀를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어둔 일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커다란 여행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인 코랄레스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지만 박사는 곧이듣지 않고 그에게 진정을 요구한다. 다음날 그의 끈질긴 부탁해 자신이 살해한 아내가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열어본 코랄레스는 놀라운 재능이라며 베나비데스를 칭찬하게 된다.

"작품에서 발산되는 무언가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자줏빛 육체. 그들 몇 미터 앞에 주검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살과 인간의 피부가, 거대한 허벅지가, 그 모든 것이 가죽에 짓눌린 채 여행 가방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의 냄새. 예술가는 여전히 가방 가까운 곳에 있다."

뛰어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큰 인지도를 얻지 못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마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홍보 부족과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이미지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거리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입속의 새> 작품집에서는 기이한 사건 속에서 모두 인간과 현실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만타 슈웨블린은 일반적인 리얼리즘에서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한 일상의 경이로운 단면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판단이나 의미 규정을 위해 독자의 동참을 유도한다. 작가는 현재 상황에만 시선을 밀착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역전시켜 기대와 예상을 전복시킨다. 이 모든 것이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만타 슈웨블린이 전하고 싶은 환상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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