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채운 선생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강연회 후기를 올리는 겸, 그리고 질문과 답변시간에 미처 못 한 질문을 드리는 겸하여 글을 올립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재현의 논리에 대한 비판에서 기존의 패러다임과 어긋나는 개개의 사건들을 '변칙'이라고 여기고 무시하다가 이러한 변칙의 축적으로 마침내 과학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과학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연상했습니다. 선생님의 강연 속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재현의 논리)에 안주하지 말고 이에 도전하고 허물어라'는 명령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는 과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어긋나서 무시되는 변칙들('재현의 사유'에 이끌려 무시되는 실재 현상들)에서 ‘틈’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유과정은 시공간의 절대성을 상식으로 여겨온 기존의 패러다임(사유방식)을 허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탄생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재현'이라는 개념은 제가 이와 유사하다고 느낀 개념인 ‘과학적 패러다임’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듯합니다.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질현상을 하나의 보편 법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이나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처럼 자연현상에 보편타당한 절대적인 진리, 즉 모든 물리적 현상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물리법칙이 존재함을 전제하고 그것을 찾는 것을 그들의 진리추구 행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푸코'의 예를 들어, ‘보편적 진리는 없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하셨고, 단지 진리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투쟁만이 있을 뿐이며 '진리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진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과학자로서 추구하는 진리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재현의 논리 부정’을 과학자의 진리추구 활동에 적용시켜 이해하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본 그 적용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들 중 선생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받고 싶습니다.  

첫 번째, ‘재현의 논리 부정’ 속에는 ‘진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을 포함하므로 ‘절대적인 과학적 패러다임의 존재’를 비롯한 보편타당한 자연 법칙의 존재, 즉 자연현상 모두를 꿰뚫어 지배하는 ‘유일한 물리법칙의 존재(물리학자들의 꿈)’를 부정한다.   

두 번째, ‘물리학자들의 꿈’은 인정하지만 ‘절대적인 과학적 패러다임의 존재’는 부정한다.  

세 번째, 자연현상과 이에 대한 해석과는 별개로 ‘인문학적인 차원에서의 사유방식’에만 국한된다.   

선생님의 강연 덕분에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보편적 진리의 존재 그 자체와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정말인지 흔치 않는 귀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이는 요즘 흔히 회자되는 ‘통섭’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담이지만, 선생님 강연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요, 엉덩이가 좀 아프긴 했지만 선생님 강연덕분에 엉덩방아까지도 즐거웠답니다. 그럼 다음 강연에서 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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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0729 2010-01-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후기 박진감넘치게 잘 보았습니다. 저도 답이 궁금하네요!

돌이 2010-01-1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상상마당 후문에 위치한 계단 끝 빙판에서 넘어지신 분 아니신지요? 뒤에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앞에 계신 다른 여자분께서 재빠르게 도와주셔서 저는 미처 손을 쓰지 못했지만 '큰 아픔'이 없으시기를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이런 인문학적 논의가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시각과 의견들이 게진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보편적인 진리나 불변하는 존재 같은 건 없다. 다만 내가 끊임없이 구성하는 진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더욱이 그 구성도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에서 채운 선생님의 강의 시간 내내 '부정의 변증법'을 떠올렸습니다.

koooo 2010-01-1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싶었는데 그때 뒤에서 잡아줬던 사람이 저였답니다.^^ 괜찮으신 것 같아 다행이예요. 많이 어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그저 감상문 수준으로밖에 글을 남길 수 없었던 제가 살짝 부끄러워지네요. 님의 글도 두번이나 읽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좀 더 많이 이해하고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되겠다 자극도 받았습니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랫만이네요...

blue0729 2010-01-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저의 지식이 부끄러우니 이정도로ㅠ;;- 님의 글을 계속 곱씹어 보게되었습니다. 과학적 진리로 판명된 것들은 100% 확실한 것이 아닌, 확률적으로 다수인 근거들을 바탕으로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매우 심각한 고민상태에 빠졌거든요. 그래도 절대적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패러다임 혹은 이론이 후대 과학자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는 그를 참으로 보고, 실증과학*기술*산업과 같은 분야에 적용하는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재현의 논리로 보면 과학적 성과는 과연 진리로써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진리인가 아닌가를 꼭 따져야 하는 이유는 과학적 진실이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로 최근 감정을 주관하는 신경전달물질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서 우울증 치료제로 프로작이 난발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만약 후에 이 과학이 잘못된 지식으로 판명이된다면 프로작을 복용한 사람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회 자체가 하나의 생체실험실이 되겠군요. 그래서 과학은 진실의 판명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분야입니다. 휴// 풀리지않는 숙제네요ㅠ 그래서 이 문제는 정말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19 15: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것이 패러다임이지만... 지적해주신 문제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 같아요.

이를테면 예전엔 의사들이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몰랐다고 해요. 강의 내용 중에도 있었던 가요? (벌써 가물가물;) 세균 등 미생물의 존재 자체가 '가설'로 소수의 사람에게만 인정되던 시절에는, 산부인과에서 영아 사망율이 엄청 났다고 해요. 의사들이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그걸 주장했던 의사는 괴짜로 몰렸다고... (고미숙 선생님의 <이 영화를 보라>에 잠깐 나오는 얘기)

비근한 예로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락스'를 비상약으로 먹었다고도 하고. 콜라가 처음에는 두통약으로 개발되었다고도 하고. 프레온 가스 등은 그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용화 되어 널리 쓰였던 것이기도 하고, 수많은 예가 있을텐데 기억이 안나네요. 뭔가 아! 하는 예가 있는데 분명...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수도 있겠지요. 프로작의 후유증은 얼마든지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모두들 좀 더 생각해봐야 겠지요... 대한민국 국민 전부를 인문학 공부방에 초대해야 할까요.. 음;;

blue0729 2010-01-19 19:01   좋아요 0 | URL
ㅎㅎㅎ특히 모여서 과학공부랑 인문학 공부 같이해야한다니깐여 ㅎㅎㅎ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1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말씀하신 물리학자들의 꿈, 궁극이론(Ultimate Thoery, Theory of Everything)에 대한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물론 뒤에서 다른 분들을 훔쳐 보고, 필기를 하느라(정리해서 올려야 할텐데 말이죠!) 잠깐 생각하고 말았지만.

궁극이론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물리학계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결코 증명해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초끈이론이 갖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이론 자체가 대칭원리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서 군표현론으로 서술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 <초끈이론의 진실> / 승산) 그럼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분야이고... 심지어는 종교에 가깝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죠. 결국 '진리' 탐구의 현대적 버전이라는 비판.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기 보단, 진리라는 것을 인간이 잡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과학 실험에서도 여러 변수는 물론 관찰자의 관찰행위 자체가 이미... 뭐라고 해야 하나. 100% 객관적일 수는 없다는 거죠. 결국 과학이라는 것도 인간의 '해석행위'이니까요.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어떤 이데올로기이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전 그렇게 정리했어요. (다음 시간에 한번 물어봐주세요~ 저도 선생님의 답변이 궁금한데요)

마지막으로 노자님 말씀을...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닙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