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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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천동 태극마을, 다음 촬영지로 정해놓은 곳이었다. 색색깔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예쁜 풍경이 되는 그 곳은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출사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풍경 가운데 저자가 운영하는 [우리누리 공부방]이 있다. 1988년 7평 남짓의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해 동네에 홀로남은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열린 [우리누리 공부방]은 20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낀 거지만 수많은 사진 속 풍경에서, 집만 볼 줄 알았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공부방의 큰이모이자 저자인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방치된 아이들을 품은 그 풍경을 진짜 사랑한 사람이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카메라를 먼저 들이대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4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우리누리 공부방]의 20년 역사와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과 이모, 삼촌의 이야기, 그리고 공부방을 통해 배움의 기쁨을 함께 나눈 부모님들과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부모를 잃고 돌봐주시던 조부모마저 떠나보내 홀로 남게 된 아이들과 자신마냥 가난했던 자식에게 기대기 싫어 외롭게 사시던 아랫집 할머니의 쓸쓸한 죽음앞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글을 모르던 어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들에게 영어수업을 하고, 중학생이 되어 받아줄 수 없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공간마저 허물어 도서원을 만들어주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미소짓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래 동네사람이 아니었기에 체감할 수 없었던 이웃들의 가난을 그들과 똑같이 일하고 겪으며 배우려했던 저자의 노력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무엇보다 가난의 가장 큰 문제는 되물림이다. 특히 먹고사는 일이 빠듯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버리기까지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쉽게 탈선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우리누리 공부방]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런 아이들을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데 있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문화적 혜택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회나 국가가 해야할 일을 개인이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저자의 종교인 카톨릭 단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힘든 고비를 넘기며 끝까지 공부방을 지켜온 큰이모와 공부방 자원교사를 자처한 수많은 이모와 삼촌들의 노고를 높게 사고 싶다. 무엇보다 공부방을 통해 잘 자라준 아이들이 큰이모마냥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작고 좁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우리누리 공부방]은 현재 단란한 2층으로 장소를 옮겨, 오늘도 여전히 부모의 빈자리때문에 텅빈 집을 지키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열려있다. 그리고 공부방을 통해 어엿한 성인이 되고 한 집안의 구성원이 된 아이들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부방은 진정 희망이라는 단어를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치된 아이들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공부방이 없었다면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불안한 미래와 막막한 현실에 분노하고 주저앉으며 사회적 약자나 그늘이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은 관심과 애정,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배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 말하고 싶다. 아무리 일회성 기사일지라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훈훈한 이야기거리를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말을 한다. 나 또한 [우리누리 공부방]같은 곳이 있기에 부산은, 그리고 세상은 살맛나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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