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미의식과 군국주의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 / 모멘토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하나의 상징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을 낼 때가 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Hakenkreuz]는 나치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어쩌면 괴벨스보다 민중을 선동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나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집단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하며 그것을 대외적으로 드러낸다. 태극기나 무궁화와 같은 국가의 상징물도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쿠라 꽃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 이었다.

저자는 사쿠라 나무가 일본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부터 파헤치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극단적인 군국주의의 상징물로 변화되었는지 추적한다. 여기서 상징의 의미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연화'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일본의 사쿠라 나무는 원래 천황을 위한 아름다운 죽음 등 군국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를 가졌었지만 근대화와 더불어 시작된 천황제에 대한 개조, 근대적 군대의 등장, 군부의 집권 등으로 인해 언제부턴가 사쿠라 나무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깨끗하게' 산화하는 극단적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쿠라에 대한 이미지 조작을 받아들이는 일반 민중들의 사고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사쿠라 나무처럼 산화한 대표적인 사례인 특공대원(카미가제)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과연 군국주의적인 사고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시대의 희생양이었을 뿐인가.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도 달리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극단적인 군국주의와 국가주의를 반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편지와 독서목록을 통해 살펴본 그들은 죽음을 찬양하기 보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사쿠라 나무가 상징하는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들의 사고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이상주의라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군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국심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루소와 칸트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대한 동경으로 군부의 총의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국가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상주의와 극단적 내셔널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였던 것이다. 

일본의 사쿠라를 통해 상징이 가지는 힘과 상징이 만들어지는 '자연화과정', '오인'등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상징과 상징을 이용하는 집단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특공대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묘히 '자연화'된 상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언제나, 누구든지 일본의 특공대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