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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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무겁고 어두운 정서, 선해 보이는 인물의 극적인 반전, 선도 악도 아닌 존재의 극적인 자기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을 떠오르게 하는 말들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느꼈던 감정이란 불행한 운명에서 허우적 되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희미한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표제인 '개미지옥'을 연상케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요네스뵈의 해리 올레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 등 시리즈 물을 즐겨 읽어 왔지만 모치즈키 료코의 '기베 미치코' 시리즈는 처음 접하였는데 일본 유학 시절 살았던 '히가시 나카노'에서의 살인을 다룬 추리 소설이라 미묘한 반가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살인이란 자신이 가진 뭔가와 얽혀 있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아.

 그 두 여자는 범인과 무엇으로 얽혀 있는 걸까?"

 

 

가장 밑바닥 인생을 보게 될지도 모를 도쿄 최하위 빈민의 삶,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태어난 두 여자의 총기 살해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 매춘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지독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여동생 메이를 키워 나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스에오와 모든 것이 풍족한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위를 지속해온 쓰바사와의 대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랜서 기자 '기베 미치코'의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력은 모치즈키 료코의 시리즈를 빛나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걷고 있는 저기 저 햇볕이 내리쬐는 대지를 딛고 싶다.

간절히 원했지만 난 계속 넘어졌어요. 그래도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죠."

 

 

작가는 인물들의 불행한 삶의 과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용서할 수 없는 악행에도 어쩔 수 없이, 참작할 만한 이유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선과 악, 아니 어느 쪽이든 원만한 사회에 필요한 살인이란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살인에 대한 저마다의 판단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것은 분명 혼란스럽고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화할 수 없는 살인을 선택하였음에도 우리를 이끄는 연민이라는 감정은 이 소설을 더욱 무겁고 진하게 만들고 있다.

<출생지, 개미지옥>은 결코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야 하는 어쩌면 굉장히 불편한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의 가까운 현실적인 묘사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생각지 못한 반전은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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