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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줄넘기 하기 (18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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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가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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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나들이 가는 가족 (19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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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악사 주위에서 춤추는 아이들 (19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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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지하철 칸 (19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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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팔이 소년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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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들이 일하는 건물 (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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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채권 구매를 홍보하는 영화배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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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흑인 부대의 행진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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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거리 (19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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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뉴욕을 바라보는 이민자 가족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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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환기창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아이들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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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내리는 세련된 여인 (19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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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폭락으로 자신의 고급 승용차를 길에서 팔고 있는 남자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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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전 마지막 키스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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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가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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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배급소에 길게 늘어선 실업자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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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풍경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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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붙인 인부들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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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의 조촐한 클럽에서 보내는 즐거운 시간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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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야경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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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개봉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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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구역의 두 소년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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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아일랜드의 피서 인파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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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어느 길에서 자전거 타는 꼬마들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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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시티 뮤직홀의 안내원들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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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자에게 다가온 아이들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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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와 충돌한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을 바라보는 사람들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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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망에 환호하는 시민들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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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속옷 판매원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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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뛰어드는 소년들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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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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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귀환을 환호하는 시민들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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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렘플린에서 점프하는 소년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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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복판의 교통 경찰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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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을 뒤적거리는 어린 소녀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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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하는 소년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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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 쇼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청소년들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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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센트럴 파크에서 뛰노는 아이들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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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세련된 남녀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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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도중 연행되는 흑인 여성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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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가 머무르는 호텔에 진입하려는 소녀 팬들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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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커플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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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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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풍경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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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처음 열린 게이 퍼레이드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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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권리 운동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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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인 국제 무역센터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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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54에서 춤추는 여자들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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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댄스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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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뉴욕 맷츠를 환영하는 시민들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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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당한 국제 무역 센터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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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 전경 (2006년)

 

* 자료출처는 http://pro.corb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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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1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감상했어요. 별찜이에요!

나비80 2008-07-1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쌩유 베리 감사!
 

7월 5일의 '승리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도 줄 곧 하는 모양이다. 이철수의 목판화를 메일로 서비스 받고 있는데 2008년 7월 7일 내게 들어온 판화 한 컷! 철수 아저씨 말씀도 읽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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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7-0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사진(?) 저 가져갈게요.

나비80 2008-07-0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것도 아닌걸요. 철수 아저씨 평소 씀씀이 보시면 가져다 널리 쓰셔도 될 거예요.
 

  "이제 우리의 노동자들은 민중이 소유하고 있는 공장에서 농부들은 공동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지식인들은 새로운 건설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행복의 첫 배급품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하필이면 지금- 이들에게 지나간 시절의 어두운 사진들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과거를 잊는 사람은 그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책은 사진을 해독하는 기술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 이유는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사진을 해독한다는 것이 여느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세심하면서도 또한 야비한 방법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의 연관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로 인해 잡지에 실리는 수천 장의 사진은 그야말로 상형문자로 그려진 그림들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루트 베를라우(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전쟁교본> 소개글) 

* 역대 세계보도사진 대상 수상작 모음*

1955년
Mogens von Haven, Denmark.
Volk Mølle racecourse, Randers, Denmark, 28 August 1955.




덴마크의 모터싸이클 경기에서 일어난 사고

1956년
Helmuth Pirath, Germany, Keystone Press.
West Germany, 1956



독일 패망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독일과 쏘련의 독소전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독일군 아버지가 어린 딸과 재회하고 있는 장면.


1957년
Douglas Martin, USA, The Associated Press.
Charlotte, North Carolina, USA, 4 September 1957



저 가운데 있는 흑인 여학생 이름은 도로시 가운츠이다.  그녀는 흑인 최초로
일반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바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인종차별 철폐정책때문에
그녀는 하딩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사진처럼 온갖 모욕적인 일을 겪는다. 심지어 돌팔매질이 가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1958년
Stanislav Tereba, Czechoslovakia, Vecernik Praha.
Prague, Czechoslovakia, September 1958.



프라하 vs 슬라바키아의 경기. 짙눈깨비가 흔날리는 악천후속에서도 경기는
진행된다. 


1959년 수상작 없음


1960년
Yasushi Nagao, Japan, Mainichi Shimbun.
Hibiya Hall, Tokyo, Japan, 12 October 1960.



일본 사회당 당수 이네지로 아사누마에게 한 극우파 대학생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1961년 수상작 없음



1962년
Hector Rondon Lovera, Venezuela, Diario La Republica.
Puerto Cabello naval base, Venezuela, 4 June 1962.



베네주엘라의 해군기지에서 총을 맞은 병사가 신부에게 매달려 있다.
신부는 총을 쏜(총소리가 난)곳을 바라보며 원망어린 시선을 보낸다.
마치 쓰러지는 예수를 부축하는 피에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1963년
>Malcolm W. Browne, USA, The Associated Press.
Saigon, South Vietnam, 11 June 1963.



63년 6월 11일 남베트남에서 한 승려가  정부의 종교탄압에 항의 하기 위해 분신하는 장면.



1964년
Donald McCullin, UK, for The Observer, Quick, Life.
Ghaziveram, Cyprus, April 1964.



그리스와 터키도 종교문제로 분쟁이 일어난
지중해의 아름다운섬 사이프러스.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사이에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1965년
Kyoichi Sawada, Japan, United Press International.
Loc Thuong, Binh Dinh, South Vietnam,



1965년 베트남. 미국의 폭격을 피해 강을 건너는 가족들.


1966년
Kyoichi Sawada, Japan, United Press International.
Tan Binh, South Vietnam, 24 February 1966.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의 시신을 묘지로 운반하고 있는 장면.



1967년
Co Rentmeester, the Netherlands, Life.
South Vietnam, May 1967.



1967년 베트남. 탱크안의 미군 병사.

1968년
Eddie Adams, USA, The Associated Press.
Saigon, South Vietnam, 1 February 1968



베트콩을 길거리에서 즉결처형하는 베트남장교.



1969년
>Hanns-Jorg Anders, Germany, Stern.
Londonderry, Northern Ireland, May 1969.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 IRA(아일랜드해방군)은 영국에 수차례 테러를 가하고 영국군에 의해 보복을 당한다.

1970년 수상작 없음

1971년
Wolfgang Peter Geller, Germany.
Saarbrucken, West Germany, 29 December 1971



독일 자아르브뤼켄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



1972년
(Nick) Ut Cong Huynh, Vietnam, The Associated Press.
Trangbang, South Vietnam, 8 June 1972.



Phan Thi Kim Phuc 라는 9살난 베트남 소녀가  미공군의 네이팜탄 공격에  온몸에 화상을 입고
뛰쳐 나오는 사진.



1973년
Orlando Lagos, Chile, for The New York Times.
Santiago, Chile, 11 September 1973.



칠레의 알렌데 대통령이 쿠테타에 의해 대통령궁에 갖히게 되는 사진.


1974년
Ovie Carter, USA, Chicago Tribune.
Kao, Niger, July 1974.



1974년에 나이지리아의 대가뭄.


1975년
Stanley Forman, USA, The Boston Herald.
Boston, USA, 22 July 1975.



보스턴에서 있었던 화재 사건.


1976년
Francoise Demulder, France, Gamma.
Beirut, Lebanon, January 1976. Palestinian



레바논 베이루트.



1977년
Leslie Hammond, South Africa, The Argus.
Modderdam, Western Cape, South Africa, August 1977.



남아프리카 서부 모데르담.



1978년
Sadayuki Mikami, Japan, The Associated Press.
Tokyo, Japan, 26 March 1978.



일본 나리타공항 건설 반대 시위 현장.




1979년
David Burnett, USA, Contact Press Images.
Sa Keo refugee camp, Thailand, November 1979.



태국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배급을 기다리는 캄보디아 여인.




1980년
Mike Wells, United Kingdom.
Karamoja district, Uganda, April 1980.



우간다의 굶주린 아이.



1981년
Manuel Perez Barriopedro, Spain, Agencia EFE.
Madrid, Spain, 23 February 1981.



쿠테타를 일으킨 군인과 경찰이 스페인 마드리드 의사당을 점령했다.



1982년
Robin Moyer, USA, Black Star for Time.
Beirut, Lebanon, 18 September 1982.



레바논의 기독교우파와 이스라엘군의 총에 의해 사망한 팔레스타인계 사람들.



1983년
Mustafa Bozdemir, Turkey, Hurriyet Gazetesi.
Koyunoren, Eastern Turkey, 30 October



터키 동부의 Koyunoren의 대지진 참사.


1984년
Pablo Bartholomew, India, Gamma.
Bhopal, India, December 1984.



1984년 인도 보팔시의 화학공장 폭발 독가스 유출 사고.




1985년
Frank Fournier, France, Contact Press Images.
Armero, Colombia, 16 November 1985.



콜롬비아의 화산폭발.



1986년
Alon Reininger, USA/Israel, Contact Press Images.
San Francisco, USA, September 1986. Ken



죽음을 기다리는 AIDS환자. 




1987년
Anthony Suau, USA, Black Star.
Kuro, South Korea, 18 December 1987.



1987년 대한민국 서울.




1988년
David Turnley, USA, Black Star/Detroit Free Press.
Leninakan, USSR, December 1988.



구소련지역이었던 아제르바이젠의 큰 지진.




1989년
Charlie Cole, USA, Newsweek.
Beijing, China, 4 June 1989.



중국 천안문 사태.




1990년
Georges Merillon, France, Gamma.
Nogovac, Kosovo, Yugoslavia, 28 January



유고군에 의해 공습당한 코소보.



1991년
David Turnley, USA, Black Star/Detroit Free Press.
Iraq, February 1991.



1991년도 이라크전쟁.



1992년
James Nachtwey, USA, Magnum Photos, USA for Liberation, France.
Bardera, Somalia, November 1992



소말리아의 기근.




1993년
Larry Towell, Canada, Magnum Photos.
Gaza City, Palestinian Territories, March 1993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


1994년
James Nachtwey, USA, Magnum Photos for Time.
Rwanda, June 1994.



르완다 인종청소극. 후트족의 극우민병대에 의해 고문을 받은 투치족의 청년.



1995년
Lucian Perkins, USA, The Washington Post.
Chechnya, May 1995.



체첸의 피난민 차량




1996년
Francesco Zizola, Italy, Agenzia Contrasto.
Kuito, Angola, 1996.



앙골라 내전으로 인해 지뢰피해를 받은 아이들


1997년
Hocine, Algeria, Agence France-Presse.
Algiers, Algeria, 23 September 1997.



알제리의 대학살 사건



1998년
Dayna Smith, USA, The Washington Post.
Izbica, Kosovo, Yugoslavia, 6 November 1998.



코소보 해방군을 남편으로둔 아내가 남편의 장례식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1999년
Claus Bjørn Larsen, Denmark, Berlingske Tidende.
Kukes, Albania, April 1999.



코소보전쟁-이슬람을 믿는 코소보주민들과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들과의 전쟁.




2000년
Lara Jo Regan, USA, for Life.
Texas, USA, 2000.



미국에 불법 이민 온 멕시코 가족


2001년
Erik Refner, Denmark, for Berlingske Tidende.
Jalozai refugee camp, Pakistan, juni 2001



파키스탄의 난민캠프에서 탈수증으로 숨을 거둔 아이




2002년
Eric Grigorian, Armenia/USA, Polaris Images.
Qazvin Province, Iran, 23 June 2002.



이란의 지진 피해 현장. 아버지를 잃은 아이.




2003년
Jean-Marc Bouju, France, The Associated Press.
An Najaf, Iraq, 31 March 2003. Iraqi man



이라크 전쟁 당시 나자프시에서 포로가된 이라크인 아버지와 아들.

2004년
>Arko Datta, India, Reuters, 2004.
Cuddalore, India, Tamil Nadu, 28 December 2004



2004년 쓰나미가 강타한 인도네시아와 인도


2005년
Finbarr O'Reilly, Canada, Reuters.
Mother and child at emergency feeding center, Tahoua, Niger, 1 August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니제르의 한 비상급식소

2006년
Spencer Platt, USA, Getty Images.
Young Lebanese drive through devastated neighborhood of South Beirut, 15 August



폭격을 당한 레바논 베이루트의 외곽지역에 나타난 부유층 자녀들.  



2007년
Tim Hetherington, UK for Vanity Fair.
American soldier resting at bunker, Korengal Valley, Afghanistan, 16 September



  아프카니스탄의 Korengal계곡 전투의 미군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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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오후 비가 내려 몹시 걱정을 했다.

강압적인 폭력 진압과 종교인들의 참여에 뒤 이은 ''국민 촛불 대행진'이 저녁 6시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청와대에서 날마다 기우제를 지낸다더니......) 다행히 오후 4시 무렵부터 비가 멎었다.

5시 50분에 시청앞에 도착해 상황을 살펴보니 덕수궁 대한문 앞의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태평로 쪽과 시청 앞 광장에 한 무리의 시민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남대문 방향의 큰 길도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며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지난 6.10에는 조금 못 미치는 규모였지만 정말 굉장했다. 짭새 추산 5만 주최측 추산 50만 명. 그러니 대략 (둘을 더해서 이로 나누고 조금 더 더하면) 30만명 가량은 족히 될 터였다.

곳곳에서 나눠주는 촛불과 정권반대 광고물을 들고, '7.30 서울시 교육감 직선' 공고 스티커를 티셔츠 뒤에 붙이고 나는 또 촛불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의 그 '헌법 제1조'로 시작해(집회 내내 한 열 번은 들었다 ㅜㅠ 이제 좀 다른 걸 듣고 싶다) '님을 위한 행진곡' '재협상가' 등이 이어지고 (섭외된) 청소년 발언(청소년 <다함께>란다. 난 청소년도 <다함께>가 있는지 몰랐다 ㅠㅜ), 원불교 교단 발언(전날의 불교 다음으로 오늘 타자는 원불교, 사제단이 가장 재미있고 장엄했으며 그 다음부터 효과 급락, 이날 원불교계의 길고 지루한 낭독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민주노총, 전교조 등 많은 단체와 집단이 무대위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무대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날은 좀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예고된대로 '국민승리' 선언이 5분을 멀다하고 이어졌다. 특히 두 명의 사회자 중 최광기가 '국민승리'라는 수사를 많이 활용했는데. 그녀는 그저 "국민이 승리했다!"라고만 고함칠 뿐 그 뒤에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대했지만 끝까지 없었다. 그로 인한 혼란은 바로 드러났다. 이날 집회 직후 어제까지는 국민대책회의가 "촛불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또 오늘 오전에 바로 말을 바꿔 "피로감의 극대화와 집회의 동력상실로 촛불을 계속이어가야 할지 논의중"이라고 발표해 버렸다. (이런 된장. 이 새끼들 어쩌자는 거야.)

나는 '국민승리' 선언이 며칠전부터 이어져 온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라"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으로 알고 있어 기분이 좀 께름칙했다. 다행히 그런 뉘앙스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뒷맛이 좋지 않았다. 물론 싸움에서 승리의 감각은 무척 소중하고 필요하지만 그것이 과포화되었을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우리는 지난 역사(1960년과 1987년)를 통해서 충분히 겪어왔다. 나의 우려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지난 역사적 경험과 이번 촛불집회를 그대로 포개어 사고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고자 한 것이 지난 역사적 저항들의 모티프였다면 이번 촛불 집회는 시스템 자체의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시도니까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다) 그래도 강력한 제도와 권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물스물 기어나와 기어코 승리의 달콤함을 사취해간다. 이것을 경계하자는 이야기다.

대책위 측에서 '국민승리'를 외쳐 다수의 시민들을 고무해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지만 나는 여전히 조금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날의 더위와 습도는 끔찍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엄청나게 모여든 시민들에게 어떤 성취감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낳은 '국민승리' 선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의 '국민승리'는 정권과 보수진영의 "집으로 들어가라"에 대한 진보진영 선생님들의 다른 버전 "집으로 들어가라"로 들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처럼 게으른 촛불이 주장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나는 "좀 더 계속해야한다"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명한 태도인 것 같다.

9시가 될 무렵 행진은 시작되었다. 남대문쪽으로 방향을 잡아 을지로 종각을 지나 다시 시청앞 광장으로 모이는 코스였다. 행진의 규모는 대단했다. 행진중 나는 그날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목격했다. 신세계 본점 앞과 한국은행 사이의 분수대 위에 올라 수십명이 '브이 포 벤데타" 코스프레를 한채 침묵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행진의 절정 순간 이들이 쏘아올린 폭죽은 정말이지 이날 가장 아름답고 시원한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그들을 '저승사자'(?)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지옥으로 잡아가라"고 고함치는 분들이 많았다. 이것은 오해로 인한 가외의 효과인 셈이다.^^ ) 그들은 완전 통제사회가 된 미래 영국의 반정부 투쟁의 상징인 '브이포 벤데타'를 코스튬 플레이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알아보기로 기특하게도 어떤 인터넷 동호회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특별히 의상도 해외에 주문해 갖춰입고 나온 것이라는 데 이날 끔찍한 더위 속에서 정말 고생했겠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나는 촛불집회의 모습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본다.

촛불집회는 밤새 평화롭게 이어졌다. 며칠전부터 경찰에 의해 시민들은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지만 시민들은 그 광장을 폭력으로 되찾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충돌이 없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계속 밀려나 자리를 잃어버릴까봐 조금 걱정도 되었다. 마침 오늘 아침 대책회의와 종교인들이 시청앞의 천막을 뜯고 나가거나 내쫒겼다는데 앞으로 삼성본관 뒤쪽까지 밀려려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서울시의회를 내줬으니까 남대문 앞까지 밀려나는 것도 전혀 예상못할 바가 아니다.

나는 누차 밝혀왔지만 이번 촛불집회가 거대한 승리의 일환으로 마지막에 모두가 패배했다고 할 수 있는 순간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언젠가 들어가야 할 촛불이고 그 명분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논의된 대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의 의미를 가지고 나와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없게 옛날 노래와 똑같은 발언만 하는 그분들의 '국민승리' 선언은 그 사람들만 집으로 돌아가는 명분이 될 것이다. (온갖 재야인사들의 시국선언과 최장집을 위시한 선생님들의 걱정과 발언들을 상기하자!) 이제 학기말고사도 끝나가고 곧 중고등학생들의 방학이다. 이제 또 어떤 새로운 촛불이 타오를지 모르는 일이다. 그날 여러 시민들에게 감동을 준 '브이 포 벤데타'의 퍼포먼스처럼 새로운 도전과 첨단의 저항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파시즘 정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미학을 정치화하는 것 뿐이다. 온갖 예술적 감성과 행위들을 정치적 감각으로 예민하게 다듬어 내보이자.

* 보태기

그리고 그날 최광기는 또 엄청나게 어려운 주문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크게 말하기도 했다. "화물차 운전하시는 분들 미국산 쇠고기 나르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하는 가게 팔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생활과 윤리의 문제를 수반하는 고민이어야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나는 그것을 사거나 먹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너는 그것을 옮기거나 팔지 말아라"라고 요구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나는 지난 대선때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도 현재 '반 이명박' 구도에 설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먹고사는 일에 쇠고기가 걸쳐 있는 사람들도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을 전선에서 이탈하게 하는가. 그게 단순히 최광기의 개인적인 발언이었다면 별반 상관없겠지만 국민 대책회의쪽의 공식화된 의견이라면 나는 분명히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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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보태기에서 더 크게 공감했어요. 추천이에요.

나비80 2008-07-0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일전에 마노아 님께서 보내주신 책도 받은 인연이 있는데(기억하실지...) 이렇게 또 인사드리네요. ^^ 뭘 좀 잘 하려고 하는 일에 계속 딴죽만 걸려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걱정인데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문제에 생활의 문제가 개입될 때가 가장 어렵죠. 앞으로 넘기 어려운 고비들은 계속해서 출현할텐데 걱정입니다. 제도가 전면화 될 때 무너지는 건 가장 약한 고리일텐데 말이죠.

마노아 2008-07-07 19:42   좋아요 0 | URL
<오디세이아>, <사랑해 파리>, <소년의 눈동자 1939>, <마키아벨리 어록>
요렇게 고르셨어요^^
근데 그 후 제가 처음 남긴 댓글이란 말인가요? 어머 세상에! 줄곧 즐찾이었는데 말이죵^^;;;;

나비80 2008-07-0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맞습니다.
사실 제가 남의 집에 몰래몰래 드나드는 버릇이 있어서 흔적을 잘 남기지 않습니다.
체형은 곰인데 하는짓은 고양이랍니다. *^^*

네꼬 2008-07-08 15:42   좋아요 0 | URL
뭣이? 행동은 고양이라고요? =^^=

*
저도 저 승리 얘기 좀 그만 했음 좋겠다, 귀 따가워 죽겠네, 그리고 발언 시간 좀 정해놓고 하면 안 돼? 애들은 짧게 잘도 하는데 "우리 방학했다. 긴장해라" 이렇게, 노래 좀 바꿔 주지.... 등등으로 입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에 추천을 안 할 수가 없어요.

:)

나비80 2008-07-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앞에서 고양이 주름 잡았네요.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은 어떤 영향력에도 구속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좀 철없는 이야기 같지만 저는 그래도 계속 그 상상력을 지지할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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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 트랙백 이벤트 10문 10답]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주로 우리 문학 중 소설과 비평을 많이 읽습니다. 그중 법-폭력에 의해 인간의 예외상태가 상례화된 사회속에서 고투하는 벌거벗은 삶들을 다루고 있는 책들을 좋아합니다.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과 박상륭의 <잡설품>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 현대 소설가 중에서는 윤대녕과 김훈을,  시인으로는 기형도를 좋아합니다.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소설가는 백가흠과 박형서이며 시인으로는 김경주와 김민정이 있습니다.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박민규의 <핑퐁>에 나오는 '마오이'와 '못'을 좋아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듯 붙들려 있는, 배제되어 오히려 포섭된 왕따들이 지구를 걸고 한 판 탁구 시합을 하게되는 장면은 어떤 기막힌 알레고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보고 있자면 법-폭력에 의해 밀려난 인간-동물들의 삶이 떠오릅니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비슷한 인물은 홍상수의 영화속에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비슷한 캐릭터를 찾자면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에 나오는 인물들 쯤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야구하는 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와 <조대리의 트렁크>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을 강제로 읽히고 싶습니다.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참말로 좋은 날>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중 "죽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한국문학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와 사랑을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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