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답게 이 책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액티브했다. 작중 인물들간의 대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내면은 그리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지만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은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깊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수백컷을 편집해 이어붙인 영화처럼 흐름이 거침없었다. 최근까지 본 영화 중 3600컷이라는 엄청난 양으로 편집된 '세븐데이즈'가 생각났다. 호불호를 떠나 막힘없는 글의 속도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금방 읽을 수 있었기에 재미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팀으로 움직이는 두 형사가 있다. 10년이상의 현직생활에 머리숱이 점점 줄어드는 배테랑 형사 유병철과 불같은 성격에 지는 걸 싫어하는 바람둥이 형사 정태석. 이 두 형사가 어느날 굵직한 마약사건의 냄새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세대가 다른 두 형사가 등장하는 내용은 그동안 발에 채이도록 많이 본 형사영화의 전형이었다. 신선함은 떨어졌다는 말이다. 원작을 먼저 읽은 후 영화로 본 이야기들은 많았는데 영화를 책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책분위기에 적응하는 중반이후 캐릭터를 특정배우로 연상하며 읽으니 훨씬 실감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내용의 식상함을 살짝 벗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전개에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같다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평소 단순한 오락거리로 본 형사물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다양한 수사정보와 흐름으로밖에 짐작할 수 없었던 세심한 부분까지 책에서는 읽을 수 있었다. 마약에 관련된 지식이나 국과수에서 하는 일등은 우리나라 경찰들도 조금은(?) 체계적인 조직과 정보망를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현재도 여전히 영화 '살인의 추억'의 수사방식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경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때문이다.) 그렇지만 CSI과학수사대처럼 과학적인 분석과 전문화된 데이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랜 형사생활로 쌓인 노하우나 직감으로 수사를 하는 건 내용을 범죄물보다는 드라마쪽에 가깝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나 감독들이 형사물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건가 싶었다. 두 형사가 엄친아이자 인텔리한 마약쟁이 변성수를 쫓는 과정과 무심한 듯 시크한 훈남으로 가장한 정태석 형사의 진정한 사랑찾기가 뒤로갈수록 짙어지는데 억지로 엮는다는 이질감때문인지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로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의 미약한 반전과 형사생활에 회의를 느낀 유병철 형사의 개인적 고민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봤던 것 같은 기시감까지 느껴졌으니 식상하다는 평은 면키 어려워보였다. 또한 뭔가 거대한 음모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잔뜩 기대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지지부진해지는 것도 약점이었다. 오히려 제목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읽어나간다면 더없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