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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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렛미인 헐리우드판 영화가 개봉했다. 그리고 3년전 동명의 스웨덴판 영화와 원작이 먼저 국내에 소개돼 마니아층의 열렬한 지지와 무한애정, 호평으로 오랫동안 회자됐었다. 그 때까지도 영화나 책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첫 영화가 개봉된지 몇 해 되지 않았음에도 굳이 상업성과 자신들의 색을 입혀 영화를 만든 헐리우드의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그 이야기에는 어떤 마력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책을 덮고난 지금에서야 느끼는거지만 역시 "렛미인"에는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묘한 끌림과 절제된 슬픔, 잔인한 전율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 그건 무엇보다도 깊은 내면의 외로움을 너무도 처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오스카르와 엘리를 비롯해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음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는 책을 읽을수록 점점 더 고조된다. 상황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아닌 상처와 고독,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무형의 슬픔을 껴안은 캐릭터들로 인해 형성된 어둠은 극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사실 뱀파이어라면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후 신비감이나 공포는 옅어졌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처녀귀신처럼 오랫동안 가공된 이미지와 뻔한 설정에 식상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렛미인에서 가져온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인간 내면에 잠재해있는 거대한 고독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매우 현실감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리고 학교폭력과 왕따에 불안한 학교생활로 속내를 터놓을 친구하나 없는 편모슬하의 오스카르와 새아버지, 이복형제와 살고 있으며 오스카르를 위협하는 욘니, 아동성추행 전력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호칸, 이제 곧 새아버지를 맞게 될 반항아 톰미, 알콜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가는 라케와 엘리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비르기니아등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 온전한 가정환경과 친구를 가진 이가 없다.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친구에게 밀려났고 사회의 중심에서 비껴난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더욱 끌어당긴다. 

 

또한 소설에서 어둠을 극대화하는 부분은 바로 불안이다. 12살이 가져다주는 사춘기적 불안, 부모나 가족의 부재, 마이너 인생의 비참함, 친구들이나 사람들과의 철저한 고립은 사회나 가족, 인간관계가 빚어낸 불안에 천착한다. 그를 통해 드러난 잔인함은 공포가 아닌 표면적으로 드러난 불안을 의미하기에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독자를 짓누르는 외로움의 무게 또한 소설의 어둠을 한층 무겁게 한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각기 다른 외로움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늘 오스카르에게 들어와도 되내고 묻고 허락을 구하는 엘리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면서 찡한 여운을 남긴다.


이 이야기는 결코 뱀파이어 공포나 스릴러가 아니다. 인간내면에 철저하게 웅크리고 있는 고독이며 불안이다. 메마르고 황량한 곳에서 오스카르가 찾아낸 희망은 매혹적이지만 결국 또다른 비극과 소외, 외로움의 연장을 의미한다. 이 소설을 보며 짓누르는 어둠의 중압감은 바로 그런 희망조차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때문에 한층 더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다. 반쪽과 반쪽이 만났지만 온전하게 하나가 되지 못하기에 나는 그 미완의 아름다움에 미혹되고 말았다. 새벽녘 음침하게 숲을 뒤덮은 안개처럼 모호하지만 형태가 없는 공포에 현실감을 상실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빠져들수록 현실감각을 마비시킨다. 때때로 책을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도 그런 실체없는 공포에 현실감을 잊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간혹 극렬하게 몰아치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사는 현대인들이라면 렛미인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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