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엌의 화학자 - 화학과 요리가 만나는 기발하고 맛있는 과학책
라파엘 오몽.티에리 막스 지음, 김성희 옮김 / 더숲 / 2016년 1월
평점 :
과학과 요리가 만나는 이 책을 접하다 보니 과거 학창시절 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물리시간인데 도플러 이펙트를 배우는 시간에 교수님께서 영화 <닥터 지바고>를 이야기하십니다. 영화 속에서 기차가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오는데, 기차 기적소리의 주파수가 높아지는 도플러 이펙트가 살아있다고, 그래서 영화 정말 잘만들었다고 하셨는데, 뒤에서 다른 학생이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그런 식으로 보면 재미가 없지 ..." 요리에 과학을 접목하는 이 책의 시도가 요리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습니다.
이 책이 다루는 과학과 요리 사이의 협력관계는 구조와 질감과 맛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즉, 여기서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과학은 물리화학입니다. 요리할 때마다 복잡한 화학식이나 분자구조를 생각해야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문적으로 보자면, 요리는 식물계 (과일, 채소)와 동물계 (생선, 육류, 달걀) 로 구성되는 음식물을 온도와 압력, 시간을 조절하여 변형시키는 물리화학 현상이며, 특히 음식물에 다량 존재하는 수분(물)과 산도, 확산, 용해, 흡수, 투과 등의 화학현상이 중요한데, 요리를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학문적으로 정의한 내용에서 출발함으로써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시도의 요리를 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무스, 젤, 에멀션으로 구분되는 연성물질에 대한 물리화학적 이해를 통해 새로운 개념의 음식이나 요리가 소개되는데, 작년쯤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던 분자요리가 여기서 출발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접한 과학적 지식으로는 우선 위 연성물질의 정의입니다. 무스는 기포가 액체에 분산되어 있는 것, 에멀션은 지방질의 작은 액체방울이 다른 액체에 분산되어 있는 것, 젤은 액체가 고체에 분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이루는 제화제의 열역학적, 기계적인 속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시도의 요리를 소개하고, 이를 위하여 원심분리기나 사이펀 등의 과학도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번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에서 머랭을 만들기 위해 팔이 부서저라 휘젓는 모습이 나왔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은 후는 사이펀 등을 이용한 레서피가 먼저 떠오를 듯 합니다.
이에 추가하여 새롭게 안 개념은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것으로,고기를 구울 때 그 표면에서 단백질과 당분이 온도는 높으면서 습기는 거의 없는 환경에서 서로 반응해 새로운 향과 색을 내는 분자, 즉 갈색 색소인 멜라노이딘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기를 잘 구울려면 고기의 표면에는 높은 온도를 가하여 고기의 수분을 빨리 제거하고, 마이야르 반응을 촉진시키면서 고기의 내부는 생고기의 붉은 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뀌되, 질감은 생고기에 가깝게 될 수 있도록 온도를 어느 한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이 책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센 불에서 한 번만 뒤집기'인데 회식할 때 끈임없이 고기를 뒤집는 저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할 말이 없이 그냥 앉아있기가 어색해서 고기를 계속 뒤집는 것이지만...)
라면 끓이는 것 이외에는 요리를 하지않아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요리에 과학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도 재미있지만,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과학과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