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틈틈히 묶어 놓은 이사 박스를 옮겨 간다. 우리집이 아니라 그녀의 집.  이달 10일엔 출국할 것이고.  어제 비가 많이 왔고,오늘도 날이 어둑신하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7시 40분 경에 전화를 넣었다. 헌데 내 전화에 비로소 잠이 깼나 보다.  아이들 학교도 안보내고 내내 잤던 것. 저런... 짐 잘 보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정리할 짐이 끈질기게 나와 밤 늦게 잠들었나 보다. 나도 미리 미리 버릴 것은 버려야하는데. 버린 후엔 그런 것이 있었던가 기억조차 못하는 짐들을 왜 난 후딱 버리지 못하고 성가시게 끌고 다니는 걸까. 언젠간 소용 있을지 모른다는 희박한 미련때문일까? 궁상떨지 말라고 엄마가 말풍선 안에서 동동 떠 있다.

미국 생활 2년차 즈음에 깜짝 입장한 그녀. 항상 덤벙대고 어성버성한 날 떨구지 않고 요리조리 잘 매만지던 맘 넉넉한 친구다. 친구? 남편 회사동료의 아내이니 친구란 말이 좀 어색하지만 친구란 말로 묶였으면 하는 내 욕심정도.

한국 귀국 후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게 될 인연이 있었다. 당시엔 그저 비슷한 지역에 분양 받은 우연이겠거니 했다. 허나 지금은 우연이란 말보단 좀 더 절대적 연관성을 들먹일 만한 끈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2년여의 미국 생활이 만들어 준 연결 고리의 연장으로 말이다. 물론 미국과는 다른 소통 환경인 한국을 염두한다면 귀국후 한국에서 가까이 거주한다는 것만으로 지금의 이런 밀착감이 지속되리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워낙 그녀는 많은 인간 관계의 통로를 갖고 있는 데다가 지금의 우리 관계는 미국이라는 단절된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던 유대라 생각하니까. 적어도 나는.

** 내 기질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싶다. 우열 아닌 차이로 순순히 인정했음 좋겠다. 최근 나의 정체성을 심문중이다.  질풍노도를 통과 하는 시기도 아니요, 그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문제가 왜 지금에서야 문제로 떠오르는가....묻고 싶다.  방방 떠있기도 하고, 바닥 모르는 심연으로 가라앉기도 하고...전화 과 밖의 나...남들과 섞여 있을 때의 와 혼자일 때의 나... 뭐가 내 진짜인지 정말 모르겠다. 섞여 있을 때가 너~무 좋기도 하고, 죽어~도 섞이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타인에게 자연스레 스며드는 투명한 이들이 부럽지만 그것을 흉내 내고자 내 패턴을 담보 잡히자니 속 털린 싸구려가 될 것 같고 - 나완 맞지 않는 방식을 쫓다가 그나마 갖고 있던 내 색깔마저 빠질까 하는 우려이지 그들이 싸구려라는 의미는 아니다 - 하여튼 사교적인지,고립적인 인간인지  내가 나를 헷갈려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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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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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참으로 쉽게 풀어가는 이들도 있구나 싶다. 확률같은 건 안중에 없이 무조건 들이대고 보자는 그들의 인생 속엔 절망적인 상황이란 발붙일 수 없는 듯하다. 분노가 휘발된 배신들, 밋밋하게 희화되고 희석된 사랑들, 발 빼고 싶으나 휘말리는 인연의 고리들. 작가가 가볍게 꼬인 필터를 들고 그들을 통과시키고 있다.   

몇 학년 몇 반 아무개가 여학생하고 소보로 빵과 모찌를 나눠 먹던 중 학생주임에게 뺨을 맞고 개처럼 낑낑대며 끌려 나왔다고 교내 방송으로 전교에 그 사실이 알려져 창피를 당하기 마련이었다. p28  

어쩜 여학생들은 '진짜 진짜 좋아해'의 임예진처럼 손뼉까지 치며 감탄했다. p59

그들은 사회정화라는 이름을 내걸고 삼청교육대로 붙잡아갈 인간 불량품을 색출하는 중이었다. p107

해외 펜팔,문예반,국상, 대통령 유고,문민 정부 등 70,80년대 그 시대의 마디를 짚어갈 때마다 각 시기의 나를 회상해 보는 보너스를 받았다. 만수산 4인방과 꼭 들어맞는 시대를 살아낸 것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소재들이 변두리 기억을 건들일만큼은 내 성장와 근접해 있다.     

신문에 연재했던 중편을 장편으로 고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작가의 말을 읽어서인지 중간 중간 추가된 부분이 혹 이곳일까 라는 점검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3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분석하지 못했는데 다시 읽게 되니 비로소 눈에 들어 왔다. 243 페이지로 장편이라하기엔 좀 짧은 것 같고 '태평성대'부분은 급하게 마무리짓고자 한 것인지 작가의 다른 의도였는지 생략하듯 서술되어 그 전까지의 서술과 속도,문체 등이 많이 달랐다. 짧은 지면에 많은 시간을 우겨넣은 듯한 아쉬움이 고였다. 전체적으로 희화됐어도 냉소적인 목소리로 자분자분 설명되었건만 마지막 부분엔 왠지 급했다.

형준의 신중함과 완벽주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매사에 부정적이고 진취성이 부족하다는 주변의 평가는 내가 느끼는 관계의 서늘함과 흡사했다.  내가 가장 조바심 났던 것은 누군가의 야반도주도 느닷없는 죽음도, 두 눈 버젓이 뜨고 내 밥그릇을 갈취 당하는 것도 아닌 그들에게 엮여 드는 형준의 인생이었다. 운명을 만들지 못하고 운명에 말려드는 지난한 우리네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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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일 수 있는 여행을 다녀왔다. 곧 출국할 지인들. 다섯 가족 20명. 출발 일주일 전부터 추운 날씨 예보때문에 동행 여부 앞에 갈팡질팡 했었다. 그런 날 끌고 가려고 두 사람이 적극적인 공세를 폈더랬다. 맘은 물론 그들과 구속없는 시간을 부담없이 보내고 싶다 쪽이었지만, 5도 안팎의 흐린 날씨가 발목을 잡았었다.  그러나 결국 토요일 근무 마치고 하루 늦게 합류.  

서 너 시간 빗속을 밟고 딩동 ~ 역시나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고 16명이 집안에 감금되어, 식탁에 둘러 앉아 시간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하고 비가 조금씩 멎으면서 일행 중 일부가 낚시를 나갔는데, 남편의, 팔뚝만한 송어를 낚아 오는 돌발 행보 덕분에 저녁식탁은 횟감과 낚시꾼 붕붕 띄워주는 말 말 말들로 풍성했다. 남편의 선전은 다음날에도 계속 되었는데, 다음날은 돔을 건져 올렸던 것. 두 번의 연거픈 수확으로 남편의 닉네임 강태공으로 만장일치. 참고로 남편의 성은 강.  실적은 저조하나 낚시 여행을 예사로 다녔던 한 동료에게 기세등등한 톤으로 남편이 하는 말. 낚싯줄 따라 살기를 느끼면 물고기가 접근하지 않거든요. 허허허. 묵묵히 사시미날로 회를 뜬 인물은 낚시에 열의 가득한 그 동료.  곧 자신의 수확물을 도마에 올려 놓은 날이 오겠죠.

10명의 아이들을 빼곡히 채워 보육원화된 식탁은 한 차례 설거지로 다시 셋팅. 엄마들도 식사  전이었건만 그 사실을 몰랐던 배가 몹시 고픈 아저씨들이 대강 식탁을 훑어주시고, 뒤늦게 회를 떠서 된장국과 스테이크로 채워진 세 번째 식탁에서 와인과 맥주도 올려 어른 모두가 저녁을 함께, 다시 맞았다. 이미 전 날 한 잔 돌렸으니,첫날밤의 피로와 한낮의 들랑 날랑,무료함에 지쳤는지 아저씨들은 배정된 방으로 유순하게 사라졌다. 방배정 당시 우리 식구에게 방 한개를 준다는 발표를 듣고 아저씨들의 폭발적인 불만의 함성이 있었다. 스위치를 누른 듯 동시에 나오는 항의의 목소리들. 이런 의외의 행동들 또한 낯선 공동의 공간에서 부벼 지내는 시간 속에서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컷이 아닐까. 빙그르르...

엄마들과 와인과 맥주만 새벽 5시까지 남았다. 알콜 에너지가 많은 말을 끌어 내었는데, 에너지가 알콜인 만큼 횡설수설의 경계를 넘지 못했으니 지금  남아 있는 말은 '개별성의 훼손'이라는 두 어절뿐. 그리고 동료와의 포옹과 토닥임.  다 똑같아. 남의 떡이야.라는 그녀의 반복 재생되는 메세지. 마지막이란 이렇듯 실체 이상의 옷을 입혀준다.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쓸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내가 가져가는 선물은 빌레로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유대인 것 같다. 



부지런한 그녀가 8시경 아침을 열었고 덕분에 일찌감치 대식구의 아침과 체크아웃을 마치고 본격적인 여행의 명분을 찾아 출발. 차가운 날씨와 낚시,돔,게,뜨끈한 라면.   

드문 드문 듣던 빗방울은 여행자의 등을 서둘러 떠밀었다. 날카로운 서쪽 햇살 속에 오스틴은 우릴 맞았고 우린 각자의 자리로 들어왔다.    

2년여간의 미국 생활동안 가장 명랑한 페이지가 아닌가 싶다.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밖을 향한 시선에 생크림 한 숟가락 휘휘 저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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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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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 시절을 도려내지 않는 한 소멸될 수 없는,기억이란 거, 그리움이란 거.   

대신할 수 없는 자리, 묻어두었을 뿐 언제나 엄연했던 존재를 이젠 길어 올린다.

헌데,문을 찾은 지금 더 큰 단절감을 느낀다.   

막연했던 경계들은 낱글자 하나 들어가지 못할만큼 견고하다.  

방치한 시간동안 여러 개의 이름을 잉태한 우린 그 이름에 뒷덜미가 잡혀,  

문을 찾기 전보다 희미해 진다. 

                                                                                                                                                      200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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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듣는 순간 글썽. 우리 사일 가로 질렀던 시간이 한순간에 접히는 듯 그의 존재가 줌 인 되었다. 알콜이 준 에너지를 몽땅 버튼 하나에 그러모았는데. 지난 시간을 뻥 차버리는 듯한 말투 순간 반가움, 그러나 방치된 시간이 환기되면서 뻔뻔하단 느낌으로 변질되었다. 그도 그럴밖에 없었겠다만은.  

마음에 담은 말 중 몇 개나  표현을 하는지 모르겠지만,그에게서 표현되는 것엔 덧칠이 없었다. 우회하지 않고 사실로 내리 꽂는데 그런 방식에 당시 난 심각한 면역결핍에 시달렸다.  

너무나 사람들을 잘 믿어 그로 인해 엄마로부터 들은 지청구들. 넌 왜 그렇게 사람들을 잘 믿니.남들이 다 너같은 줄 알아? 그 주문들로 난 무조건 의심 한자락 깔고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이나,예쁘다는 말이나,음식이 맛있다는 말이나 뭐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려니 반 정도만 받았다.  그로인해 내겐 자존감 결핍이란 부작용이 남았다. 

의심의 얇은 막이 생긴 내 귀로는 그의 진실도 사실일 수 없었다. 사실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을 가진 이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가슴을 가진 나. 우린 서로에게로 향하는 통로를 마련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으리라. 이렇게 다르면서도,서로를 파악하지 못했고,관계를 분석하지 않았던 우린 그래서 늘 위태로웠나 보다. 

"그래 그래" 말이 날 감싼다.  폭신한 구름에 포옥 안기는 듯한 온기가 건너온다. 미소가 머물렀을 리듬에 순간 긴장이 풀린다.  

그는 정말 그였다.

                                                                                                                                                        200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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