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시대 - 비굴의 시간을 위한 기록
정기애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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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가기록원 기록정책부장이라는 직위를 책 표지에 쓴 저자는 2018년부터는 국립장애인도서관장으로 일한 전직 공무원이다. 그럼에도 국가기록원 부장 타이틀을 내세운 것은 자신이 기록전문가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직위가 곧 전문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아카이브 정책 담당 고위공무원으로, 평생을 관련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로서 내놓은 책이라면 일말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이 전문성을 믿고 국가의 기록을 관리하도록 위임한 국민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이 책은 안타깝게도 전혀 전문가답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탄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2018년 제21대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등의 내용은 저자도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다. 그 주장의 신빙성과 근거 여부를 떠나서 그런 주장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는 증거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전문성을 앞세운 기록관리에 대한 주장은 그 주장의 동의 여부에 앞서 너무나 많은 오류와 왜곡을 담고 있다. 기록관리를 모르는 사람의 주장이라면 모를까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저자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하는 말이라면 무게가 다르다. 혹시 이 책을 읽고 기록관리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될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만 지적한다.


먼저 저자는 2020년 12월 개정된 대통령기록물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책만 본다면 마치 지정기록물의 열람은 엄격히 제한되어 왔는데 법 개정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나 대리인이 무분별하게 열람 할 수 있고, 개정법률에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는 것으로 이해 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간 실제 전직대통령의 열람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별개로 대통령기록물법은 2008년 법률 제정 단계부터 전직대통령의 활발한 열람을 적극 보장하기로 되어 있다. 문제는 아직도 열람이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지, 그것의 남용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비판이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기록관 설립으로 이슈가 된 개별대통령기록관과 관련하여 저자는 “민감한 기록을 정부 기관이 아닌 전직 대통령의 개별 기록관에서 관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라고 기술한다. 개별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의 전문적 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기관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황스럽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부터 잘못된 논의가 정상적일 수 없다.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줄인다. 기록관리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무형의 인프라다. 기록관리가 바로서지 않으면 저자가 그토록 부르짖는 정부의 설명책임성도, 투명한 사회도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렇기에 기록관리 전문가를 자처하는 저자의 책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독자들의 신중한 선택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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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돌베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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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역사는 결코 완전하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자의 역사는 부각되어 있는 반면, 지배를 받았던 민중들의 역사는 무시되었다. 남성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면, 여성은 남성의 들러리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빛이 있는 낮이 역사가 살아 숨쉬는 시간이었다면 밤은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활동을 멈추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밤은 낮과는 다른 특별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이었던 동시에 귀족들에게는 낮이 허락하지 않았던 사교, 성,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근대에 들어 밤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책은 밤에 대한 내용적 측면 뿐만 아니라 연구를 위해 '아카이브(Archive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등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밤은 대부분의 역사에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의 영향이 있기 전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사람들은 밤의 공기가 사람을 망치는 나쁜 공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 밤에 잠을 자야하는 이유도 신체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밤의 나쁜 공기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였다. 중세천년을 지배했던 기독교의 영향으로 밤은 각종 악령과 악마가 출몰하는 시간이라고 믿어졌다. 이러한 심리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밤은 최악의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절대주의 시대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유럽의 국가권력은 밤의 폭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밤의 범죄를 막기 위해 조명을 설치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바로 밤에 대한 통제가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밤은 모두에게 분명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은 낮에는 불가능했던 각종 자유가 허용된다는 뜻이었다. 상대적으로 과중한 노동과 범죄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웠던 귀족들은 밤을 이용해 낮에는 금지된 그들만의 쾌락을 즐겼다. 모든 것이 엄숙하게 통제된 중세라는 인식은 밤의 역사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비단 귀족들뿐만 아니라 민중들도 삼삼오오 모여 음란한 대화를 나누었고, 젊은 남녀들은 낮보다 밤에 연인에게 청혼하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스러움은 범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범죄로 이어졌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그동안 유지되었던 밤에 대한 인식은 변하게 된다. 도시민의 대다수를 형성했던 프롤레타리아트는 밤에도 생존을 위해 노동을 계속해야만 했다. 조명기구가 발달하면서 그 동안은 불가능했던 밤의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이제 밤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자유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물론 새롭게 사회지배세력이 된 부르주아들은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밤이 주는 자유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었다.

책은 번역자의 지적대로 밤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사건들을 끊임없이 ‘나열’한다. 사건들이 갖는 사회,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집어내지도 않는다. 정치사나 전쟁사 등 거시사가 내세웠던 역사학의 목적에 의한다면 저자는 그저 재미있는 사건들을 찾은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많은 미시사 연구 성과들이 말하고 있듯이 역사는 한명의 위인이나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역사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작은 역사를 발견하는데 중요한 재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재료들을 발견하는 작업장은 바로 감사의 말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기록보존소(Archives)와 도서관의 기록과 아키비스트들이다. 유럽 각국의 철저한 기록관리 역사와 국가의 지원이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왜 아키비스트가 역사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지, 기록관리가 어떤 방식으로 역사연구에 이용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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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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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책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과거 책이 주었던 재미는 이제 게임, 영화 등이 대신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책의 운명이 다하였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목소리는 여전히 책의 가치를 옹호한다. 책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갖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얻는데 목적이 있다는 사람들은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의 기술'을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책은 실용적인 목적만을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책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책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정서적 안정과 치유로서의 책읽기'를 주장하는 부분이나 '천천히 읽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책들이 벌이는 전쟁, 겹쳐읽기' 등은 실용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깊이 있는 책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자는 결국 이러한 책읽기가 요즘 세상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을 갖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자가 결국 책을 열심히 읽어서 사회적인 성공과 함께 뜻을 이루었다고 독자들을 유혹한 다음, 결정적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반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의 성공의 비결이 결국 책읽기에 있었다고 말하며 책을 읽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사회가 이야기하는 성공을 이루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책의 효용성과 제대로 읽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동시에 책일 읽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제도적인 뒷바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사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입시지옥을 겪으며 좋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아직 학교 도서관 등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확실히 다져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에만 좋은 '옳은 말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때부터 제도적으로 책을 가까히 할 수 있게 하는 학교도서관이나 청소년도서 출판과 같은 물질적,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체계적인 책읽기 교육을 받지 못해 아직까지 많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예전부터 가졌던 의문이 하나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심지어는 논술까지도 공부를 따로 하는데, 대학의 강의실에서 접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토론을 하는 능력은 왜 굉장히 떨어지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분명히 제대로 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정답을 맞추기 위한 지식노동을 했을 뿐이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그것을 글로 쓰는 진정한 공부는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반드시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물론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소중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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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된 역사 - 독일사로 읽는 역사전쟁
에드가 볼프룸 지음, 이병련.김승렬 옮김 / 역사비평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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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사라는 단어가 부쩍 매스컴을 많이 타고 있는 요즘 그런 질문을 던진다. 독도영유권과 관련해서 '역사'가 부각되고,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역사'가 이야기된다. 국내정치로 눈을 돌려보면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는 뉴라이트 세력들은 그동안의 역사인식이 좌파적 편향성을 갖고 있었다고 비판하며 영관의 대한민국史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국60주년행사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수 있다. 

이렇게 몇 가지 사건만 간단히 살펴보아도 '역사'라는 것은 그저 옛날에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비정치적' 영역의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역사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사실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따라서 역사는 그 어떤 학문보다 현실 정치와 강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무기가 된 역사'라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 책은 독일에서 역사라는 이름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역사의 정치적 이용은 과거 독일제국시기, 나치치하, 동독과 서독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존재했다. 권력을 획득하거나 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무기가 되어야만 했다. 역사를 이용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심지어 나치에게도 '입맛에 맞는 역사'를 제공하였다. 

독일의 역사는 몇몇 부분에서 한국사와 비교되어서 연구된다. 독재정권의 정당성은 권력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대중에게서 도출되었다는 '대중독재론'은 독일 나치제국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 논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도 물론 독일의 역사와 그것의 이용을 말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역사가 강력한 무기로 이용되고 있는 지금,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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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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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홉스봄을 생존하는 최고의 역사가로 꼽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역사인식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비단 그의 역사관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다. 홉스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학문적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학자로써 다양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강단에 서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홉스봄을 단순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가 아닌 진정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책은 역사적 안목을 통해 바라본 현재의 세계에 대한 홉스봄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목적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등의 저작에서 20세기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대량학살과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달을 꼽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20세기를 잇는 21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전쟁, 국가, 민족 등 다양한 틀로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종합해보자면 이전까지 유지되던 규범이나 틀의 붕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국민국가 단위로 진행되던 전쟁은 이제 그러한 구분이 모호해졌다.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도 사라져서 전투의 규모는 작아졌어도 엄청난 수의 민간인이 고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뚜렷한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민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해져 버렸다. 1, 2, 3세계로 구분되던 세계의 모습도 냉전이 끝남으로써 붕괴해버렸고 미국만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20세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였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민족주의도 냉전의 붕괴로 인한 국제정치의 불안정성 증가, 세계화의 놀라운 속도, 노동의 이동에 따른 외국인 혐오증의 증가 등으로 그 힘을 잃고 있다고 진단한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政體로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국민국가와의 충돌을 제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홉스봄이 21세기의 이러한 모습을 그리면서 가장 주목하는 2가지는 세계화와 미국의 역할이다. 먼저 세계화는 전통적 의미의 국가권력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자국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신자유주의는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펴져나갔으며, 세계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주의도 약화되는 것이다. 21세기의 또 다른 주요변수인 US는 세계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로 볼 수 있다. US는 세계화와 동일시되는 신자유주의를 타국에 강제하기 위해 군사, 정치, 문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냉전의 종식이후에 US가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부상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 힘과 영향력은 엄청나다. 여러 학자들이 US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도 US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홉스봄은 US의 영향력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제국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제국의 명분인 질서유지가 사실은 허구이며, 제국은 세계의 질서는 물론 자국 내의 질서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부분적으로 제국주의가 가능했던 시기의 특징인 서구의 우월한 문명에 대한 선망, 피지배국의 근대에 대한 열망 등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영제국과 US제국의 비교를 통해서는 더더욱 US제국이 계속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경제의 중심이었으며 바다를 통한 해외팽창에 주력했던 영국과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영토의 미국은 물론 같을 수 없다. 하지만 홉스봄이 주목하는 부분은 영국이 세계지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고 경제적 지배에만 주력했던 것에 비해 US는 불가능한 세계패권을 유지하려고 억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홉스봄이 이 책은 한국은 한국의 현실에 너무나도 유익한 조언을 던지고 있다. US의 패권주의 약화로 인해 US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조언은 미국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세계 도처의 인권 문제에 아무리 분개한다고 해도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이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한다거나 자신들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 다른 나라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책은 세계 곳곳, 특히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미국의 정책에 동참해 달라는 권유를 확고히, 그러나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이 소외당한다고 느끼고 자신들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1세기 초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패권 p. 52>  
   

US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 말고도 대부분의 책의 내용은 한국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입이 곧 선진화, 세계화로 인식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국수주의자로 매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한국사회에 매우 유익한 논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아직도 싸워야하는 일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도 세계화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가이기에 민주주의가 국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국민중심주의와 민족국가가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 민주주의가 언제까지나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는 주장은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홉스봄의 저작들은 사실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이 책은 강연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의 다른 저작들보다 읽기가 수월하고 현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다. 물론 홉스봄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위대한 역사학자의 현실인식을 들여다보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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