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1
장정일 외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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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번에 나온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에는 그의 단상, 자작 시나리오, 예전의 대표시 들이 수록되어 있어 아주 반가웠다. 그리고 그다지 몇몇 평론가들의 '작가론'도.

사실 작가론과 '인간 장정일'에 묶인 글들은 그다지 건질 만한 것이 없었다. 특히 장정일의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와 그의 원작을 비교했다는 영화평론가 전찬일의 글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함량 미달의 글이다.

중언부언. 들쑥날쑥. '소위 명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독문학도였'(본문 161쪽)던 이 평론가의 글은 사적인 감상도 아닌, 날카로운 평론도 아닌,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지루한 글이라서 읽는 동안 나는 괜히 화를 냈다. 도대체 장정일의 작품이 어떻다는 것인지, 그것이 영화화되면서 뭐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표현되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비해서 장정일 사건에서 그의 변호를 맡았던 강금실 변호사의 글은 표현의 자유가 왜 보장되어야 하는지, 왜 우리 사회가 몸과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지에 대한 간결한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특히 이런 대목은 아주 멋있었다.

'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그의 이름으로 부르고 - 우리 사회 호칭의 복잡한 권위적 구조, 性器를 공개적으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는 은폐성을 생각해 보라 -, 가능한 한 육체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놓여 원하고 충족하고 사랑하며, 서로가 타인의 육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아마도 이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며, 삶에 지친 몸을 달래는 모든 사람이 밤마다 혼자 잠들면서 꿈꾸는 사회일 것이다. 앞선 사람인 작가로서 그와 같은 꿈에 도전한 장정일을 위하여, 이 사회의 모든 장정일을 위하여 나는 변론하고 싶다.'(본문 198쪽)

사실상 나는 장정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가 문학적으로 과연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 혹 이슈화된 것에 비해서 과대평가된 것은 아닌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 색깔과 의도를 가지고 남들과는 다른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의 엄청난 독서량, 작가로서의 자의식(모든 작가는 매문을 할 수밖에 없다, 또는 나는 살기 위해 쓴다는 외침 등)에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나오길 바랄 뿐이다. 게다가 어느 바운더리에도 속해 있지 않은 독립군으로서의 외로움이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지 않을까. 한 가지 더. 언제나 '소년'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어느새 마흔이다. 괜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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