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전 -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 서해역사책방 14
피터 게이 지음, 고유경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전적으로 부르주아는 자본주의의 시작과 더불어 상업 활동으로 자본을 축적한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더해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돈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활양식에 있어서는 사치와 탐욕을 부리는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근대 시민사회를 이룩하고,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의 기초를 세운 혁명적인 계급으로도 인식된다. 빈자를 착취하는 악마의 이미지와, 민주주의를 세운 혁명적 계급이라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부르주아의 공식적인 활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이고 편향된 부르주아에 대한 인상은 근대 사회의 핵심이 되는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는 데에는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저자는 부르주아에 대한 사회, 경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파악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의사이자, 극작가였던 슈니츨러의 일상과 은밀한 기록은, 그가 속해 있었던 부르주아의 삶을 말해주며, 저자의 의도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먼저 은밀한 사생활의 대표적인 사례인 '性'을 탐구한다. 슈니츨러는 일생을 다양한 여자들과 함께 보낸다. 그는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맹세하다가도 금세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고 만다. 이렇게 다양한 여자를 만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만나는 여자의 처녀성을 강하게 원한다. 이러한 性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는 부르주아의 이중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예가 된다.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시대의 권위를 함께 원했던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이중성을 침묵과 예절 속에 철저히 숨겼다.
 
性과 더불어 부르주아는 폭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감정적인 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자식을 훈육하는 엘리트 학교에서는 폭력에 의한 훈육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가식적인 폭력에 대한 태도는 사회적으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라는 공인된 폭력을 낳고 만다. 자신들의 '진보'되고 '공식'적인 사회에서 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구시대적인 잔재였지만, 자신들과 인종이 다른 '미개한' 문명에 대해서는 엄청난 폭력을 휘둘렀으며, 부르주아의 토대가 되는 'Global Capitalism'을 위해서는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확장시켜 나갔다.
 
부르주아의 이러한 이중성은 결국 그들의 정신 상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온다. 근대 특유의 질병인 신경쇠약, 불안 등이 그것이다. 슈니츨러도 평생 불안에 휩싸여 살았으며 다른 부르주아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근대와 배치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겪었지만, 부르주아의 토대가 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슈니츨러의 방탕한 생활을 비난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생활이 신성한 노동에 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했다. 노동의 가치는 비단 남성들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 작용하며, 그 영향력은 지금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학의 프로이트라는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알아본 부르주아 계급의 은밀한 사생활은, 부르주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많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부르주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편협했었던 것이다. 사실 부르주아라는 계급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진 계급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의 내면을 정신분석학적 틀을 사용해 분석한 피터 게이의 이 책은 부르주아를 파악하게 돕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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