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홀로 앉아
일운 지음 / 모과나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고향집에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가지고간 책을 읽었다. <산사에 홀로 앉아>... 경북 울진의 천축산 불영사에 기거하시는 심전 일운心田 一耘 스님의 마음 편지인데, 스님의 말씀이 참 맑고 명료하다. 스님의 아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밭을 간다'는 의미라지. 그 오랜 정진에서 우러나는 깊은 마음공부가 오롯이 전해져 왔다. 한마음 미혹하면 중생의 삶이고, 한마음 깨치면 부처의 삶이라더니 그 마음 한 자락 일어서고 흩어짐을 헤아리면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시간이 길어짐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불안에서 오는 마음의 초조함은 누구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네. 집착에서 사로잡힌 마음이 자기 자신을 고통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거라 하신다. 번뇌가 있어 허망한 생각을 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단다.

 

마음이 주인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마음을 떠나서는 깨달음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마음이 곧 부처!!! 지금 현재의 마음을 일상에서 평상심으로 유지하시는 것이 자신을 다스려가는 유일한 수행 방법이란다. 분별과 집착, 번뇌와 망상... 이를 버린 무념, 무아의 가르침이 가슴에 팍~ 와 닿긴 하는데, 나는 나를 잘 보지 못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도 못가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도 아니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은 더더욱 아니다. 스님은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하셨지만, 난 아직 미움을 건져내지 못한 아집으로 스스로를 침몰시키고 있다. "산은 늘 푸르고 물은 늘 흐른다."는데... 난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내일은 비가 오르나...

 

<내려놓아라>

육조혜능 대사는 지나간 것에 집착하여 보복하거나 해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지나간 것에 머물지 말라는 것이 모든 가르침의 근본입니다.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고 <금강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집착 없는 마음을 내라고 합니다. 육조혜능 대사가 출가하기 전에 시장에 땔나무를 팔러 갔다가 이 대목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어 출가했다고 합니다.
제가 즐겨쓰고 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로 '내려놓아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무자화두無字話頭'와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화두로 유명한 당나라 때의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의 일화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조주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 중에 엄양선신嚴陽善信 스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루는 엄양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 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
"한 물건도 가져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새삼 내려놓으라는 것인지요?"
"그러면 도로 가져가거라!"
이 말을 듣고 엄양 스님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은 그것마저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무소유라는 관념마저 버리라는 가르침이죠. 상대적인 분별과 집착은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곧바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방하착" 
(217~218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11-1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같이 비 오는 밤에 읽기 좋은 책이군요. 비 오는 밤에 어울리는 한시 한 수 떠오르네요. 최치원의 추야우중.

표맥(漂麥) 2015-11-17 18:34   좋아요 1 | URL
얼른 찾아봅니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힘들여 읊고 있건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알아주는 이 적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 밖에는 삼경의 비가 오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만 리의 마음이여

저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고교시절에 많이 듣던 구절이네요...^^

나무처럼 2015-11-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하착.
어느 라디오프로그램 멘트처럼 오늘 이 말이 내게로 오는군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무소유의 관념마저 버리라니...그동안 내려 놓자 비우자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 잦은 가을 밤에 읽기에도 좋은 책 같고...주문해야겠습니다.

표맥(漂麥) 2015-11-17 18:39   좋아요 0 | URL
일운 스님은 비구니 입니다. 춘하추동의 편지글이 있는데... 나름 섬세한 면이 있어 읽을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