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시대를 거슬러 올라 대가나 위인들의 행적이나 업적을 쫓는 일이 아닌 그들이 즐겨먹던, 혹은 영혼을 살찌웠다고 말하는 '소을푸드'(Soul Food)를 찾는 즐거운 일에 동참했다. 대가의 식탁을 엿보고 그들이 사랑한 요리를 통해 그들에게 때론 영감을 주고 때론 위안이 되어주었던 다양한 음식들을 저자와 대가의 인터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간다. 그런 독특한 형식은 마치 그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지금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요리들은 대가들을 더욱 친근하게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혹 어떤 요리나 재료들은 자연스럽게 대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글공장이라 할만큼 짧은 기간동안 무려 100편 이상의 소설과 두 해 동안 145편의 글을 썼다고 말하는 발자크의 경우는 커피예찬론자라 할만큼 어느 책에서나 쉽게 그가 커피를 즐겨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하루에 50잔 이상을 마셨다는 그의 커피는 무엇보다 그가 글쓰기 노동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각성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서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번역본으로만 11권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은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냄새를 통해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매우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마들렌, 비스코티, 굴 액즙 한 방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감각이란 얘기네.
물론 나뿐 아니라 보들레르, 말라르메, 릴케등 상징주의 작가들은 향기를 여러 관능에 빗대어 애기했지. 냄새는 때로 죄악의 상징이자,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되지.    -p.200

인터뷰어가 된 저자의 질문은 이미 고인이 된 인터뷰이들이기에 다소 노골적이고 시원하게 긁어주었으면 하는 예민한 부분까지 재미있게 전달되고, 예리한 지적으로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의 주제가 되는 대가의 요리에 대한 에피소드는 생각해보지 못한 대가의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도 한다. 나폴레옹의 경우 미식가라는 역사가들의 평가와 달리 그는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즐겼고, 황제가 된 후에는 닭요리를 먹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잊을 수 없고 사랑한 요리는 '치킨 마렝고'라는 승전후 맛본 닭요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어디까지가 추측이고 사실인지 모호한 대답으로 일말의 의문을 남기지만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 이런 요리들이 있기에 그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일했고 보티첼리와 술집을 차렸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요리를 하며 발명했다는 스파게티면과 포크, 와인따개와 냅킨은 사실일까 미덥지 못했지만, 실제 그가 고안하고 설계했다는 다양한 요리도구의 설계도는 그를 '최후의 만찬'의 화가보다는 요리도구 발명가로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영화같은 인생의 주인공이자 로큰롤의 제왕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와 정크푸드는 원조 스타마케팅의 그늘에 가려진 한 가수의 슬픔을 관통한다. 살아생전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반고흐의 감자에 대한 이야기도 건실한 생에 대한 절박함과 순수한 애정이 묻어난다.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 라는 브리야 사바랭의 유명한 구절은 이 책을 한마디로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대가들이 즐겨먹은 요리는 그 사람의 인생전부를 부연할 수 있을만큼 사연과 추억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화려한 인생을 살았거나 존경받는 위인이었지만 오히려 외로움과 고독에 깊이 절망했던 한 인간을 위로하기에 한 잔의 커피와 향기나는 쿠키, 맛있는 요리 한 접시에 그들이 위로받고 안식을 찾았다는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온기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들의 식탁을 엿보기전 인터뷰를 통해 대가들의 인생에 쉽게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듯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울 푸드란, 뭔가 거창한 게 아니라, 어쩌면 자기의 가장 비참한 인생이 아름답게 녹아 있는 그런 음식들인지도 몰라요. 가난한 소년의 기억은 가수왕이 된 나에게는 영원히 아프고 영원히 그리운 기억이었는지도 몰라요.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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