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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애무하기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질식할 듯 꽉 조여진 허리부분과 과장스럽게 강조된 엉덩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부채처럼 층층이 퍼지는 드레스. 1837년부터 1901년 사이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의상스타일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를 비롯 근현대를 아우르는 시기와 맞물리며, 급변하는 영국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빅토리아 시대를 1966년생 작가 세라 워터스는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레즈비언이라는 불편한 소재를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큰그림을 그려보자면 당시 영국의 양지와 음지를 살아간 한 여성의 변화무쌍한 인생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스토리의 전개를 더욱 극적이며 풍부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먼저 번역된 <핑거스미스>가 입소문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진가를 재확인하고자 이제서야 번역되었던지, 아니면 레즈비언들의 적나라한 성적묘사때문에 번역을 미뤄왔던지 분명 둘 중 한가지 이유때문에 데뷔작의 번역이 늦어졌을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핑거스미스>를 먼저 봤기에 데뷔작이라는 책의 수위가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핑거스미스에서는 미스테리에 열을 올린 탓인지 레즈비언 이야기는 소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소위 이반문학이라고 터부시될 뻔 했던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제 발로 당당히 벽장속에서 걸어나온(커밍아웃) 사람들 덕분에 조금은 누그러진 사람들의 인식변화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 학창시절 동성에게 한 번쯤 풋풋한 감정을 품어본 기억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덜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바닷가 근처 영국 윗스터블 지방의 굴식당에서 일하는 낸시 애슬리는 어느날 언니 앨리스와 간 연애장(코미디언이나 배우들이 노래와 춤, 연기를 공연하는 곳)에서 남장여자로 분한 키티 커틀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점점 그녀의 연기와 눈빛, 몸짓에 애달아 하며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특별석에서 그녀의 모습에 황홀해한다. 그러던 중 키티는 자신의 열렬한 팬인 낸시를 직접 만나길 청하고, 고아나 다름없는 키티에게 낸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키티를 알아갈수록 낸시는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고 런던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 키티를 따라 의상담당자격으로 둘은 런던행기차를 탄다. 둘은 우연찮게 남장을 한 채 한 무대에 서게 되고 런던에서 크게 히트해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어느새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지만 키티의 배신으로 낸시는 좌절과 상실감에 키티를 떠난다.
여기까지가 1부의 줄거리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2부에서 키티를 잃고 방황하는 낸시가 여자임에도 남장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남창이 되었다가 막대한 부를 가진 다이애나라는 여인을 만나며 쾌락과 허영에 허우적된다. 3부에서는 다이애나에게 버림받은 후 낸시가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플로랜스(물론 여자다)를 만나며 키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혼란스러워하던 성정체성에 해답을 찾고 당당해진다. 빅토리아라는 특수한 시대상을 빼면 사실 스토리만으로는 진부해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한 여인의 굴곡많은 삶이라는 식상한 껍데기밖에 남는 게 없을텐데 작가는 자신이 공부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세심하게 녹여냈다. 또한 당시에만 통용되던 레즈비언 사이에 쓰이던 은어나 속어를 끄집어내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했다.(벨벳 애무하기도 그런 표현 중 하나다.) 분명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 했을 거라고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표현에 당황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 시대의 변화를 표출하는 레즈비언들의 은밀한 욕망, 화려함과 허영속에 가려졌지만 다이애나를 통해 드러나는 상류사회의 퇴폐적 문화, 적은 비중으로 비춰지지만 거세게 일어나던 노동운동과 여성인권보호의 움직임들이 이야기를 쉽고 가벼운, 혹은 자극적인 비주류소설로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류의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던지 호기심만으로 접근하려 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꽤 적나라한 성적표현이 19금정도의 수준이고(내 생각으로 많지는 않다), 낸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사방 1.5cm정도 좁은 여백과 빽빽한 글자수에 압도당해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이 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스토리의 전개에 집중하며 읽었다. 작가가 고스란히 독자에게 남겨준 '상상하며 읽기의 즐거움'을 100%누리면서 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