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서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P출판사 카페를 들락거리다가,  "원고 투고 이렇게 하면 백퍼센트 거절당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 원고를 투고하고자 하는 예비 작가에게 조언하는 글인데, 이 중 "내용면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아주 당연하면서도 예리한 지적이라 메모를 해두었더랬다. 크게 3가지로 요약하면  허술하고 평면적인 캐릭터, 개연성 없는 허술한 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한 그저 그런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별로 어필하지 못한다는 거다. 물론 상업성을 중시하는 전문 출판편집인의 말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소설 작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본 전제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토대 위에 인간의 내면적 심리와 세상의 부조리를 물 흐르듯이 이끌어 내거나 담아내면 명작이 되는 거고...

 

이번에 읽은 서준환의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2005년에 초판 출간되었으나 절판되고, 이번에 출판사를 바꿔 재발간한 책인가 보다. 책의 크기는 남자 어른 손바닥(182*128mm, 176쪽)만 하고, 두 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었다. 표제작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이나 다른 작품 <마녀의 피>란 제목만 보더라도 평범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_개인적은 '파란 비닐'의 가벼움이 별로 와 닿지 않아 차라리 책제목을 <마녀의 피>로 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했다._ 적어도 '허술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나 '어디선가 본 듯한 그저 그런 이야기'의 범주에서는 벗어난 소재였다. 그런데 독자에 따라서는 '개연성 없는 허술한 이야기'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이러한 황당한 듯한 허술함이 바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좋게 평가하고 싶어진다.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작가의 습작_무례한 표현이라면 좀 미안하지만_ 같으면서도 뒷맛이 있는 소설이더라. 일상에 쫓기는 한 직장인이 '휘파람별'에서 온, 파란 비닐인형처럼 보이는 외계인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적어내리고 있다. 특별한 클라이맥스 이런 건 없다. 그런데 마지막의 반전은 이 작품이 꽤 매력적인 짜임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좀 은은한 구성이랄까.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비닐의 '가치 없음' 속에 인간의 일상마저 무의미한 색채를 띄더만. 그렇다고 소설이 깊이 있게 와 닿은 건 아니다. 책의 뒤표지를 보니 김경주 시인께서 이 소설을 '끝내준다!'고 극찬하는데, 나의 느낌으로는 조금 오버하신 듯하고 그냥 소설가적 자질을 잘 보여주나 평범한……. 이 정도였다.

 

나는 표제작보다 <마녀의 피>가 더 섬찟하더라. 이 작품이 처음 나온 2005년보다 우리의 성(性)문화는 훨씬 개방되었고, '성 마이너리티'들의 행보도 자연스레 매스컴을 타는 세상이니 지금 시점에서는 이 작품이 훨씬 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작품의 도처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패러필리아(paraphilia, 성도착증)가 넘쳐난다. 섹슈얼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기본이고, 트랜스베스티즘(Transvestism, 의상도착증), 푸로취어리즘(Frotteurism, 접촉도착증)에다가 익스히비쇼니즘(Exhibitionism)과 페도필리아(Pedophilia)를 그렇게 음란하거나 모나지 않게 작품에 응축시켰다. 처음엔 일본판 저질 게임을 보는 듯한 역겨움에 이맛살 찡그러지지만 게임이랑 현실을 구분 못하는 오타쿠들이 허다한 요즘의 세태를 작가가 참 잘 비틀었다는 생각이다. 문학이란 틀에서 성정체성의 이슈를 이렇게 씁쓰레하게 뒤통수 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용기_흔히 실험정신이라 일컫는_ 이며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얼개가 상당히 탁월한 작품임을 느끼게 하였다.

 

요즘은 정상적이란 것이 뭔지 모르겠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느껴지는, 시쳇말로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경계를 걷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떠올린 책읽기였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새로운 상상력과 문학적 실험 감각이_쓴 맛이란 점에서_ 잘 드러난 작품으로 여겨진다. 한번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_우울하게도 읽는 동안엔 몰랐는데, 이 글을 적으면서 언젠가 어디선가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이렇게 내가 살고 있다. 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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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로취어리즘은 처음으로 들어봅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건데 생각보다 특정 대상의 도착증이 많더군요.

표맥(漂麥) 2015-01-14 10:37   좋아요 0 | URL
성적으로 자꾸 기대려는, 문지러려는 그런 내용이더군요. 하이튼 마녀의 피는 좀 얼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