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따듯한 [형용사]
1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 ‘따뜻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
2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따뜻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

저자는 '따뜻한'이 아니라 '따듯한' 글을 품기를 바란다며 이 책의 마지막장을 마무리지었다. 제목에 나타난 그 단어의 의미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다가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곰살맞은 그 감정을 알 듯 싶어졌다. 대작가의 방부터 작가의 사적인 습관, 제3의 눈을 통해(내제자나 전기작가들) 보여지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한 언급이 많았다. 글이나 이야기의 시초부터 작가들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고뇌와 근심이 따듯하고 보드라운 눈길로 쓰여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혹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결코 전문적인 작법에 관한 강의는 아니었다. 소설이나 혹은 소설로 분류되는 모든 이야기의 근원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나 이야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 글을 쓰려는 작가들의 자세와 생각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한다. 평론가로 데뷔해 한동안은 모든 글의 부정적 측면을 보고 비평적으로 대하는 자세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작가지만, 이 책을 통해 풀어가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보편적 감성의 해석은 놀라울만치 따뜻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명한 책과 작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건 재능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다고 우러러봤던 대작가들의 인간적 불안과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글을 쓰며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는 발자크의 생활도 작가들에 대한 생각을 달라지게 만든다. 장편소설에 들어가기 전 마라톤으로 몸을 단련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들며 글쓰기는 정신적이자 육체적인 노동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소설을 적당한 놀이정도로 생각해 말랑한 기분에 젖어 쓰는 거라면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입니다.
발자크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입니다.    -p.67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라면, 소설에 헌신할 까닭이 없겠지요.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면 그만입니다.  -p.71

따듯한 글품기를 모태로 따뜻한 온기를 품은 작품들의 향기가 곳곳에 베어난다. 그 작품을 읽으며 느꼈을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글에 대한 판단을 가로막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글에 대한 애정을 품었다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동(動)하게 만드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수많은 독자들보다 먼저 내면의 자아와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이 흘려야했을 눈물과 견뎌내야했던 고통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장, 남진우의 타오르는 책이란 시를 읊조리며 작가나 독자 모두 결국엔 독서의 뜨거운 불구덩이에 발을 담궈보지 않고서는 글쓰기의 매혹을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매혹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만이 쳔년동안의 습작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책읽기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차분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따듯함을 지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겠지요. 편견없이 내 앞에 놓인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할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 역시 따듯한 품기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약점을 찾아내는 읽기, 생채기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치를 큰 틀에서 감싸는 이해와 배려가 따라야 합니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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