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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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 촛불을 들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힌다. 많은 학자들이 87년 체제 이후 또 한차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된 증거라고 촛불을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 또는 궁금중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방향을 비판한다면 그 이전에 선거라는 절차에서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하고 거친 생각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정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촛불을 들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촛불이 반대한는 이 정부의 정책들은 이미 선거당시에도 공공연하게 나오던 이야기였다. 촛불집회에 여러차례 참여했지만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나의 궁금중은 풀리지 않는다. 과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고백하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거결과를 낸 대중들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한 표를 보장하지만, 그 한 표를 과연 누구나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느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어떠한 발전이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은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선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많은 부정적인 정치가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을 역동시킨 힘도 바로 선거에 있었다고 말한다.

1948년 이루어진 최초의 보통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는 '소장파 전성시대'를 열었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타격을 입은 이승만은 3.15부정선거를 기획했고 그것은 결국 4.19라는 역사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1978년 12.12 선거에서부터 유신정권은 파멸을 길에 들어섰고 1985년 2.12 총선에서 신군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역사의 발전을 이끈 결정적인 힘은 선거를 통한 대중의 선택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막걸리와 고무신에 자신의 권리를 쉽게 버리는 대중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내는 힘을 가진 것도 바로 대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는 마냥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퇴보를 가져온 여러 번의 선거, 반대로 정의는 죽지않았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 선거를 살펴볼 때,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독재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참담한 선거결과가 오히려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007 대선의 결과도  잘못된 선거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파트 값 상승을 위해, 내 자식만의 특목고 진학을 위해 선거를 한다면 당장 내 식탁에 광우병 소고기가 올라올 수 있고 의료의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2007대선은 가르쳐 준 것이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거를 정치인들이 벌이는 더러운 싸움으로 인식하는 것은 애초에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혐오스러운 정치인이다. 그들은 투표율이 저조할수록, 정치에 대해 관심이 적어질수록 자신들에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은 바로 투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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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위에 굴러다니는 책들이다. 읽은 책도 있고 읽고, 읽고 있는 책도 있고,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책도 있다. 어서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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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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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국민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
소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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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필지- 고문서 이해의 첫걸음
전경목 외 옮김 / 사계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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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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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함께 읽기
강준만 외 지음 / 돌베개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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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길고 지루했던 고3시절. 문학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언급하셨다. 아마 좋은 문장을 소개하려던 의도셨던 것 같다. 지루했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라 신영복 선생님의 이름은 곧 잊혀졌다. 얼마 후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발견한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잊혀졌던 그 이름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지루한 자율학습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는 저자의 책을 집어 들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은 그나마 지금 내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어교과서 속에 나오는 딱딱한 글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가히 충격이었다. 폐쇄된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다듬어진 정갈한 사유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후 다른 선생님의 책들을 읽어가면서 책을 읽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는것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항상 주장하시는 서양의 '존재론'을 넘어서는 '관계론'의 정립은 내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혼자사는 곳이 아니라 여러 관계들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은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할 전재조건이 되었다. '관계론'은 또한 근대를 알아보려는 최근의 관심사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존재론'에 입각한 서구 근대의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데 선생님의 '관계론'은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그의 삶 자체도 나에게는 본받아야할 하나의 모델처럼 생각되었다. 어그러진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표현한 선생님은 감옥이라는 공간에 무려 20여년을 갇혀 있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한다. 감옥을 대학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배워야 할만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다.
 
긴 감옥생활을 끝내고 성공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퇴직을 하게 되셨다. 그것을 기념해서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책을 출간했다. 선생님이 평소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이론으로 학문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는 '쉬운'학문을 지향했던 것과 같이 선생님을 기념하는 책도 일반적인 퇴직기념 문집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선생님의 학문적 성과를 성찰해보는 1부는 그의 사상, 서예, 삶 등이 진정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선생님의 60년 인생을 돌아본 한홍구 교수의 글은 그의 삶이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규성, 신정완 교수의 글은 선생님 사상의 중요한 뿌리인 '관계론'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도식적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생산관계의 구조에 정신적 가치를 종속시키는, 그래서 역사의 구조적 발전과정이 인생의 의미와 근거라고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고전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선생의 관점은 포괄적 관계론에 입각하여 정신적 가치를 인간관계 속에서 작용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실존양식을 모색하고 있다. - p. 202. 
 
선생님의 통일, 분단에 대해 살펴본 김동춘 교수의 글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의 통일과 분단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선생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가 고난에서 얻은 지혜와 통찰을 소중히 이용하자는 김동춘의 주장은 선생님의 통일관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길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생각을 가다듬는데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성장해온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삶의 무게를 감당해온 정도만큼, 그리고 시대의 고민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도만큼 세상을 보는 큰 지혜를 얻게 되고, 또 그 시대의 과제를 일반적인 용어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만큼 역사의 변화 발전에 기여한다. 신영복의 삶과 사상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힘도 그런 것이다. - p. 251.
 
선생님의 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인 서예에 대한 비평은 서예가 단지 선생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이미 대가의 경지에 이르러 서예만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역시 선생님의 글씨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글씨에 담긴 기교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깊은 사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글이 실려 있는 2부는 신영복이라는 사람의 인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업인부터 교사, 사회운동가까지 사회의 각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신영복이라는 사람을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은 그의 삶과 사상이 가지는 파급력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모두 사회적 기득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글에서 선생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외된 민중이 직접 말하는 신영복을 들을 수 있는 글이 없다는 것은 편집상의 문제점 등을 고려해 보더라고 역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선생님의 퇴임식에 삼성의 사장, 고위 정치인이 참석하는 등의 모습에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관계론'을 설파하는 신영복의 사상이 사실 책속의 죽은 사상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수의 필자가 기업인이라는 것도 사실 조금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인격으로 짐작해보아 예전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사적인 인간관계의 인물과의 관계를 단호히 거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것 또한 선생님의 인격을 파악 할 수 있는 협소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선생님의 사상의 학문적인 의미로 밝혀내고, 그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직접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으며, 신영복이라는 사람의 인격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신영복 함께 읽기'는 한 사람의 인물을 놓고 여러 사람이 글을 모아 펴내는 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선생님의 사상을 스스로 자기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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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전 -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 서해역사책방 14
피터 게이 지음, 고유경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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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전적으로 부르주아는 자본주의의 시작과 더불어 상업 활동으로 자본을 축적한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더해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돈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활양식에 있어서는 사치와 탐욕을 부리는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근대 시민사회를 이룩하고,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의 기초를 세운 혁명적인 계급으로도 인식된다. 빈자를 착취하는 악마의 이미지와, 민주주의를 세운 혁명적 계급이라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부르주아의 공식적인 활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이고 편향된 부르주아에 대한 인상은 근대 사회의 핵심이 되는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는 데에는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저자는 부르주아에 대한 사회, 경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파악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의사이자, 극작가였던 슈니츨러의 일상과 은밀한 기록은, 그가 속해 있었던 부르주아의 삶을 말해주며, 저자의 의도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먼저 은밀한 사생활의 대표적인 사례인 '性'을 탐구한다. 슈니츨러는 일생을 다양한 여자들과 함께 보낸다. 그는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맹세하다가도 금세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고 만다. 이렇게 다양한 여자를 만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만나는 여자의 처녀성을 강하게 원한다. 이러한 性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는 부르주아의 이중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예가 된다.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시대의 권위를 함께 원했던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이중성을 침묵과 예절 속에 철저히 숨겼다.
 
性과 더불어 부르주아는 폭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감정적인 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자식을 훈육하는 엘리트 학교에서는 폭력에 의한 훈육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가식적인 폭력에 대한 태도는 사회적으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라는 공인된 폭력을 낳고 만다. 자신들의 '진보'되고 '공식'적인 사회에서 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구시대적인 잔재였지만, 자신들과 인종이 다른 '미개한' 문명에 대해서는 엄청난 폭력을 휘둘렀으며, 부르주아의 토대가 되는 'Global Capitalism'을 위해서는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확장시켜 나갔다.
 
부르주아의 이러한 이중성은 결국 그들의 정신 상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온다. 근대 특유의 질병인 신경쇠약, 불안 등이 그것이다. 슈니츨러도 평생 불안에 휩싸여 살았으며 다른 부르주아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근대와 배치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겪었지만, 부르주아의 토대가 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슈니츨러의 방탕한 생활을 비난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생활이 신성한 노동에 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했다. 노동의 가치는 비단 남성들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며, 그 영향력은 지금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학의 프로이트라는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알아본 부르주아 계급의 은밀한 사생활은, 부르주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많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부르주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편협했었던 것이다. 사실 부르주아라는 계급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진 계급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의 내면을 정신분석학적 틀을 사용해 분석한 피터 게이의 이 책은 부르주아를 파악하게 돕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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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힘 - 역사의식, 기억과 상상력
하비 케이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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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하에서 친일 행위를 했던 인사들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조상이 인명사전에 올라간 사람들은 연구소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했다. 사전 발간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역사는 결코 현재의 관점에서 재단해서는 안 되며, 특히 친일과 반일의 영역이 간단히 나누어지지 않는 일제하에 있어 그 행위를 친일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이미 사전의 발간은 이렇게 학술적인 의미를 넘어서 현실의 정치, 사회적 영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역사는 현재적 관점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전 발간과 더불어 뉴 라이트 진영의 학자들이 공동 발간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는 역사가 현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현실에서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그들은 한국의 근·현대사 교육이 편향되고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고, 그것이 현실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현실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근 현대사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교육이 그저 과거의 일을 알게 하는 목적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가지는 정체성, 즉 기억과 상상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해준다.

하비케이의 이 책은 과거에 대한 인식이 과연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먼저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학의 위기에 대해서 서술한다. 역사학의 위기는 그저 학문분과가 축소된 현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의 위기에는 광범위한 사회, 경제,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戰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사회적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위기는 오히려 전쟁이 끝난 한참 후인 1960~70년대에 찾아오게 된다. 영국은 경제성장이 저하되고 정부에 대한 불안이 증폭된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실업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고,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전에서는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대통령은 부패스캔들에 의해 사임하고, 미국을 지탱하던 지정학적 헤게모니도 그 힘을 유지하지 못했다. 총체적인 위기와 더불어 그동안 물질문명의 진보에 대한 욕구 아래에서 잠재되어 있던 각종 시민권 투쟁과 인종 간의 평등을 위한 투쟁, 그리고 학생운동과 반전운동 등의 사회의 요구도 분출한다. 노동자, 여성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직접적인 시위도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위기로 인해 영국과 미국은 그동안 유지해오던 사회경제적 합의가 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역사학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위기의 결과로서 찾아오게 된 것이다. 사회적 지배서사(progress)의 붕괴는 역사교육의 전개 양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사교육에 있어서 형식, 내용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져버렸다. 대중들은 역사가 더 이상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즉 현재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과거는 철저히 기억하고 반성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로서 존재하게 된다.

저자는 역사학의 위기와 함께 역설적이게도 역사를 이용한 ‘유산산업(Heritage industry)’은 크게 성행했다고 지적한다. 즉, ‘좋았던 시절’을 이용한 산업이, 과거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가 기반이 된 역사인식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을 모아두는 가치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스러운 유물 또는 비판적인 유물을 제거함으로써 현 체제를 정당화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표현물에는 사회적·계급적 적대감과 갈등은 빠져있고, 또 일어났던 바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대안적인 정치적·경제적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움직임이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장악’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매우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람시는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기구들을 통해 그들의 세계관과 언어를 피지배계급에게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시민사회는 “국가나 정치사회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유산산업은 헤게모니 투쟁의 장인 시민사회 영역에 있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만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또한 바로 이 지점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의 저자들이 현실정치 영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지배집단이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역사 교과서가 헤게모니 투쟁의 무기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헤게모니 투쟁은 과연 누구에 의해 주도되는 것인가. 그람시는 자신의 책『옥중수고』에서 헤게모니 투쟁을 통한 혁명의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전통적 지식인과 대립되는 유기적(organic) 지식인의 존재를 들었다. 전통적 지식인이 자신의 지식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고 행동하지만, 결국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면, 유기적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철저히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하는 자를 의미한다. 저자는 유산산업과 함께 이러한 유기적 지식인은 위기에 빠진 역사학을 영국과 미국의 새로운 지배계급, 즉 신 우익(대처와 레이건)이 오·남용 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본의 궁극적인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노력한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서구 민주주의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새뮤얼 헌팅턴 등이 바로 지배계급을 위한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배계급을 위한 유기적 지식인들의 활약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안 교과서의 저자들, 자유경쟁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지배계급 정치인들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유기적 지식인들의 활동과 그것의 결과인 장기적 헤게모니의 획득을 통해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영국과 미국의 신 우익은 결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지배계급은 필연적으로 피지배계급에 비해 절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과 좀 더 친근한 사회집단들에게 상호이익을 제공해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 역사의 영역에 있어서 대처는 위대한 빅토리아를 만들어 낸다. 레이건은 미국의 위대한 과거를 만들어 낸다. 즉 그들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이 현실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가치의 원천을 역사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특히 미국의 ‘역사 되찾기 보고서’는 신 우익이 바라는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사회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제거되고, 상대주의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진다. 이러한 역사 만들기의 결과는 정치, 사회 등 公의 영역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중들의 공적인 영역에 대한 탈정치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가고, 과거의 혁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1989년 프랑스 혁명 200 주년 기념식에서 혁명의 의미는 이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기억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논거를 들어 역사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영역의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오·남용 될 수 있는 고도의 정치성을 담보하는 영역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편다. 즉 역사는 그람시가 이야기 했던 헤게모니 투쟁의 진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에서 지배계급이 삭제해버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되찾아 가는 것은 지배계급과의 헤게모니 투쟁에서 중요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역사의 속성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현실에서 역사의 힘을 인식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한 헤게모니 투쟁에서 결국 어떠한 방법으로 지배계급의 역사 오·남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주장은 비판적으로 읽어 볼 수 있다. - 하지만 이것이 지배계급의 오·남용을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과의 역사 헤게모니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이해관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고,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과거의 피지배계급이 헤게모니 장악을 통해 지배계급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헤게모니 투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 투쟁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객관성(여기서 객관성이란 엄격한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을 겸비한 과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역사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교양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따라서 역사가와 역사가의 작업은 현재를 이해하고 고찰하기 위해서 ‘과거의 힘’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지배계급과의 헤게모니 투쟁이 바로 비판적 역사인식을 갖추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사인식만을 거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비판적 역사인식은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가장 활발하게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 라이트 진영의 역사인식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 헤게모니 투쟁의 한 장면이었던 친일 인명사전 논란을 계기로 그들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사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판적 역사인식은 헤게모니 투쟁의 수단이자 결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과거의 힘’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현재 존재하는 사물이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미래에도 항상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둘째, 세계를 탈신비화 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비판적 의식이다. 셋째, 아래로부터의 투쟁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의식이다. 넷째, 비록과거는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야 말로 우리가 행동하기 위해서 끌어내야 하는 결론들의 원전이라는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의식은 사람들이 변혁의 가능성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상상력이다. 요악하자면 역사는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며, 그러한 변화는 변혁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을 통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다시 저자가 사용한 예에 적용해 본다면 저자가 신 우익의 역사 오·남용으로 지적했던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식의 일화 등은 바로 역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변화가 아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아래’라는 의미가 각 시대에서 경제, 사회적으로 지배계급에 대비되는 일반 민중을 의미한다면, 그들의 행동과 삶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역사적 변화를 이끌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민중들의 삶은 아날학파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구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사건의 영역에서의 역사가 바뀌더라도 그들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의미를 이것보다는 폭넓게, 즉 적극적으로 지배계급과 다른 헤게모니를 갖는 계급과 그들을 위한 유기적 지식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저자는 바로 역사 변화의 원동력을 계속되는 그들의 헤게모니 투쟁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역사의 변화가 그러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아래로부터의 힘이 역사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것에 너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경우, 역사의 발전을 거부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동’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될 가능성이 남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찬미하는 역사라는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에릭 포너는 자신의 저서『WHO OWNS HISTORY?』에서 니체가 제기한 역사에 대한 3가지 비판을 언급한다. 그것은 기념비적, 골동품적, 비판적 방법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찬미하는 역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기념비적, 골동품적인 역사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찬미하는 역사는 집단적 자긍심을 불어넣고 싶어 하는 소수집단 사이에서, 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취시키려는 애국자 사이에서 자못 대단한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 우익의 역사 만들기는 물론이지만 아래로부터의 힘을 강조하는 하비 케이의 입장 또한 위대한 역사를 찬미하는 ‘기념품적, 골동품적’ 역사접근에 해당한다고 비판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역사, 특히 역사교육이 매우 정치적인 맥락을 갖는 헤게모니 투쟁의 과정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글을 서두에서 언급한 과거 청산의 문제는 그저 과거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미래의 상상을 위해서 반드시 논의해야 될 문제이며,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 되어 가느냐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상상하는 가에 관한 문제이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역사는 단순한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과거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본문에 인용된,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하이에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와 정치적 소신은 여전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항상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경험은 바람직한 정책이나 제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 해주는 토대이며, 현재 우리의 정치적 견해는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영향을 주고 색깔을 입힌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역사에 대한 논쟁에서 핵심적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은 역사가의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며, 정치가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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