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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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거리를 풍부히 남겨주는 최규석 작가의 만화는 이번달 나의 테마였다. 가장 먼저 읽은 <습지생태보고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솔직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 역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로 어머니와 누나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1970~80년대 과거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작가와는 3년의 나이차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의 가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했다. 간간히 들려주시는 추억담에서야 상상할 수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세대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그 시절 사람들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온 "원주민"이라고 칭하는 작가의 의도대로 왠지모를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책의 첫장에 등장하는 <어디에나 있다>란 에피소드에 보면 도로가옆에서 고추를 심는 할머니나 옥수수를 따는 할아버지의 모습, 고층빌딩 사이 이국땅의 잔디밭에서 천진한 웃음으로 쑥을 캐는 할머니의 모습은 울타리밖으로 밀려난 영락없는 원주민의 모습이었다. 지킬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 한 켠에는 늘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을 통해 잊은 듯 살았지만 나의 유년에 큰 영향을 미친 할머니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도 최규석작가 특유의 자기삶에 대한 애정과 긍정이 묻어난다. 겨우 한 페이지의 만화지만 작가 특유의 깊은 사유와 힘든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 대한 예우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의 책, 겨우 두 권이지만 작가의 삶 전체를 관통한 가난이란 놈을 창피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의 공부를 위해  적금을 깨준 누나나 가족들을 위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 추억들이 그를 지금까지 키운 자양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아마 작가도 이 책을 그리고 쓰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읽고 나서 가벼운 마음이 될 수 없는 것이 그의 만화에서 느끼는 매력이다. 그의 만화를 보며 또 한 번 아득하게 먼 과거를 상상해본다. 박물관에서 먼지 쌓인 채 사라져가지만 몸 속에 각인된 유전자의 기억은 그의 만화를 보며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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