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린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만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만큼 소설 화차는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이었다 말하고 싶다. 또한 여작가이기 때문에 더 밀도있게 그려지는 여자들의 심리묘사는 순간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정도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다중채무자나 개인파산, 대출, 사채로 인한 폐해는 현재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요목조목 집어주는 듯해 매우 놀라웠고, 일본의 신용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때문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무중 총상으로 휴직하게 된 형사 혼마에게 죽은 아내의 사촌인 가즈야의 느닷없는 방문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부모의 반대에도 강행한 약혼이었기에 가즈야는 말이 새나갈 염려가 없는 혼마를 찾아와 자신의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가즈야의 부탁을 받을 때만해도 일이 커질 줄 몰랐던 혼마는 단순한 가출이나 실종으로 판단하며 약혼녀인 세네키 쇼코의 행방을 쫓게 된다. 개인파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사실을 물은 뒤, 그녀가 사라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찾던 중 세네키 쇼코가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그녀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난 책을 읽은 후 조금 장황하고 디테일하게 설명된 신문의 사회부 한귀퉁이를 본 듯 했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출간한 당시였던 2000년도에 보았다면 이 놀라움은 나에게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게 할만큼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고, 현금을 주며, 대출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무절제한 신용카드의 남발은 우리나라에서도 IMF위기를 초래하며 수많은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나 역시 신용카드인 줄 모르고 만든 월급카드가 신용카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현금서비스나 할부구매로 많은 카드값을 지불하며 비싼 교훈을 얻었다. 카드사용을 줄여가고 있지만 이미 습관이 된 카드사용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보니, 책 속의 쇼코이야기는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는 변호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제가 드린 말씀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세키네 쇼코 양은 특별히 형편없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의 방향만 조금 바뀌었어도 혼마씨나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p.148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만난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급하게 취직하게 된 친구였는데 취직하게된 계기를 설명하다 카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카드를 사용하고 다닐 때는 당장 내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아 좋았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다음달 청구서에 찍혀 빚이 되어 날아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참 철없는 친구라며 혀를 찼는데 나 역시 카드사용이 늘면서 결제일이 다가올 때마다 수십번을 돌이켜봐도 쉽게 쓴 돈은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일이 늘어나자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었다. 변호사의 말마따나 이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사회의 필요악인 존재다. 


쇼코 양이 돌오와서 왜 개인파산을 해야만 했는지 해명을 해야한다면 제가 얼마든지 협력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에서 카드빚으로 인한 파산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해와 다름없는 것이죠.    -p.67
 

제목인 화차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그녀는 신용카드를 -혹은 신용사회를- 여러사람을 지옥으로 빠뜨린 화차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이런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차를 타버린 두 여자의 삶을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조차 사정을 헤아리자 감히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녀는 강한 반기를 들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특히 변호사가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 개인의 파산을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충고하는 부분은 설득력있게 전해진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려는 기업의 일방적 태도와 국가의 방관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1인당 개인부채가 총소득의 80%를 넘었다는 최근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지경이 되도록 개인을 부추겨온 사람들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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