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김형경 지음 / 문이당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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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난 김형경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전적인 소설 <세월>을 읽다가 거의 짜증을 내면서 던져버린 게 다인데 다른 작품들에도 여하간 손이 안 갔다. 궁합이 안 맞는 걸까. 그런데 '그래 봤자 5%야'라는 말에 끌려, 그리고 오랜 외유 끝에 나온 작품에 대한 기대에, 그리고 오랜만에 나온 여성주의 소설이라는 점에 끌려 읽었다. 며칠 간 잠들기 전 오직 침대에 누워서.

작품의 대부분은 주인공 세진이 심리 치료를 받는 내용이며 또 나머지는 어쩌면 형제였을지도 모를, 그리고 한 인간의 서로 다른 분신일 세진과 인혜의 교차이고 그리고도 나머지는 인혜의 사랑 찾기이다.
전체적으로 폭발적인 흡인력도 없고 밋밋하며 많은 부분 상투적이었고 구태의연했다. 게다가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세진의 심리 치료 장면들은 흥미있었지만 지루해서 대강 넘어가야 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덮고 덮어도 가려지지 않은 여성의 상처는 지나치기엔 너무나 큰 것이다. 그것은, 역시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으로 이야기하면, 유무형의 폭력에서 온 것이고 그 폭력을 예방하기엔 우린 너무 무방비 상태에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이겨내기엔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세진과 인혜의 아픔과 고통에 몰입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정말로.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고 현재의 모습이며 앞으로 가게 될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바보 같은 말이지만.

전문가 여성 집단 '오여사'는 일면 참신했지만 그것의 한계는 너무 명확해서 좀 우습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중에서 살아 있고 매력 있는 캐릭터는 세진의 상담인이었다.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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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 개정판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7
송혜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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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식당에 가면 항상 먹던 것만을 시켜 먹게 된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등에는 가본 적도 없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으며, 맛있는 집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미식가도 아닌 것은 예민하지 않은 둔하고 펑퍼짐한 내 성격 탓일 것이다. 식욕이란, 그리고 혀도 느끼는 감각이란 인간이 누리는 하나의 특혜와도 같을 것이다. 경박하게 말하면 '배가 부르니' 미각을 통한 욕망의 분출도 찾게 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풍부한 감각인 것도 분명하다.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를 읽게 된 건 우선 서점에서 특이하고 세련된 장정에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지 꼭 읽어야겠다고 끌렸던 건 아니다. '엑조티즘'과 '댄디' 같은 정말 낯선 특징을 나타내는 카피도 그랬고 등단한 지 10여 년만에 처음 소설집을 묶어내는 작가의 약력도 그랬고, 괜히-나쁘게 말하면- 겉멋이 든, 상류층 취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벨벳'의 느낌 그대로.

작품들은 내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게 초대되어 안 맞는 옷을 입고 낯선 이들과 발음도 어려운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체할 것 같은 거북스러움이라기보다는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소녀의 경이로움.

호수 옆의 예쁜 집,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나른하고 위태로운 사건들, 향기로운 차가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정원을 내다보는 중년 여인의 권태로운 눈빛들... 이런 것들이 구차하진 않지만 끔찍스럽게,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답지도 않게 그려지고 있다.

'앤틱'의 물건들을 좋아하는 주인공(또는 작가)의 취향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피하지도 못하는 몇몇(결코 다수의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다) 여인들의 과거지향적인 굴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느 작품인가와 비슷한 표제작도 그런 대로 좋았고, <거울이 놓인 방>이나 <먼 옛날부터 당신을 기다렸다>도 괜찮았다.

그래도 점수를 많이 주지 못하겠는 건, 다분히 자기도취적이고 유아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말'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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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출판
와타나베 미치코 지음, 김광석 옮김 / 신한미디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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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늠름(元氣凜凜)’이라는 말이 턱 하니 박혀 있는 이 특이한(!) 표지의 책은 작년인가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의 글에서 처음 만났다. 그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퍽 재미있다는 평이었던 것 같다.

‘편집쟁이’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났고 내 손을 거쳐간 책이 서점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부족한 편이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되었고 - 입버릇처럼 하는 말,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 - 이왕 하는 거 정말 잘하고 싶지만 능력 부족은 늘 나를 괴롭힌다. 여러 선배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으로 엿들으며 나만의 노하우나 신념을 쌓으려고 하는데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고 영원한 나의 숙제일 것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또한 이 일의 매력이리라 믿는다.

이 책은 일본의 ‘소출판사’ - 정확히 얼마만한 규모인지는 모르겠다. 인터뷰 내용상 열 명 안팎의 출판사를 지칭하는 듯 - 28곳의 편집자(또는 경영자)와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일본에는 4,500여 개의 출판사가 있는 듯한데, 그 중 나름대로의 성격을 가지고 적은 수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출판사를 선정하여 순방한 것이다.

그들에게 묻는 것은 대체로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원래 출판을 했는가’ ‘주로 어떤 책을 어떤 생각으로 내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출판의 매력은 무엇인가’ 등이다. 간단한 질문과 그에 맞는 간결한 대답 등이지만 독특한 매력도 있고 몇 가지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있어 지하철에서 줄을 쳐가며 읽었다. 내가 요즘 -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 필요로 하는 것은 ‘동업자’나 ‘선배’들과의 교류이다. 그것을 통해 나를 자극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그런 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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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 클럽
배수아 지음 / 해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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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까지 읽은 배수아의 '작가의 말' 중 이 책의 '작가의 말'이 가장 신선했던 것 같다. 우선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솔직해 보였다. 특히 이제는 '독특함'이라는 표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토로. '단지 '독특함'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엽기적인' 작품이 '연애소설'이라니! 어쩐지 유머 같으면서도 진지했다. 난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런 연애는 흔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

그렇다. 이것은 연애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주 통속적인, 그래서 지독한.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고 사랑을 나눈 후에 거울을 보며자신의 상처를 살피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치마의 튿어진 단을 떠올린다. 그것이 연애이며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삶이다. 한나나 이반이나 무열이나 아방가르드 잡지 편집장이나 그러한 연애 공식에 투철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난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죽어가는 한나보다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 여행을 꿈꾸는 무열이 더 안쓰럽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붉은 손 클럽'에 들어가기에 난 자격 조건이 해당되는가. 난 그 정도로 자유를 꿈꾸며 그 정도로 외로워하며, 그 정도로 이기적인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나만의 신이 없다. 한나에게는 분노와 조급함, 결핍과 냉소의 신이 있다. 그래서 그는 '붉은 손 클럽'의 회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나태함과 무기력의 신이 있지 않을까?

숨차게 갈증을 달래려는 듯,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래서 시집과 다른 소설을 일단 뒤로 미루고 다시 읽는 중이다. 만약 내가 배수아의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철수>를 읽고 <은둔하는 북의 사람>을 읽고 <프린세스 안나>를 읽었기에 이 책을 기다렸던 것이다. 여전히 배수아의 인물은 결핍되어 있고 냉소적이고 그림자도 없어 보이지만 이제는 더욱 구체적이다. 그래서 반갑고 나의 느낌도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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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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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요즘 만나뵙기 힘든 좋은 어른신 같다. 고리타분하지도 까탈스럽지도 않은 말씀들이 잔소리도 들리지 않고 두고두고 되새겨볼 만하다.

왠일인지 나는 이분이 번역하신 책은 제대로 읽은 바 없고 소설 역시 짧은 작품 몇 읽었을 뿐이지만 전작 <어른의 학교>와 이 책에 맘을 많이 뺏겼다.

다만 여기서 사소한 항의 몇 가지. <어른의 학교>와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힘이 좀 빠졌다 - 예를 들어 '황진이' 노래 이야기 같은 것.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그 문체나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아쉽다.

특히 우리말 쓰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유익하고 감명 깊게 읽었다. 흔히 잘못쓰는 어법에 대한 지적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제목 중 하나 '옥의 티'라니! 정말 '옥에 티'였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많은 오자들은 그야말로 '옥에 티'이다. 심혈을 기울여 책을 내기로 유명한 분이 이 책만큼은 제대로 교열을 보지 않으신 건지.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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