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함께 읽기
강준만 외 지음 / 돌베개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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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길고 지루했던 고3시절. 문학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언급하셨다. 아마 좋은 문장을 소개하려던 의도셨던 것 같다. 지루했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라 신영복 선생님의 이름은 곧 잊혀졌다. 얼마 후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발견한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잊혀졌던 그 이름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지루한 자율학습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는 저자의 책을 집어 들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은 그나마 지금 내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어교과서 속에 나오는 딱딱한 글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가히 충격이었다. 폐쇄된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다듬어진 정갈한 사유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후 다른 선생님의 책들을 읽어가면서 책을 읽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는것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항상 주장하시는 서양의 '존재론'을 넘어서는 '관계론'의 정립은 내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혼자사는 곳이 아니라 여러 관계들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은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할 전재조건이 되었다. '관계론'은 또한 근대를 알아보려는 최근의 관심사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존재론'에 입각한 서구 근대의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데 선생님의 '관계론'은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그의 삶 자체도 나에게는 본받아야할 하나의 모델처럼 생각되었다. 어그러진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표현한 선생님은 감옥이라는 공간에 무려 20여년을 갇혀 있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한다. 감옥을 대학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배워야 할만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다.
 
긴 감옥생활을 끝내고 성공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퇴직을 하게 되셨다. 그것을 기념해서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책을 출간했다. 선생님이 평소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이론으로 학문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는 '쉬운'학문을 지향했던 것과 같이 선생님을 기념하는 책도 일반적인 퇴직기념 문집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선생님의 학문적 성과를 성찰해보는 1부는 그의 사상, 서예, 삶 등이 진정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선생님의 60년 인생을 돌아본 한홍구 교수의 글은 그의 삶이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규성, 신정완 교수의 글은 선생님 사상의 중요한 뿌리인 '관계론'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도식적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생산관계의 구조에 정신적 가치를 종속시키는, 그래서 역사의 구조적 발전과정이 인생의 의미와 근거라고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고전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선생의 관점은 포괄적 관계론에 입각하여 정신적 가치를 인간관계 속에서 작용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실존양식을 모색하고 있다. - p. 202. 
 
선생님의 통일, 분단에 대해 살펴본 김동춘 교수의 글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의 통일과 분단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선생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가 고난에서 얻은 지혜와 통찰을 소중히 이용하자는 김동춘의 주장은 선생님의 통일관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길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생각을 가다듬는데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성장해온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삶의 무게를 감당해온 정도만큼, 그리고 시대의 고민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도만큼 세상을 보는 큰 지혜를 얻게 되고, 또 그 시대의 과제를 일반적인 용어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만큼 역사의 변화 발전에 기여한다. 신영복의 삶과 사상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힘도 그런 것이다. - p. 251.
 
선생님의 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인 서예에 대한 비평은 서예가 단지 선생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이미 대가의 경지에 이르러 서예만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역시 선생님의 글씨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글씨에 담긴 기교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깊은 사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글이 실려 있는 2부는 신영복이라는 사람의 인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업인부터 교사, 사회운동가까지 사회의 각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신영복이라는 사람을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은 그의 삶과 사상이 가지는 파급력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모두 사회적 기득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글에서 선생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외된 민중이 직접 말하는 신영복을 들을 수 있는 글이 없다는 것은 편집상의 문제점 등을 고려해 보더라고 역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선생님의 퇴임식에 삼성의 사장, 고위 정치인이 참석하는 등의 모습에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관계론'을 설파하는 신영복의 사상이 사실 책속의 죽은 사상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수의 필자가 기업인이라는 것도 사실 조금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인격으로 짐작해보아 예전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사적인 인간관계의 인물과의 관계를 단호히 거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것 또한 선생님의 인격을 파악 할 수 있는 협소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선생님의 사상의 학문적인 의미로 밝혀내고, 그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직접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으며, 신영복이라는 사람의 인격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신영복 함께 읽기'는 한 사람의 인물을 놓고 여러 사람이 글을 모아 펴내는 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선생님의 사상을 스스로 자기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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