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온수 나오기 전에 나오는 찬물이나, 헹구고 나오는 맑은 물을 모아 두었다가 변기 물을 내릴 때 사용한다.
그 물을 퍼 옮기는 통에 화장실 청소하려고 구연산 두 스푼을 희석해 뒀다.
청소하다가 짬깐 자릴 비웠다가 다시 청소하려고 통을 들었는데 통이 번쩍 들리는 거다. 비었다. 즉각 목 뒤가 뜨끈해졌다.
어~ 꺅~ 이거 어디갔어 , 어디갔어 , 소란을 피웠더니 남편이 놀라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남편은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지 김이 샌다는 표정으로 본인이 하던 일을 마저 하러 가버렸다,
알고 보니 남편이 화장실 볼일을 보고 구연산 담긴 그 통을 들어 물을 내린 거였다.
난 남편이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한테는 대형 사고였지만, 남편 입장에선 늘 이루어지던 화장실 사용법이었던 거다.
예전 같았으면 하소연 좀 했겠지만, 아니 길길이 날뛰었을지도..
허나 나는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웃고 있는 생경한 나를 관찰한 다차원을 체험한 것 같다.
남편 입장을 생각하니 버려진 구연산 두 스푼에대한 황망함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공부가 체화되고 있는 걸까.
괴로움이란게 나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인과를 모를 때 생기는 법이라는.
모를뿐, 이유의 존재는 엄연하다.
'오해' 대신 '이해'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해야겠다.
구연산 두 스푼이 사고를 제대로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