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심윤경의 책을 찾는데 이 책이 '독서치료'코너에 있었다. 어떤 내용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그런데 읽고 난 후 '독서치료'란 개념자체가 좀 모호해졌다. 과연 이 글로 어떤 이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는 내용이 과격하고 난폭했으며 뜨거웠다. 추한 비극을 향해 치닫는 주인공의 심리가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같았다. 이런 그녀의 책은 처음인데 특이한 이력이 있었다.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했다. 보통 그런 자연계를 배운 사람 중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를 쓰는 작가를 많이 보았는데 그녀의 선택은 문학이다. 격정적이지만 꼼꼼하고 섬세한 글에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조씨 집안의 17대 종손인 주인공 상룡은 막 군에서 제대했다. 굳은 결계와 꼿꼿한 성품의 할아버지가 버티고 있는 종가집의 위세에 눌린 상룡은 반서자라는 출생때문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 종손으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한 그에게 할아버지는 조씨 집안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언간을 건네며 해석해오라 이른다. 그러나 언간을 해석할수록 집안의 흉허물만 밝혀지고 이에 할아버지는 격분한다. 한편 상룡은 종가집 살림을 도맡아하는 달시룻댁의 딸 정실(오랫동안 혐오스럽게 여기며 함께 자라온)과 깊은 관계가 된다. 80킬로의 거구에 겹겹이 늘어진 살덩어리, 그리고 못생긴 낯짝을 징그러워하던 그였지만 정실과의 정사를 통해 늘 억압되어 왔던 감정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간다.

 
상룡의 이야기 속에 해석된 언간의 내용이 액자구도로 배치돼있다. 언간의 한문이 어려웠지만 일일이 사전을 뒤져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문맥의 흐름과 주석으로만 내용을 파악했는데 뒤로 갈수록 비극적인 상룡의 개인사나 집안과 얽혀 자못 흥미진진해졌다.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버려 재조차 남지 않는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던 작가의 바램대로 끝이 뻔히 보이는 비극의 씨앗에 얼음같은 물을 주고 썩어 문드러진 거름을 주어 한 가문을 샅샅이 파멸로 이르게 만들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치료되기는 커녕 상룡이 정실의 몸에 올라타며 가학적인 쾌락을 느낄 때는 분노로 치가 떨렸다. 상룡에 대한 정실의 마음이 목이 꺽일 정도의 해바라기식 순정, 내지는 언감생심 황송해하는 궁녀같은 모습을 볼 때도 불편한 심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상룡이 대쪽같은 할아버지의 반응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사실을 고했을 때 상룡의 마음도 거짓은 아니었구나 싶어 조금 안도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하는 심리가 그 때부터 발동했을 것이다. 언간의 내용이 극적인 비극으로 치닫자 상룡은 할아버지 앞에 부실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종가의 실체를 직시할 것을 충고한다. 자신이 쌓아올린 가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한낱 사상누각이었다는 사실 앞에 할아버지는 초연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상룡은 그로 인해 늘 부정했던 자신의 굴욕적 과거와 비극을 감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심윤경의 '이현의 연애'를 먼저 읽게 되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 함께 살던 이현처럼 여주인공들의 비현실적이고 비안간적인 구석때문에 주인공들 또한 뒤틀려보인다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비극을 더욱 비참하게 일그러뜨리고 시뻘건 화염의 불구덩이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게 만든 존재들이었다. 여자가 여자를 그렇게 묘사한다는 게 파괴적이고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다분히 유혹적이다. 그 유혹앞에 무릎꿇을 수 있는 자만이 활활 타오르는 이야기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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