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상한 여직원의 판매일기
김선미 지음 / 리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참, 신선했다. 할인점에 입점해있는 판매직원으로 일하면서 저자가 몸소 체험한 할인점에서의 생활이 그대로 담겨있다. 얼마전까지도 유통업에 종사했던 일인으로서 구구절절 눈물날만큼 공감했다. 까대기친다(막일을 그렇게 부른다), 까인다, 매출이 인격이다 등등 유통업계에 일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전문용어(?)부터 그 사이에 암암리에 퍼진 룰까지, 읽는 내내 폭소하기도 했고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어느 직장이든 편한 곳이 있겠냐만은 판매나 유통업만큼 박봉이면서 스트레스가 심한 곳이 없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조건은 서비스업계의 3D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눈물나게 고달프고 힘든 직장생활의 일들을 저자의 재치있는 글솜씨로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지나치게 가볍다 느낄 정도긴 하지만 언중유골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한 달에 3,4번은 가게 되는 할인점의 뒷편에서 이렇듯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할인점의 얼굴만 마주하는 우리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게 되는데,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에 조금은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유통의 가장 말단사원인 판매사원이고보니 고객과 마주치는 일이 가장 많고, 마트 입점업체로서 매장담당에게 잘 보여야하며, 늘 어딘가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서비스 매니저때문에 불안해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직장의 먹이사슬처럼 살벌하게 느껴진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피튀기는 전시상황에서도 비장한 인간미를 지닌 동료들이 함께하기에 고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고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서 동료들은, 얼어붙은 찬 바다의 작은 구명정과 같다.    -p.65

비도덕적으로 생떼를 쓰며 환불을 요구하거나 직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고, 소송을 걸고 있는 많은 고객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간간히 나오는데 그럴 때보면 고객들에게도 강도높은 소비자교육이 뒷받침되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는 사람이 더 하다고 하듯이 이 책의 저자처럼 나 역시 식당이나 판매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에 가면 직원들의 서비스태도를 눈여겨보며 우리 회사에서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는다는둥, 교육이 덜 됐다는 둥 절대 당사자에게는 하지 못할  말들을 동석한 친구에게 개탄하며 쏟아놓기도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직원들도 어딜가든 고객이 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느낀거라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하면서 나 또한 일명 진상이라 불리는 불량 고객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타인과 타인 사이의 신뢰는 중요하다. 하물며 금전이 오가는 인간 관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관계에서 이해와 신뢰는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관계가 수직적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너무나 큰 재앙이다.
모든 직장이 그렇지만,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사람이 싫어지면 직장이 지옥으로 변한다.
직장생활에는 감동이 없다. 모든 것을 의무적으로 주고 받기 때문이다.
단, 하나 감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월급이다.    -p.211

이건 정말 나의 이야기라며 무릎을 치던 순간들, 나는 적지 않은 직장 생활동안의 애환과 마주했다. 회사생활하면서도 참아온 소주생각이 났다. 작가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상사에 대한 욕과 고객흉으로 5톤 트럭의 호박씨를 까고 만리장성을 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난 정말 그 일이 싫지 않았다. 숨통을 죄어오는 매출압박과 경쟁사 직원을 질투하는만큼 경쟁사 상품을 사는 고객을 씹고, 누구든 고객님~이라고 부르며 아부하고, 디스플레이 변경과 재고조사로 날밤을 새는 일이 허다하지만 내가 해온 어떤 일보다 역동적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고객입장에서는 장사꾼보다 사기꾼으로 단정해버려 억울할 때도 있지만 간혹 내가 권해준 상품을 사며 기뻐해주는 착한 고객들을 만날 때면 뿌듯해지곤 한다.

 세상에 하찮은 직업, 직장이란 어디에도 없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뇌와 노력, 땀과 눈물이 있고 적재적소에서 가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일하고 있다.  일을 한다는 건 산다는 것이라고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이 말했었다. 그래서 노동이란 신성한 것이다. 결말이 좀 거창해졌는데 나처럼 같은 업계에 종사해서 느끼는 공감말고도 할인점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깨끗하고 산뜻한 할인점의 뒷편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표정이 내 직장동료의 모습인 듯 토닥여주고 싶은 심정이 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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