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라도 내려놓아라 - 몸과 마음이 분주한 현대인에게 전하는 일상의 소중함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5
뤄위밍 지음, 나진희 옮김, 김준연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마음을 정화하는 좋은 책을 만났구나. 을미년 벽두에 이처럼 격이 높은 책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저 홍복洪福이다. 이번에 읽은 <잠시라도 내려놓아라 : 몸과 마음이 분주한 현대인에게 전하는 일상의 소중함>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국립대 푸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교수 뤄위밍駱玉明의 저서이다. 이 책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책제목이 아니었다. 솔직히 집착을 놓아 버리라거나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방하착放下着 관련 서적들이 최근에 좀 많았는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책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얼핏 훑어보니 '화두와 한시에 정갈하게 담은 삶의 깨달음'이란 말이 눈에 들어오더라. 한시와 화두? 뭔가 쉽지 않다. 선의 핵심인 화두는 정말 어렵다. 씨~익 웃음으로 답은 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표현해 내기가 어렵다. 이런 화두를 한시와 접목하여 풀어낸다는 것은 내공 깊은 고수를 만난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선은 철학이고 종교다. 다만 선은 체험적 성격이 강하고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선은 공허하고 허망해 짐작조차 하기 힘들 것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하고 단순명료하다. 시도 마찬가지다. 중국 고대시가 중에는 일상의 삶과 경험을 통해 선을 깨닫게 하는 걸작들이 꽤 있다. 6쪽

 

책의 결론이야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내려놓아라'는 거다. 그렇게 한다면 "고집과 탐욕, 허황된 생각을 없애면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완벽한 인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선은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9쪽)."라고 그 지향점을 '여는 글'에서 미리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데도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요 경쟁이요 욕망이더라. 제대로 하늘 한번 바라보기 힘들고, 물 한 모금 여유로이 마셔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어떻게 내려놓으란 말인가? 저자가 이끄는 데로 시와 선의 세계에서 거닐다보면 정말 내려놓을 수 있으련가?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뜬다. /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 이것이 바로 좋은 인생의 시절이라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無門慧開禪師-

 

책은 열일곱 테마로 화두와 한시에 담긴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평상심'이다. 선종의 화두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구절이 '평상심이 바로 도이니라'라고 한다. "평상심은 어수선한 몽상과는 거리가 멀고 속세의 영욕과 득실로 인해 기쁨과 슬픔이 멋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에 인연을 따르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으며 모질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고생을 회피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는 것이다(20쪽)." 아하! 평상심은 소박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자신을 지혜롭게 지키는 힘이구나.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되는 게 도라니……. 그렇지! 그러고 보니 평온 속에 삶의 기쁨이 항상 있었더랬지. 갑자기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는 말씀이 쉬이 가슴에 들어와 자리 잡는다...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란도란 사람소리. // 석양빛이 숲 속 깊숙이 들어와 /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王維, 鹿柴-

 

평상심 다음으로 관심 가는 내용은 '고요함'이다. 마음에 드는 시_왕적<입약야계>王籍, 入若耶溪  한 구절이 있었는데, "매미 울어대니 숲은 더욱 고요하고, 새 지저귀니 산은 더욱 그윽하네. 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 세상은 소리의 천국, 그 시끄러움에서 만나는 고요의 소중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특히나 자연 본연의 아름다운 음률 속에 인간의 영혼은 정화되고 녹아든다. 이러한 고요를 통해 문득 다시 분주한 삶을 깨달을 때 우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자연의 고요를 통해 선의 정취를 표현해 낸 고도의 공감감적 기법이 의외로 심오한 울림으로 와 닿는다. 이와 함께 왕유의 <녹채>王維, 鹿柴도 자연의 깊고 그윽함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깨달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육조 혜능의 남종선에는 세 가지 핵심이 있다는데, 그 첫 번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는 심외무불心外無佛이고, 두 번째가 깨달음이요, 세 번째로 불법은 속세에 있으니 속세와 떨어지지 않아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佛法在世間, 佛離世間覺 했다. 쉽지 축약해 보면 불성은 인간 세상사, 즉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고로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미소와 생기 넘치는 마음으로 세상의 변화를 대하면 인생의 즐거움을 얻을 것 아니겠는가. 가슴으로 깨달으면 머리가 환해진다고 하더라. 깨달음이란 고차원적 언어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소하고 소박한, 자연 그대로 꾸밈이 없는 삶에서 문득  미소 짓게 되는 '그것'이 아닐까……

 

온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이 보이지 않아 / 짚신이 다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 돌아와 뜰에서 웃고 있는 매화 향기 맡으니 / 봄이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嶺頭雲。 歸來笑撚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작자 미상, 尋春-

 

한시에서 선의 향기를 찾아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무엇보다 중국의 불교가 현지화 하는 과정에서 노장사상이 어우러졌음을 들고 있다. 즉, 불교와 노장사상의 결합이 선종사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세계의 선자'라는 스즈키 다이세쓰는 "선은 본질적으로 삶의 본성으로 들어가는 예술이고 구속에서 벗어나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안내한다."라고 하였다. "선의 내면으로 다가가면 소위 '상식'이 와해되어 훨씬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고 한다. 선의 깨달음이란 것이 언어적 해석과 논리적 분석을 벗어나 각자의 경험과 실천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_정신의 해탈_이라고 볼 때, 시인의 자연과 동화된 체험에서 나오는 시적 표현은 또 다른 '진실한 의미'가 될 터이다. 

 

열일곱 테마의 '내려놓음'을 읽다보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 선과 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네 불편하고 삭막한 인생고락호에서 잠시 내려와 큰 숨을 한 번 쉬게 되더라. 인생고락 종심이기 지족상락 능인자안人生苦樂 從心而起 知足常樂 能忍自安이라 했다. 인생의 고통과 즐거움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니, 스스로 만족하면 항상 즐겁고 능히 참아 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옛 말씀이 생각나더라. 한시漢詩·선시禪詩에 내포된 여백의 공간에서 찾아내는 인생의 깨달음이 지적이고 내밀한 충족으로 온 정신을 달뜨게 한, 참으로 괜찮은 책읽기였다. 오랫동안 두고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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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한시나 옛 고전작품을 읽었는데 요즘에는 잘 안 읽게 되네요. 이 책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

2015-01-21 18:3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에겐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편향이 심한 크리스챤이나, 한시 보면 경기 들리는분에겐 별로겠지요. 제 느낌으론 배움이 많았던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