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그들의 이야기에 진실로 귀 기울여보았는가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3기 한국문화 편의 제2강은 최기숙 선생님의 '처녀귀신' 강의였습니다.
제목대로 처녀귀신 이야기가 주 테마였지만, 사실 그건 정말 하고 싶은 얘기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말미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소수자, 마이너리티, 하위주체, 약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
이런 인식이 이번 강의와 책의 시작이자,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강의의 출발은 처녀귀신이 아니라 어린이였고, 마무리는 '조선시대 야담집을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중심적인 내용은 왜 처녀귀신인가부터 처녀귀신이 된 이유, 처녀귀신이 우는 이유, 소복을 입은 이유,
남자귀신과 여자귀신의 차이, 고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자살, 자살 성공률과 구원자 분석, 귀신이야기의 의미 등등 이었지만,
그것 역시 하위주체에 대한 관심과 판타지의 연장선 위에서 대표적인 한 부분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마이너리티 문화 연구의 의미와 내면성의 체험 차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바라보았으며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 관용, 배려가 중요하고 주된 목적인 것입니다.
그저 흥미위주의 무서운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던 처녀귀신 이야기를 깊이있게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부제인 '당신은 언제 그들의 이야기에 진실로 귀 기울여보았는가'도 많은 뜻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그들(어린이, 젊은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어쨌든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뭔가 가진 인간들이 남긴 이야기 자체의 한계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우리 역시 똑같이 불완전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으로서 혹시 그들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의식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 제목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는 게 이번 강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 그 이야기는 누가 쓴 것인가? (조선시대 처녀귀신 이야기는 글을 쓸 수 있는 남자들이 쓴 이야기이다)
- 그 이야기를 읽는 주된 독자층은 누구인가? (조선시대 처녀귀신 이야기는 사대부들이 주 독자층이다)
- 그 이야기를 객관적인 듯한 시점으로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 허구성은 없는가? (남자들이 읽기에 불편하지 않은 방향으로 처녀귀신 이야기가 전개된다)
- 강자들의 관점으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약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에서 오는 한계는 없는가? (젊은 여성이 처녀귀신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기재가 엄연히 존재한다)
-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처녀귀신 이야기의 결말이 남성 구원자를 찾아 불완전한 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생님께서는 처녀귀신 이야기를 미시적으로 분석하며, 큰 틀에서 모든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전제와 원칙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강의 중간에 보여주셨던 <장화홍련전>에 관한 분석 내용도 참 흥미로웠으며
결론 부분에서 정리하셨던 '귀신 이야기의 건강성' 측면은 상당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질문 답변에서 언급하셨던 <강도몽유록>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멋진 강의를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