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전경린 공명 산문집
전경린 글, 이보름 그림 / 늘푸른소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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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선 마흔이 넘으면 다른 삶이 없다. 다른 철학이 없으니까 솔직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무 살엔 혁명을 했다 해도 마흔만 넘으면 모두 현실 속에 귀순해 버린다. 저항이든 혁명이든, 새로운 모럴을 창조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처자식을 버리고 바랑 하나 둘러메고 속세를 등지지 않는 이상.....
왜 이 땅에선 개인적인 모럴이 생기지 않는 걸까. 왜 젊었을 때는 다르게 반항한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똑같은 것을 추구하게 될까. 왜 좀더 다양한 생이 없을까. 개인적인 창의성의 부족이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달리 수긍할 만한 변명거리가 무엇일까.-161쪽

복어는 내장과 알, 피 속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그 알을 먹으면 거의 즉사하게 된다. 그래서 내장과 알과 피를 제거하고도 하루 정도 소금물에 담가둔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심 분 이상 헹군다. 복어의 살에도 독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복 요리의 맛은 바로 어느 정도의 독이 주는 각별한 얼얼함과 담백함이다. 알코올 해독에는 최고라고 한다. 독은 독으로 푸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자르듯이.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고, 미움은 미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93쪽

키스를 하면 비장이 흥분하여 더 깊은 그리움이 생기고 두몸이 서로 안으면 폐가 흥분하여 온몸이 깨어나고 간장이 흥분하면 신경이 짜릿하여 감미로워지고 심장이 흥분하면 피가 뜨거워져 열정으로 타오르게 되고 피가 뜨거워지면 뇌신경이 수축되고 소장이 흥분하면 빨고 싶고 콩팥이 흥분하면 뇌를 자극해 여자의 질에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질이 젖으면 남자를 깊숙이 뿌리 끝가지 빨아들이며.... 그리고, 극단적으로 수축된 뇌신경이 더 이상 긴장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서 돌발적으로 이완되는 현상이 오르가슴이다. -147쪽

여자나 남자, 혹은 아이나 노인, 섹스의 긴장이 없는 상대와 오후내내 커다란 침대에서 뒹굴었으면 좋겠다. 옷을 입은 채로 서로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몇 번이고 깨었다가 몇 번이고 다시 잠들었으면 좋겠다. 절대로 흥분하지 않고, 편안하게....-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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