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첫번째 '재현'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는 비재현의 삶이란 "끊임없이 나를 부정할 것, 부정은 일생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재현했다. 두시간의 강의를 한마디로 짧게 정의할 수 있었던것은 강의를 제대로 느낀것이 아니라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은, 강의에 대해 사전에 책을 읽은 것도 아니요, 인문학적인 재현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거니와, 생각해본 바도 없이 너무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무생각 없이 들리는대로 듣기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듣고 있는것인지 내가 내 귀를 의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동안 어설프게나마 내가 나를 넘어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알아왔던 나를 부정한다는 것. 그것은 어쩐지 누군가 나에게 진짜 삶을 살라고 속삭이는 듯한 야릇한 흥분을 주었다.
재현에 대한 두번째 시간이었던 오늘, 아니 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강의에 대해 나의 느낌과 생각들이 소멸해 버리기 전에 뭔가 남기고 싶다.
나는 오늘 내가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과거가 지금 현재의 나에게 문제가 된 것이아니라, 과거에 대한 나의 태도, 과거를 생각하는 방식이 지금의 나를 결정해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그리뜨의 그림 '들로 나가는 방법'을 보았을 때는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 그건 어두운 방에서 커튼을 여는 순간 쏟아지는 빛 같기도 했고, 박하사탕을 와드득 씹는 순간 퍼지는 민트향 같기도 했다. 나는 분명 웃었는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입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프로이트의 위대함에 빠져있었나보다. 그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느낀 희열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밖에.
격월간<민들레>에서 책 한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노숙자가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자포자기했던 삶을 끌어안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버렸던 아이를 찾고 싶어졌다는 그는 인문학이 자신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했다.
사유하는 나.
상식, 도덕, 관습, 견해, 재인.... 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할 줄 몰랐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상식과 도덕과 관습과 견해와 재인의 덩어리인 나를 깨는, 나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내가 진정한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내 목표가 되었다. 자본주의, 가족주의가 만들어낸 모든 정형화된 삶에서 등을 돌리려한다. 몰랐던 진실들을 이제는 좀 알아야 겠다.
내일은 없다. 따라서 올 희망도 절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