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온수 나오기 전에 나오는 찬물이나, 헹구고 나오는 맑은 물을 모아 두었다가 변기 물을 내릴 때 사용한다.
그 물을 퍼 옮기는 통에 화장실 청소하려고 구연산 두 스푼을 희석해 뒀다. 
청소하다가 짬깐 자릴 비웠다가 다시 청소하려고 통을 들었는데 통이 번쩍 들리는 거다. 비었다. 즉각 목 뒤가 뜨끈해졌다. 
어~ 꺅~  이거 어디갔어 , 어디갔어 , 소란을 피웠더니 남편이 놀라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남편은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지 김이 샌다는 표정으로 본인이 하던 일을 마저 하러 가버렸다,
알고 보니 남편이 화장실 볼일을 보고 구연산 담긴 그 통을 들어 물을 내린 거였다.
난 남편이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한테는 대형 사고였지만, 남편 입장에선 늘 이루어지던 화장실 사용법이었던 거다.
예전 같았으면 하소연 좀 했겠지만, 아니 길길이 날뛰었을지도..
허나 나는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웃고 있는 생경한 나를 관찰한 다차원을 체험한 것 같다.
남편 입장을 생각하니 버려진 구연산 두 스푼에대한 황망함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공부가 체화되고 있는 걸까.
괴로움이란게 나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인과를 모를 때 생기는 법이라는.
모를뿐, 이유의 존재는 엄연하다. 
'오해' 대신 '이해'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해야겠다.
구연산 두 스푼이 사고를 제대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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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나르기 봉사에 참여했다. 
에베레스트 수준으로 청정한 공기를 유지하기위해 월 수 천만원의 전력을 소비하는 회장님 저택과 
겨울을 나기 위해 연탄 갯수를 셈 해야하는 낮은 처마집이 병존하는 곳이 내가 사는 이 시대다. 
첨단이든 수고로운 옛 방식이든 내 입장에서 현실감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첨단에대한 선망보다는 연탄을 향한 애처로움이 선명하다.
이 간극으로인한 현기증은, 나의 모든 방식에 덜 갖고 덜 해치는 선택을 강화할 것이며 
스콧니어링 선생이 길을 열어주셨듯, 나도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 길이 되겠다는 과대망상을 꿈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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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학교에서 아보가드로의 법칙 안배웠어요? 멍 하네요." 하셨다. 
(쯧쯧, 맹꽁이들)이라는 환청이 따라 붙었다. 종종 경험한 패턴이었다.
그런데  스님이 농담을 잘하셔서 재밌었다는 어느 도반의 나누기를 듣고, 
내가 느낀 무안을 주는 스님은 농담 잘하는 스님으로 바뀌는 마법을 경험했다. 
아마도 내가 평소 배우고 싶어 했던 성정을 지닌 그 도반을 향한 호의가 주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극적인 관점의 전환을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단독 주택에 살 때인데, 
정원에 고라니도 오고 다람쥐도 오는 곳이었다. 
어느날  집 안에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도마뱀이 들어와 깜짝 놀라 엄마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아이가 허리를 굽혀 도마뱀에게 얼굴을 가까이 기울이더니 
"할로우" 라고 하는 거다. 
그 순간 징그럽고 무서운 도마뱀은 귀여운 생명체로 바뀌었다.
이렇듯 재밌는 스님과 할로우라는, 도처에 존재하는 마법의 언어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무의식 중 조건화된 감정들을 분리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관습적 사고를 해체해 지금을 정직하게 경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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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이 일을 할 것인가 '
이런 질문 하나 품고 살면 생이 얼마나 경이로울지, 하루가 얼마나 충만할 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일상의 위대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책을 주문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는 지인의 것도 셈에 넣었다.
전달의 순간, 그 연결의 감각만이 대가의 전부다.
고맙다는 반응의 기다림이 나누는 기쁨을 훼손한다는 경험이 쌓이다보니
나누는 그 행위 자체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가르침이 전제된 후의 깨달음이 아니라, 긴 체험을 통해 도달했기에 이러한 이치는 완전히 내 것이다.
비교적 이 영역에 한해 난 자유롭다.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 책이라서 , 내 선택의 고민까지 덜어주는 그녀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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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면 다 될 것 같은 그녀의 에너지를 발견하였고, 
카페에서 떡을 나누며 그들을 해석할 이해의 선을 여럿 그었고, 
필요로했던 오고 감이 있었던 M4403으로 순식간에 서초 투어를 마무리지었다
지금까지의 소통이 가상 공간에서의 일이 아니었건만 온라인에서의 그들을 확인하는 건 
새로운 차원으로의 진입처럼 설레였고 안도감을 줬다. 
특히 오래 그리다 마주잡은 4층 엘레베이터 앞 핑크의 주인공과의 감격이 가장 현실적인 기쁨이었다. 
그간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던 온라인 수업의 편리함이 좋았고 고마웠다. 
그러나 오프 체험을 해 보니 온라인의 한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온라인 방식은 더욱 불완전해 보인다. 
또, 대면 상황이 전제된 후 이루어진 온라인 접속에 비해, 
출발부터가 온라인일 경우는 우리가 상대에게 얻는 정보가 정서적 감도는 물론 사실의 정확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의 확인은 지금까지 내가 마치 억양이 빠진 음성만 전달되는 것처럼 빈곤한 소통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그래서 지난 학기의 나눔이 아깝고, 섣불렀던 판단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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