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1월, 오쿠다 히데오의 새장편소설이 발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다른 어떤 책보다 <남쪽으로 튀어>란 소설을 너무도 재미있게 봐서 이 책 역시 몹시 기대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튀어>만큼 유머러스하지 않았고 이전에 그에게 볼 수 없었던 진지함에 당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가볍게 여겨 스쳐지나갔을 짧고 경쾌한 문장과 디테일한 묘사가 설득력을 더하며 몰입하게 만들었다. 1권을 읽은 후 약 한 달 뒤 2,3권을 연속으로 읽었다. 1,2권까지 읽으며 3권에서는 1,2권에서 펼쳐놓지 못한 거대한 음모와 배후를 드러내며 바짝 긴장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했지만, 앞권들과 대동소이할 평이한 리듬으로 반전에 대한 나의 속내를 비웃으며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


7년 전 임신중이던 아내를 사고로 잃은 형사 구노, 슈퍼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보탬을 주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쿄코, 밤길에서 아저씨를 상대로 돈을 뜯고 다니는 유스케와 친구들, 그 밖에도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교코의 남편이 다니는 하이테스 사옥의 방화사건으로 인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건전개를 풀어나간다. 이야기가 굽이치는 언덕을 넘을 때 작가는 과연 어떻게 결말을 낼까 몹시 궁금했다. 극적인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했던건 이야기가 초반부터 몹시 미스테리한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끝까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비장의 카드를 꺼내주길 바라고 읽었던 나의 선입견에 대한 반격에 어이없는 헛웃음만 나왔다. 그를 뻔한 작가라고 생각한 나의 오산이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작가가 의도한 것은 미스테리가 아니었다는 것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일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 평범함이 고맙다고 여기는 것은 깨지고 난 후이다. 특히 남편 시게노리의 방화사건으로 가족의 평화로움이 깨질 위기에 처한 아내 교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섬뜩해지고 만다. 실로 팽팽한 긴장의 끈을 날렵한 가위로 일순간 잘라버린 느낌이었다. 시게노리의 범죄와 아르바이트하는 슈퍼에서의 강경한 반발로 교코의 일상이 나락끝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나는 그들의 평범함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인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처럼 누군가의 방해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알고보면 이기적인 자신, 상처받기 싫어하는 자신때문에 주변사람 모두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형사 구노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같이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살아난 장모에게 부모이상의 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매일 밤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었다. 2권 마지막에 나오는 구노 형사의 반전때문에 더 극한 결말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지만, 앞부분을 되짚어보니 그제서야 작가가 하려던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구나 매일 똑같은 일상에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길 바라지만, 실상 평범한 일상은 어긋나버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사소한 대화와 행동, 몸짓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은 결코 한순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노형사와 동료 이노우에의 생각을 통해 인간은 늘 외롭고 고독한 존재지만 관계를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비로소 살아간다고 느끼게 되었다. 가족과 동료, 그리고 친구 가깝고 그만큼 소홀하지만,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깨닫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의를 관철하고 싶은 것인가. 악을 응징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인가. 분명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 자신은 사람과 깊이 관계하고 싶었을 것이다. 쭉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p.242 

 
"전 고교 중퇴라 앞날이 캄캄합니다."

"그런 건 사소한 거야. 인간은 미래가 있는 한 무조건 행복한 법이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전부 조건부야. 가족이 있다거나, 살 집이 있다거나, 일이 있다거나, 돈이 있다거나 그런 것을 토대로 삼아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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