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 빈스토크라 불리는 타워, 작가가 만든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책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따로 읽어도 굉장히 재미있다. 다른 말로 살짝 비틀어 상황을 우습게 포장하긴 했지만 작가의 의도는 여실히 드러난다.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인터뷰를 먼저 보게 되었다. 인터뷰어가 질문하기를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작가는 절대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니었다며 부인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인터뷰를 먼저 읽지 않았더라도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해 있는 정치, 사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비꼬며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가볍게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남일같지 않다고 생각한 건 나뿐만은 아니라고 본다. 

 
확대해석이라해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듣기 싫어도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기자들 덕분에 눈가리고 귀막고 살려는 나같은 사람도 알 수 있을만한 포장이었다. 게다가 건물내부에 국경이 존재하고 중심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장과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불안정한 삶을 사는 비정규근로자들, 부동산 투기, 교통대란등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지만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이 바로 지금 우리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또는 빈스토크 자체에서 통용되는 화폐단위가 현재 화폐가치의 10배이상으로 높은 걸 보니 어쩌면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나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물(혹은 국가)은 아닐까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궁지를 물기 마련이었다. 세 사람은 정교수가 어떤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문명 세계의 권력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권력자가 일일이 협박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약탈당할 물건을 내놓게 만드는 힘.
위에서 일일이 지목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서 정적을 제거해주고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아주는 힘.
통치자가 머리를 비우고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통치기구가 알아서 합리화해주고 알아서 정당화시켜주는 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비열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절대 추궁당하지 않는 권력.      -p.38


아마 작가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에서 책의 영감을 얻은 모양이다. 에피소드의 화자가 끊임없이 빈스토크는 바벨탑이기를 거부하는 메시지를 심어놓지만 그건 강한 부정에 의한 긍정의 의미처럼 들렸다.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어 바벨탑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었다. 바벨에 사는 노아의 후손들이 대홍수 후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사람들 사이에 다른 말을 쓰게 만들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 완성하지 못한 탑이라는 걸 뒤늦게 확인했다. 거기다 작가는 잭과 콩나무라는 동화에 나오는 콩줄기라고도 했다. 비슷한 의미처럼 다가왔다. 빈스토크는 인간의 허영과 지나친 이기가 만들어낸 욕망덩어리로 꿈틀대며 살아있는 생명 자체였다. 바벨탑이 결국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아 완성되지 못했 듯  빈스토크 역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소통하지 못한 채 명멸해가는 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의 우리처럼.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빈스토크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벨탑을 떠올렸다.
저건 무조건 바벨탑이 될 거야. 저것 봐. 저렇게 거대한 모양이라니.
인간의 허영이 딱 드러나 보이잖아. 저건 무조건 바벨탑이 될 거야.    -p.221

 
그렇지만 작가는 그 위태로운 빈스토크를 끝내 무너뜨리지 않았다. 내부분열로 끊임없는 논쟁과 충돌이 계속되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부여한 삶을 살고 있는 개인들은 빈스토크를 너무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저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전쟁의 위협에도 빈스토크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처럼. 황당무계한 권력구조의 진실로 나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며 시작한 이 코믹단막극은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비록 입 안에 떫떠름한 뒷끝을 남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진실은 진실이니까. 권력의 핵심이 알고 보니 영화배우 P, 네 발달린 개였다.해석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나에겐 왠지 통쾌한 반전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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