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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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윤대녕을 편애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두운 찻집이나 도서관 구석 자리를 찾아다니던 때 만났던

그의 작품들 <은어낚시통신>이나 <남쪽 계단을 보라> 등 이후

절절하게 열광하지는 않지만, 늘 끌리어 책을 찾게 된다.

 

이십대 초반, 난 윤대녕 작품의 낭만성이랄까,

독특한 패배의식, 어둡고 건조한 기운을 좋아했고

내심 그것을 '어른들의 세계'와 동일시하며 동경했나 보다.

 

하지만 독자인 나도 나이가 먹어서

이제 그 작품 속 주인공들과 동년배가 되었다.

물론 이제 와서 느끼는 건,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가 아니고

윤대녕 사람들의 세계, 은어들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나이 먹는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이란 애틋한 면도 있는 것 같다.

10년 넘게 작품을 통해 만나온 윤대녕에게도 역시.

 

이번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가 출간된 후

- 창비에서 펴냈다는 것도 살짝 놀라움이었는데 -

여러 신문기사들이 공통적으로

"윤대녕의 안정감" "완성" "성숙함" "긍정성"을 이야기했다.

생물학적 나이와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 탓이었을까.

 

여전히 그의 작품 속 남자들은

느끼할 망정 폭력적이지 않고 낭만적이고 부드럽다(까칠함이 덜하다, 가 맞을지도).

다소 수동적이고 신비롭게만 느껴졌던 여자들이

좀더 앞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도 달라진 점 아닐까.

 

제비를 기르고 강화와 제주와 일산에 살고

집에 집착하고 혈육의 끈끈함에 끌리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한층 담백해진 어투로 그려낸 이 작품들을 읽으며

새삼 아름답다, 그립다는 느낌을

거부감 없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여행에 대한 동경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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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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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밑바닥 인생'의 삶을 그린 작품들을 기억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극도의 가난과 핍박에 휘둘리는 인간을 그린 이런 작품들은

종내는, 그래도 희망,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선 벅참을 그려내곤 했는데,

<쌀>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 또 있었던가.

과문한 나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쌀 한 줌, 동전 한 닢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 사내, 우룽은

발가락 하나, 한쪽 발, 눈 하나, 성기, 이 몽땅을 잃거나 주어버리면서

양심을, 존엄성을, 인정을, 도덕을 역시 내팽겨친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은 애초에 그에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포악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우룽과 그 일가를 지켜보면서

차라리 불이라도 나서 저들을,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대홍기 쌀집을

싹 태워버리고 하나도 없었던 때로 돌아갔으면 하고

몇 번이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무시한(?) 작가 쑤퉁의 힘은

소름 끼쳐 하면서도 이틀 동안 꼬박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너무 '착한' 작품만을 찾아 읽다가 오랜만에

힘있고 인상적인 소설을 읽었던 주말.

 

* 책을 읽으면서 라스 폰 트리에의 무서운 영화 <도그빌>을 떠올렸다.

<쌀>에서는 우룽과 쯔윈, 치윈 자매, 그들의 자식들에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나머지 인물들은 '와장가의 사람들은 지켜보았다' 정도의 배경, 구경꾼 역할을 하고 있다.

 

* 중국 문학에서의 이 작품의 가치, 그리고 작품의 배경 등에 대한 좀더 자세한 해설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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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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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청춘소설이랄까 성장소설이랄까

<밤의 피크닉>도 <굽이치는 강가에서>도 그리고 <네버랜드>에서도

불안한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은 함께 밤을 보내고 음식을 나눠 먹고

걷고 이야기를 나눈다.

타인의 비밀을 갖게 된다는 것, 고해를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은 일.

그 점을 분명히 알면서도 역시 그 나이의 호기심이란.

그리고 그 비밀에 자신의 것을 보태고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고

함께 나누면서 괴로워한다.

이 과정이 참 아련하면서도 따뜻하지만 기묘한 냉기가 흐르는데

그래도 온다 리쿠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참 착하고 순수해서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어른들은 없는 황량한 기숙사에 모여 앉은 네 소년.

눈도 쏟아지고 기묘한 분위기도 흐르는 것이

전형적인 추리물, 공포물의 배경이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비밀과 아픔이 많은 청춘의 이야기.

순간순간 손이 종잇장에 베이는 섬뜩한 느낌에 움찔하기도 했지만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이 책에 대단히 만족.

딱 이맘때, 추운 겨울, 허전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어울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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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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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작품들은 묘하다.

말랑말랑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차가운 기운을 숨기지 않는다.

<퍼레이드>도 <동경만경>도 <랜드마크>도 무방비상태로 읽다가,

당했구나, 싶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진작부터 기다렸던 신작 <캐러멜 팝콘> 역시

겉으로는 평온하고 매끈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얇은 한꺼풀을 벗기는 순간에 눈을 감고 싶어지는 느낌.

건조하고, 쿨해 보이는 일상, 그 사람들의 비밀을 공유하고 난 후

아, 이것까지는 몰라도 됐어 하지만 여전히 눈과 귀를 향하게 된다.

네 사람의 사계절,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비밀과 아픔을 숨기고 있는,

짭짤하고 텁텁한 팝콘 위에 달콤함 캐러멜 시럽을 덮어씌운다고 해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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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모으는 소녀
믹 잭슨 지음, 문은실 옮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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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영국 작가들 특유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로알드 달이 그렇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있고

루이스 캐럴에 도리스 레싱..

인상 깊게 읽은 몇몇 작가가 영국 출신이다.

물론 이들을 관통하는 특징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독특한 분위기, 일러스트에 끌려 충동구매를 하고 한참을 빠져 읽었다.

표지글처럼 굳이 그림형제, 로알드 달을 끌어오지 않았어도

작가의 힘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집.

음습하고 날카롭다기보다는 귀엽다고 할 정도로 간결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죽은 나비를 살리는 내용의 <레피닥터>는 밀교의 느낌을 주면서 흥미로웠고

<외계인 납치사건>이나 <단추도둑>은 아이들의 세계를 잘 표현해주었다.

블랙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강 건너기> <꼭꼭 숨어라>도 돋보이는 재미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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