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감성적인 일러스트와 글, 동심과 순수함이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게 하는 책이다. 작가인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0살 사키의 일상이 소꼽장난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마음을 잡아 끄는 건 에피소드 중간 중간 삽입된 오나리 유코의 일러스트다. 이야기처럼 무심한 듯 간결하게 그린 일러스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꼬마 니콜라의 장자끄 상뻬를 떠올리게 했다. 어릴 적 읽은 후 아이였을 때보다 어른이 되어 더욱 열광하게 된 그의 일러스트는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이 책의 일러스트도 그에 못지 않게 잘 어울렸다.

기타무라 가오루. 나에겐 처음인 작가였는데도 이력 한 번 보지 않고 -처음 보는 작가라면 프로필을 먼저 확인하는 평소 습관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술렁 술렁 읽어나갔다. 책의 말미에 적힌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았다면 그리 놀라지도 않았을텐데 그가 60세의 남성인데다 일본에선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엄마와 10살 딸의 디테일한 대화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는 작가의 자전적 얘기라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섬세한 모녀의 일상을 이렇듯 아름답게 쓸 수 없다고 지레짐작해버린 나의 착각도 한 몫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수한 시절이 있듯이, 작가가 간직해 온 추억이 모녀의 일상처럼 아름다웠을 거라는 짐작만이 뒤통수맞은 나를 위로해준다. 사키가 어른이 된 후에도 오늘 일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는 눈물이 났다. 엄마가 딸의 아름다운 시절을 위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해주고 생각해주는 모습은 모녀보다 같은 시절을 공유하는 친구같다고 느끼게 했다. 모녀의 일상을 살짝 엿보며 그들의 추억을 나눠가진 듯해서 구름 위에 둥실 떠있는 것처럼 으쓱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 사키의 짝꿍인 무나카타와 연락장을 통해 나누는 대화내용은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짓게했다.

책의 제목인 사박사박이라는 부사가 주는 느낌은 깃털만큼 가볍고 편하다. 엄마와 딸의 주변에 어둠이나 먹구름이라곤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몇몇 대화나 장면은 좀 낯간지럽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작위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60대의 할아버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순수해보였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이나 생각을 어른이 기억하고 싶은대로 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훈훈해지는 마음은 겉잡을 수가 없다. 사키의 앞머리를 직접 잘라주고, 자전거를 처음으로 가르쳐주며, 들판의 이름모를 나무이름을 함께 기억하는 작고 사소한 일상이 잔잔한 파문으로 오래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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