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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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는 기자정신을 가장 확실하게 상징한다. 그들은 총알이 날아들고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전쟁소식을 알고자 하는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바로 이러한 목숨을 아끼지 않는 기자정신을 '카파이즘(Capaism)'이라고 부른다. 평생 전쟁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전쟁터를 떠나지 않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은 로버트 카파의 가자정신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로버트 카파는 평생을 전쟁과 함께한 종군기자였다. 하지만 '군대를 따르는 기자'라는 뜻의 종군기자라는 칭호는 그의 삶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그는 단순히 군대를 따라다니며 전쟁을 취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전쟁에 참가하며 전쟁을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 카파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2차대전 이야기도 그가 직접 전쟁에 참가하면서 겪은 경험담이다. 그는 군복을 입고 전쟁에 참여하며, 자신의 옆에서 싸우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병사와 떨리는 가슴을 안고 자신과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긴장된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따라서 그의 경험담은 단순히 전쟁을 지켜본 방관자로서의 서술이 아니라 직접 전쟁을 겪어본 자의 진실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체험이다.

카파는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전투에 참여하였지만 단순히 적을 악마로 간주하는 이분법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글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우애는 결코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사진을 통해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의 참상을 왜곡하지 않고 보여준다. 그의 사진에서 독일군이나 미군은 모두 전쟁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을 겪는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카파의 사진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역사책과 논설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전쟁에 대한 반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사진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이런 사진의 권위에 수많은 도전이 있어왔다. 오히려 그러한 권위를 이용해 현실을 왜곡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일리가 있다. 특히나 전쟁에 있어 한쪽편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사진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서는 전쟁의 비참함을 감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바로 총에 맞는 '스페인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을 통해 스페인 내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여인의 사진을 통해 세계2차대전의 비참함을 알린 로버트 카파와 같은 사진기자가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의 흐름에 맞게 배치되어 있는 사진은 마치 독자가 카파와 함께 취재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책의 앞이나 뒤에 한꺼번에 배치하지 않은 출판사의 편집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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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 우리시대 공부달인 30인이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다
김열규.김태길.윤구병.장영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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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시험성적을 잘 받기위해 공부를 해야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부를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 공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공부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평생 해야 함에도 말이다. 여기 공부가 좋아 평생 공부를 벗 삼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다양하듯이 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김동회 대전지방노동청장이나 제타룡 도시철도공사 사장처럼 업무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학자들처럼 그저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학문의 세계가 너무 재미있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심오한 철학적 진리나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으로 평생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언제나 새로운 사실을 알기위해 노력한다는 점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즉 책을 읽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새로운 사실을 알고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인류가 쌓아놓은 지식을 담아놓은 책을 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책들은 학문의 길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책은 다양한 이유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소개함으로써 공부의 즐거움을 알리고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한 시도는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지면을 나눠가지다 보니 깊이 있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공부가 좋았어요" 라는 당연한 소리만 되풀이 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공부는 비단 책을 보고 지식을 쌓아가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고 세상의 이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공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공부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있게 성찰하기 보다는 책의 선전문구와 같이 우리시대의 공부달인 30인의 경험을 그것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만약 책에 실린 글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는 글이었다면 충분히 흥미 있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글을 한권의 책에 담아냈다는 의미 이외에는 큰 의미를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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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미의식과 군국주의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 / 모멘토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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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상징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을 낼 때가 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Hakenkreuz]는 나치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어쩌면 괴벨스보다 민중을 선동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나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집단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하며 그것을 대외적으로 드러낸다. 태극기나 무궁화와 같은 국가의 상징물도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쿠라 꽃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 이었다.

저자는 사쿠라 나무가 일본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부터 파헤치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극단적인 군국주의의 상징물로 변화되었는지 추적한다. 여기서 상징의 의미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연화'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일본의 사쿠라 나무는 원래 천황을 위한 아름다운 죽음 등 군국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를 가졌었지만 근대화와 더불어 시작된 천황제에 대한 개조, 근대적 군대의 등장, 군부의 집권 등으로 인해 언제부턴가 사쿠라 나무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깨끗하게' 산화하는 극단적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쿠라에 대한 이미지 조작을 받아들이는 일반 민중들의 사고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사쿠라 나무처럼 산화한 대표적인 사례인 특공대원(카미가제)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과연 군국주의적인 사고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시대의 희생양이었을 뿐인가.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도 달리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극단적인 군국주의와 국가주의를 반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편지와 독서목록을 통해 살펴본 그들은 죽음을 찬양하기 보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사쿠라 나무가 상징하는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들의 사고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이상주의라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군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국심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루소와 칸트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대한 동경으로 군부의 총의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국가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상주의와 극단적 내셔널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였던 것이다. 

일본의 사쿠라를 통해 상징이 가지는 힘과 상징이 만들어지는 '자연화과정', '오인'등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상징과 상징을 이용하는 집단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특공대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묘히 '자연화'된 상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언제나, 누구든지 일본의 특공대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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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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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라는 말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복잡한 역사를 지닌 단어이기에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대충 개인의 자유, 그중에서도 양심과 사상의 자유 등을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된 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다르게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첫 번째로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고종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써온 글들이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사람답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자유'라는 권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그런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제가 동의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파시스트도 공산주의자도 기꺼이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점은 제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운 것이다. 그런데 자유를 내세우는 한국의 우익은, 헌 날개든, 새 날개든, '다른 생각'에 대한 불관용을 도덕률로 삼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정략적으로 ,빨갱이 만들기'를 일삼는다는 사실 못지않게, 생각이 다르다는 것 자체를 절멸 대상으로 여긴다는 데 있다.  - p.79 <'시청 앞 인공기' 단상>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좌파에 속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 민주노동당의 이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야한다는 신념에 따른 결과이다.

 그때그때의 정치 환경에 변화에 따른 단기적인 정치비평 등도 실려 있다. 하지만 글을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시각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자유주의자라는 단어에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나 호감을 가진 사람이나 사실은 진정한 자유주의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잊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고종석을 글들은 진짜 자유주의자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다양한 영화와 문화에 대한 평이나 언론인으로서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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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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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이제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2006년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황우석 사태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로 더할 수 없는 찬사를 받은 그는 2006의 시작과 함께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를 '추앙'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추락을 바라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그의 거짓말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황우석 사건은 이제 종결된 것 같아 보인다. 지원금에 얽힌 복잡한 법적 다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학계에서는 더 이상 이름을 거론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떠한 사회적 활동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떤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기 마련인지라 황우석 사태도 이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그저 기분 나쁜 일로만 기억되고 있는듯하다. 그런데 정말 황우석 사태를 그렇게 정리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그저 한 과학자의 거대한 사기사건으로만 기억해도 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들은 황우석 사태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황우석 사태를 정리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로 말미암아 세상에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황우석 사태를 '과학기술동맹'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황우석의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사회적 권력들이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이다. 동맹의 중심에는 물론 황우석 교수가 존재한다. 보통 황우석 사태는 새튼 교수가 결별을 선언하고, MBC PD수첩의 보도가 나가면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황우석을 둘러싼 과학기술동맹의 끝이었다. 황우석은 복제소가 태어나기 그 이전부터 자신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동맹을 만들었던 것이다.

언론은 동맹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언론은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야할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황우석의 입만 쳐다보면 되는 것이었다. 황우석의 한마디, 한마디가 신문과 뉴스의 표제가 되었다. 그런 보도는 황우석에 대한 국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몫을 했다. 황우석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동맹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말해준다. 대표적인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한겨레>신문은 자신들의 광고에 황우석의 이름을 사용했고, <경향신문>도 황우석 띄우기에서 빠지지 않았다.

언론이 황우석 영웅만들기를 담당했다면 정부와 정계 등 권력기관들은 황우석에 대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연구에 자금을 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건분야의 법제정에 있어서도 황우석의 입장만을 고려하였다. 황우석은 결국 과학자가 아니라 국가 과학기술을 방향을 결정하고 조언하는 지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황우석의 전략과 스타 과학자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이해관계는 과학기술동맹의 핵심중의 핵심이었다.

황우석이라는 절대적인 영향력은 그가 몸담은 과학계에서는 더욱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황우석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절대적 약자인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난자를 제공하고, 그 난자를 가지고 스스로 복제실험을 한 연구원들은 이러한 황우석의 절대적 권력행사의 직접적인 피해자들 이었다.

저자들은 이렇게 과학기술동맹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황우석 사태를 살펴보고 이런 광범위한 동맹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과, 과학기술을 토대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정당화시키려는 노무현 정부의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말한다.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결과지상주의는 분명 산업화 시기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경제성장만 하면 문제 없다는 박정희식 사고방식의 재현이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망상과 그것을 위해서는 난자채취의 윤리논란도, 실험실 내부의 권위주의적 질서도, 지원과 관계된 비리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또 황우석의 생명공학기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망상은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신자유주의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의 핵심은 물론 과학기술동맹이었지만, 그를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고, 황우석 연구에 의문을 제기한 MBC PD수첩의 광고를 없애고 프로그램을 폐지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과학기술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대중이었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놓치지 않는다. 대중은 애국주의에 대한 열정과 과학기술이라는 마법에 홀려 사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과학기술은 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해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고 논란이 있을 수 없는 영역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마치 사회제도와 같이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토론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교양이라는 것이다.

2006년은 황우석과 함께 시작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6년을 마무리 하는 이 때 황우석 사태의 진상을 알리고,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와 제발 방지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이 책은 2006년을 제대로 마무리하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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