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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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여자연예인들의 얼굴이 대부분 비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나왔던 여배우들은 데뷔때 모습을 잃어버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고, 신인여배우들은 예쁘다는 여배우들의 얼굴을 묘하게 조합해놓은 듯한 인상때문에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미디어의 발달속도만큼 사람들이 판단하는 미의 기준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리고 그만큼 발달한 의학기술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서 컴플렉스를 느끼는 부분에 과감하게 칼을 들이댈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뼈를 깎는 고통도 감내할 정도의 보상이 되어주었다. 마치 외모가 전부인 세상, 심지어 외모가 선악의 척도를 구분하는 웃지 못할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 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
 

여기 수많은 사람중에 세상에 다시 없을 못생긴 얼굴로 눈에 띈 그녀가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첫 눈 반했다고 생각하는 그가 있다. 시대배경은 30년정도를 거슬러 올라갔지만 그 때에도 못생겼다는 것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나보다. 그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있는 백화점은 불행히도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인종들이 득시글대는 곳이었고, 그녀는 분명 훌륭한 성적에 사무직으로 들어왔으나 점점 한직으로 내몰려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궂은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가는 그녀의 짐을 나눠들어주고 친구가 되지 않겠냐 말한 그였지만 그녀는 그의 진심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다가와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남자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끼어든 요한은 서로의 진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둘을 위해 잦은 술자리를 만들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대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p.185


그녀의 못생긴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추측으로만 가능케하는 온갖 비유가 난무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평범함 이상의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미남과 추녀의 사랑이라... 어째 뻔한 스토리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시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그의 순애보 뒤에 따른 부모의 그늘, 못생긴 엄마를 끝내 온전하게 사랑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받지 못한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그녀를 향해 맹목적으로 불타올랐다고 생각했다. 무정보다 더 비참한 게 동정이라 말하는 극 중 대사처럼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이 동정이었다면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순간 나는 그녀편이 되어 그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맹렬히 끓어올랐다. 같은 여자인 내가 그녀를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며 그녀는 절대 동정따위는 필요없을만큼 강인해졌는데 나는 뒤늦게 그녀의 괴로움과 상처를 알게 됐고 남자들을 비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여자보다 더 예쁜 꽃미남에 열광하고 성형을 한 여자연예인들을 헐뜯고, 지나가는 다른 여자들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자신을 비교하는 속물스런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비난받아 마땅한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보여준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가 행복했을 거라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사그라들었고 오랜만에 사랑이란 감정에 가슴이 짠해졌다.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전부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고, 아름답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을 보이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작가는 분명 지금의 세태를 꼬집고 비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읽고 난 지금도 소설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내가 행여나 상상했던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는 안도감때문에 해석도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미녀가 싫다기 보다는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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