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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은 작년에 읽었던 몇권의 죽음에 관련된 책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을 충족시켜준 책이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죽음에 관련된 책중에서, 어느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없이 (아니, 슬픔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종교적 형식에 떠밀려 장례를 치르고나서야 어렴풋이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느꼈던 <가족의 죽음>이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건강에 유의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없이 지낸 노인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본인이나 그 가족이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지만, 어떤 식의 준비가 필요할 지는 무척 모호하였습니다. 그러던 차 작년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을 기회가 생겼을 때 세계적인 지식인의 이야기를 보면 이에 관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면서 서로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무척 실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14일>은 가족들과 돌아가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 14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삶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정리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지은 리사 고이치는 전직 코미디언이자 방송인입니다. 루 게릭병을 앓았던 교수와 보낸 내용을 적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저자인 미치 앨봄과 함께 방송을 한 경력도 있어 그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 책은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14일 간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내용을 출간된한것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장 투석의 경과가 좋지않자 치료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갈란다. 그냥 가게 해다오."라는 말을 남기는데 가족들이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치료를 포기하면서 종교(카톨릭>에서 이러한 죽음을 자살로 여기게 될 까봐 가족들이 걱정하는 모습이 이야기의 초반에 나오는 데, 카톨릭 신부께서 믿음은 죽음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돌아가신 저자의 어머니는 무척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었는데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병원도우미에게서 주먹인사하는 법을 배운 후, 마지막 14일간 집에서 지내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들과 주먹인사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담은 비디오를 촬영하고, 자신을 도와줄 호스피스 간호사에게 따뜻한 인생의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는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자신을 찾아오고 도와주는 주위사람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아마도 제가 그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찾으려고 했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는 저자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의지할 때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가 용변을 보는 것을 도와주고 물티슈를 이용하여 뒤처리해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자의 어린시절에 저자의 어머니가 저자에게 한 이야기와 현재의 모습이 대비되는데, 무척 감동적입니다.
- 엄마가 언젠가 "하여튼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난 널 걱정하고 챙길 거니까 그러려니 해!"하고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엄마는 진짜 그렇게 했다. 날 더 이상 돌볼 수 없을 때까지. 서로의 입장이 별안간 뒤바뀔 때까지.
역할이 뒤바뀌는 날이 오면 사람은 누구나 낯설고 생소해 한다. 그것은 사랑과 책임감으로 추는 서툰 춤과 같아서 상대방에 대한 어떤 존경의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날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내게 진짜 생명을 준 그 사람을 예우하고. 마치 신생아처럼 연약한 몸을 내 손으로 보듬어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아준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옷차림이나 건강식 같은 주제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그런 대화가 얼마후에는 의미가 없을 것인 저자가 깨달으면서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는 장면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머니, 저한테 뭔가 남기고 싶은 의미있는 말 좀 생각해보셨어요? 살면서 명심했으면 하는 말이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메시지 같은 거요. 제가 늘 기억하고 있었으면 하는 지혜의 말이요. 여기 손목에 메시지를 문신해놓게요.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뭔가 심오한 말로."
엄마가 코를 찡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진분홍색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내뱉었다.
"문신하지 마라. 간염 걸린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책의 저자도 예전 자신의 어머니의 차를 몰래 타고 외출하였다가 사고난 사실을 고백하려다가 덮어두는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이 아쉬운 마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모습과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전 이지만 가족간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