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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손에서 놓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겠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난감했다. 평소 사회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뭐라 말해야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비난해야한다면 그 대상은 무관심으로 일관한 일인으로서 손가락질을 면하기 어려웠다. 일부러 모른 척 했다면 자괴감때문에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무거운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건 그런 비난과 자책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뿌리박힌 잘못된 인식과 선입견의 바로잡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피하지 않고 바라봐주길 바랬을 것이다.
주인공 정원은 I시의 변두리 공부방에서 만난 정아가 네팔 이주노동자 자히드의 아이를 가졌고 결혼할 거라는 말에 모진 충고를 하게 된다. 정아의 서러운 반박에 어릴 적 고향이었던 동두천을 떠올리며 20년동안 잊고 지낸 줄 알았던 그 곳을 찾아간다. 미군기지 주변에서 어려운 시절을 나고 자랐던 정원은 변해버린 동두천에서 자신의 첫사랑 재민을 만난다.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재민은 동네에서 튀기로 놀림받고 외면당하며 모진 세월을 견뎠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재민이와의 대화속에서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의 괴로움이 그제서야 조금씩 현실감을 띄었다. 흑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사촌 윤희언니의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 일이며, 친구들과 조금씩 어긋났던 재민이를 보듬어주지 못했던 일, 양색시들의 포주노릇을 하던 부모님밑에서 자라 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있던 친구 해자, 외국인에게 입양되는 걸 자랑스러워하던 경숙이까지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으로 버거워하며 동두천에서의 시간을 견뎌낸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끼니를 채우고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이나, 미군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나 결국 미군부대로 인해 먹고 사는 건 매한가지인데 혼혈아들과 양색시에게 가해지는 멸시적인 눈초리나 거친 입방아는 다분히 모순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들을 자신과 별개인 이방인 취급하는 것만큼 천박한 것은 없는데도 그 당시 동두천의 주민들과 지금의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성공한 혼혈아들에겐 끝없는 찬사와 부러움이 따르지만 가슴 한 켠으로는 반쪽짜리 핏줄일 뿐이라는 은근한 멸시와 반발도 따른다. 도대체 근거없는 질투심의 발로이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주인공 정원처럼 잊고 지낸 줄 알았던 어두운 터널을 제대로 다시 걷게 만드는 글이었다.
이 책을 덮은 후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에서 뿌리깊은 자각이 생겼다. 나와는 관계없는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니 귀담아듣지 못하고 나 역시 그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똑같이 상처주지 않았을까하는 조심스런 후회였다. 이 거대한 뿌리 밑에서 나는 일개 잔뿌리밖에 안되는 인간인데 다른 뿌리와 섞였다고 그들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썼던 건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우리가 어두운 역사속에서 묻어두고 싶었던 실패작처럼 조용히 스러지고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더 꿋꿋히 그 시절을 견뎠고 고단한 삶을 메마른 땅에 뿌리내렸다.
주말 TV다큐멘터리에서 쓸쓸함이 묻어난 이태원거리가 비춰진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거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5년이상 거주해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있었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정착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편안해져야 할 그 곳에서도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을 먼저 경계한다고 한다. 한 때 알아주는 외국인 거리 명소였지만 장사가 안 돼 하나둘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제 거리는 활기참보다는 휑한 느낌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노동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인심은 얼마나 각박할까. 월급을 떼먹는 사장, 열악한 근무환경, 복지혜택이라고는 받을 수 없는 그들을 사실 나조차 동정으로 바라보거나 한 때 배타적인 마음에 외면하기도 했었다. 이제와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속좁은 인간인지 되새기게 되었다. 나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방관했을 우리 모두가 지금이라도 그들을 인정하고 더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한 명 한명의 인식이라도 바꿔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바라던 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