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용산 참사를 연거푸 겪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인간의 법이란 언제나 약자들이 따라야 하는 강자들의 법이며 

이 법을 지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리라. 

국가라는 보편 제도로 환원시켜 생각해 보아도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이기적 민족주의와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흉포함과 자만심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가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적으로 빚어지고있는 인간 사냥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핏빛 개발 욕망들 앞에서 '휴머니즘'이란 말은 얼마나 치졸하고 조잡한 수사어에 불과한가.

생물학적 종의 기준에서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묶여야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없이 졸렬한 이 정권의 조잡한 술수는 대의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마저 들게 만든다. 

이명박 정권의 남은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정치적 시간 감각을 바꿔서라도 저들을 끌어내리고 싶다.   

오늘은 "3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가 한없이 지루하고 피곤했다"던 위대한 어청수가 더욱 위대한 후임 김석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켜세우고 떠난 날이다.  

또 바로 오늘 그나마 신망하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역시 정권의 외압에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동걸 그가 남긴 이임사는 이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염없이 밥벌이를 이어가야 하는 오늘의 내가 슬프고 아프다.   

이동걸 원장 이임사 전문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

저는 이제 한국금융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 만 9년, 원장의 직을 맡은 지 1년 반, 여러분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며 때로는 같이 즐거워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 하고 때로는 같이 분개하기도 했던 값진 추억을 갖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금융연구원이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정책 두뇌집단(Think Tank)으로, 또한 국내의 독보적인 금융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떠납니다.

1년 반 전, 제가 원장에 취임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금융연구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자고. 금융연구원의 발전은 국내 금융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원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원장의 몫은 여러분들이 소신껏 오직 여러분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해 싸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입이 되고, 때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반 원장으로서의 제 몫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임기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는 말입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겠지요.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하겠지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환경파괴의 영향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는 외부불경제성(external diseconomies)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사금고화도 금융체제 위험(systemic risk)을 높이는 외부불경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파괴된 환경은 사후 감독이나 제재로 쉽게 복구되지 않듯이 은행 사금고화의 폐해도 현 정부와 일부 보수 금융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후 감독이나 제제를 강화한다고 쉽게 방지되거나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합니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의 경제위기로 키우고 있는 정부의 거듭된 오판과 실정이 또 다른 사례가 되겠지요. 전국민이 합심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총력 대응해도 부족할 때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의지가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럴 때 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나는 제 심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double standard)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원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장의 직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제 후임으로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분이 원장으로 오시든 여러분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조용히 연구에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에도 연구원을 이끌어 왔던 것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 역할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금융연구원에 대한 외부의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래야만 우리 금융연구원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한동안 쉽지 않은 시절이 금융연구원에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이 세상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금융연구원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비록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는 하지만 동료 여러분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한 평생을 같이 하듯 저는 여러분과 평생을 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로서 또한 선배로서 저는 금융연구원을 떠나서도 금융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금융연구자들의 품으로 되찾을 때까지 .....

2009년 1월 29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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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3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4년이나 남았다는게 실감이 안 날 지경이에요. 이럴 땐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지...

나비80 2009-01-3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하고 300일입니다. 고달프고 피로한 가운데서도 무언가 새로운 전복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인듯 싶습니다.

2009-06-2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mories of Sponge 2008

2008/12/18~12/31(스폰지하우스 압구정, 광화문, 중앙)



 
상영작

1.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2007)

2. 엔젤 (Angel, 2007)

3. 빨간 풍선 (Flight Of The Red Balloon, 2007)

4. 아름답다 (Beautiful, 2007) 

5. 밤과 낮 (Night And Day, 2007) 

6. 새드 배케이션 (Sad Vacation, 2007) 

7.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8. 식코 (Sicko, 2007) 

9. 경축! 우리사랑 (Viva! Our love, 2008)

10.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11.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12. 로맨스 (Romance Of Astrea And Celadon, 2007)

13.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2007) 

14.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 (Welcome to the Quiet Room, 2007)

15. 텐텐 (Adrift In Tokyo, 2007)

16. 영화는 영화다 (Rough Cut, 2008)

17. 멋진 하루 (My Dear Enemy, 2008) 

18. 비몽 (Sad dream, 2008)

19. 도쿄! (Tokyo!, 2008)

20.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상영 시간표는 http://cafe.naver.com/spongehouse/19929

* 스폰지하우스에서도 못다본 영화를 볼 수 있네요. 이미 시작한 지 며칠 지났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가까운 스폰지하우스에서 꼭 들 챙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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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8-12-2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거 하는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나비80 2008-12-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거 많이 하면 좋죠.

BRINY 2008-12-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말에 서울 가는 데 챙겨야겠어요~~

나비80 2008-12-2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외에도 곳곳에서 이런 기획이 많아지면 좋을텐데 말이죠.^^

치니 2008-12-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 본 영화들 : 빨간 풍선,밤과 낮, 아비정전, 경축!우리사랑,아임 낫 데어, 텐텐, 멋진하루, 비몽이 있습니다. 1등은 경축!우리사랑으로 할래요. 재미로 치면 최고였으니까.
안 봤는데 보고 싶은 영화들은, 식코랑 영화는영화다. 식코는 어쩐지 겁이 나서 미루고 영화는영화다는 생각보다 빨리 내려가서 못봤네요.

그나저나 소이부답님, 너무 오랜만이셔요! 반가워라. :)

나비80 2008-12-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보셨네요. 저는 몇 편 안됩니다. 더 야속한건 있는줄도 몰랐던 영화가 많다는 사실.
치니 님 저도 무지하게 많이 반갑습니다. 헤헤.
연말 잘 보내시고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2008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2008/12/24~2009/01/14(동숭동 하이퍼텍나다)




상영작

1.  갓파쿠와 여름방학을 (河童のクゥと夏休み: Summer Days With Coo, 2007)

2. 구구는 고양이다(グ-グ-だって猫である, 2008)

3. 굿'바이(おくりびと: Departures, 2008)

4. 너를 보내는 숲 (The Mourning Forest, 殯の森: The Forest Of Mogari, 2007)

5. 누들 (Noodle, 2007)

6. 라벤더의 연인들(Ladies In Lavender, 2004)

7. 레몬트리 (Lemon Tree, Etz Limon, 2008)

8. 매직아워 (ザ マジックアワ: The Magic Hour, 2008)

9. 멋진하루(My Dear Enemy, 2008)

10.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2008)

11. 밴드비지트 :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The Band's Visit, Bikur Ha-Tizmoret, 2007)

12. 비투스 (Vitus, 2006)

13. 사과 (Sa-Kwa, 2005)

14.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2007)

15. 소년, 소년을 만나다 (Boy meet boy, 2008)

16. 소리아이 (Lineage Of The Voice, 2008)

17.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18.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 2006)

19. 우린 액션 배우다 (2008)

20.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2007)

21. 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2007)

22. 젤리 피쉬 (Jellyfish, Meduzot, 2007)

23. 존 레논 컨피덴셜 (The U.S. Vs. John Lennon, 2006)

24. 컨트롤 (Control, 2007)

25.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26. 피아노, 솔로 (Piano, Solo, 2007)

27. 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28. 할람 포 (Hallam Foe, 2007)

29.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Bliss, Emmas Gluck, 2006)

30. 4개월,3주... 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2007)

31. 이리 (2008)

32. 중경 (2007) 

상영 시간표는 cafe.naver.com/inada/1685 

* 매년 한해가 지날 무렵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영화들.

틈을 내 챙겨보지 못했지만 꼭 보고싶었던 영화.

이미 보았지만 한번쯤 더 보고 싶은 영화.

2008 하이퍼텍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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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보 감사해요! 집도 가까운데 몇 편은 꼭 봐야겠어요!

나비80 2008-12-2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하이퍼텍나다 가까운 곳에 있어 종종 보러 갈겁니다.
잘하면 마노아 님 뒤통수도 볼 수 있겠는걸요. ^^

치니 2008-12-2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서는 구구는 고양이다, 멋진 하루, 아임 낫 데어, 잠수종과 나비, 존레논 컨피덴셜을 보았는데요, 구구는 고양이다 완전 비추입니다. 이 감독의 최고점은 아무래도 지나버렸나봐요. 가장 재미나게 본 것은 멋진하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존레논 컨피덴셜이네요. 몰랐던 존레논의 진면목을 알아버려서 기분이 좋았어요.
예매해둔 영화는 샤인 어 라이트. 공연 보러가는 기분이에요 헷.

나비80 2008-12-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몇 편은 이미 예매해두었고 <구구는 고양이다>도 목록에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려해봐야겠군요. ㅋㅋ
올 한해 좋은 영화들 중에 음악을 소재로, 혹은 테마로 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
 

 

 

 

 

 

 

Seminar "Tractatus" 두 번째 모임

주최 : 새물결 출판사 ‘What's up 총서’ 기획위원


일시 : 2008년 11월6일 (목) 18:00~


장소 : <필름 포럼> 지하 1층 세미나실

(이대 후문 하늬솔 빌딩 A동, www.filmforum.co.kr)

 

󰡔독일 비애극의 원천󰡕 : 벤야민과 알레고리 이론

- 󰡔독일 비애극의 원천󰡕 출간 기념 세미나 -


- 발표 : 조만영 (역자)



이제야 발터 벤야민이 진정으로 도래하는 듯하다. 1910-20년대 초의

언어론, 폭력론, 신화-운명론과 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말에 이르는

자본주의-도시론의 한 가운데에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라는 걸작이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전개된 벤야민의 알레고리론과 바로크 주권론을

참조하지 않고 벤야민이라는 희귀한 사상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 저작의 번역이라는 난해하고도

고통스러운 작업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벤야민의 사유의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신 조만영 선생님을 모시고 What's up 총서 기획위원들의

질의와 토의를 중심으로 벤야민에 대한 진정한 ‘다시’ 읽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사회 : 한보희


토론 : What's up 기획위원

 

* 지난 달 1차 세미나에서는 고려대의 김항 선생이 벤야민, 슈미트, 데리다, 아감벤을 잇는 주권국가의 법-폭력의 개념과 구성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이제 과연 근대국민국가를 넘어 주권국가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시기이다. 

* 최근 가장 강력한 번역서를 의욕적으로 출간하고 있는 <새물결 What's up 총서 기획위원들>이 마련한 세미나가 두번째로 열린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깊이 있는 철학과 사유를 접할 수 있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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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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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선우의 첫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는 전설적인 무용수 최승희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승희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남북 분단의 질곡을 관통하며 화려한 삶과 남루한 삶을 수없이 교차하며 반복한 무용 예술가이다. 그녀는 가난한 환경에서 조선 최고의 무용수, 혹은 동양 최고의 무용 예술가로 수직 상승하는 모던 여성이자 늘 수직 하강의 위험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정치적 감시 대상 혹은 대중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시켜 줘야 하는 시선과 응시의 대상이었다. 더해 남북 분단 이후에도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알력에 의해 그녀의 거취는 늘 불안했으며 안온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자동적으로 개인이 아닌 조선 피식민의 삶을 대표하는 여성 혹은 조선 민중이었으며 해방 이후까지 시간을 뛰어 넘어 늘 소비되는 상품이었다.


그녀의 삶에 유난히 정치적 덧칠이 많이 가해지는 까닭은 권력 혹은 국가가 예술을 통해 정치를 전유하려는 끊임없는 욕망이 투사된 결과이다. 소설 속에도 잘 드러나 있듯 최승희는 일평생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부여받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 이상으로 그녀의 삶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춤에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의 욕망과 제국을 넘어서려는 식민지 조선의 욕망, 그녀를 온전히 품고 제국의 정치적 꼭두각시로 세우려는 제국의 욕망 등등.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진 다층적이고도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감옥에서도 자신의 춤을 늘 발전시켰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일단 소설 속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갈등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사이에서 그녀를 두고 벌이는 경합 관계이다. 한편에선 무기가 되어 초월하길 바라고 한편에선 점유하여 방어하려는 이 다툼 속에서 최승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보다 양쪽을 봉합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일본의 이시이 선생의 충실하면서도 발칙한 제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제국 일본 권력의 집요한 견제와 감시 속에서도 때로는 ‘샤이쇼키’로, 때로는 세계적 무용가로 얼굴을 바꾸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일정 부분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최승희가 식민지 조선의 표상이 되는 경우이다. 자기 검열을 통해 절대 금기시 했던 조선춤을 결국 내지의 조선인 집단 거주지에서 배운다거나 조선인 관객들의 열띤 호응에 반응하며 따뜻하게 응대해주는 모습 등은 최승희에 대한 평가를 복잡하고도 어렵게 만든다. 사실 이런 효과는 작가 김선우가 최승희의 삶을 소설에 충실하게 반영했다기 보다 일종의 판타지로 성공적으로 재구성해낸 결과에서 기인한다.


 

  물론 김선우가 오랜 시간 동안 방대한 자료조사와 검증 작업을 통해 최승희를 확인 가능한 적재적소에 위치시킨 노력의 흔적은 충분히 엿보인다. 그러니까 이것은 김선우가 실존 인물을 다루는데 있어 역사와 허구 사이의 간격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전혀 아니며 그녀의 소설적 감각이 이미 대중독자들의 기호를 예민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놀라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 최고의 근대 무용가 최승희라는 판타지는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으로 완성(되야만)된다. 사실 이 같은 봉합의 판타지는 대중들이 가장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식민지적 주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대중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절대 윤리의 감각을 보여주는 역사 속의 인물은 늘 너무 무겁다. 또한 날것으로 드러나는 비루한 굴종과 협력의 역사는 너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아이덴티티와 제국 일본의 시민권 사이에게 분열하고 갈등하며 개인의 욕망을 통해 그것을 슬기롭게 조정하는 현명한 근대 여성 최승희의 삶이야말로 공교롭게도 가장 리얼한 판타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낙차 큰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위태로운 예술가의 삶은 그녀야말로 진정 ‘근대의 여성’이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그녀의 삶이 참조하는 단위명제 즉 “나는 춤이다”라는 선언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존재를 삭제한 듯 붙들고 있는 최승희의 삶은 식민지적 주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기 규율이며 윤리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춤이 되어 살아가는 하나의 예술의 완성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놓여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춤에 대한 욕망은 정치, 경제적 부침의 결과에 따른 조건과 처지를 항상 초월하기 때문에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 혹은 근대의 춤꾼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른다. 김선우의 소설 속에도 가장 잘 표현된 것이 바로 이러한 최승희의 욕망일 것이다. 

  식민 지배자가 부과하는 규제와 규율 속에 있었던 피식민지 마이너리티 인간들은 자신을 정치적인 주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이들이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역설적이지만 세계사의 보편이자 주체로 정립되어 간다고 판단된 식민 모국의 담론을 내면화하는 방식, 달리 말하면 제국의 충실한 신민이 되는 것이 곧 주체를 형성하는 방식이 되는 역설이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용어가 허용된다면 우리는 이 역설적인 주체성을 ‘식민지적 주체성(colonial subjectivity)’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희는 이러한 식민지적 주체의 고투를 온 삶으로 보여준 인물인 셈이다.


  사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좀 특이한 면모를 보여준다. 시간을 분절하여 순행과 역순행을 반복 교차시키는 방식은 소설의 말미가 앞머리와 이어져 최승희를 둘러싼 각 인물들의 욕망이 계속해서 뒤바뀌고 갱신되며 덧보태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작가는 최승희가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그녀를 3인칭으로 돌려 세우고 그녀 주변의 인물들에게 각 챕터별로 1인칭 ‘나’의 시점을 골고루 배분해 소설속의 형식만으로도 그녀를 무대 위의 춤꾼으로 세우는 효과를 발휘한다. 최승희는 언제나 ‘내’가 아닌 채 늘 관찰되고 소비되는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욕망을 견실하게 지켜내는 여성이다.그녀를 놓고 벌이는 온갖 ‘나’들의 다툼은 최승희 자신의 욕망을 늘 초과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분열된 채 1인칭의 직접적 감정 토로로 서술되어 있다. 때문에 이런 용어가 가능하다면 이 작품의 시점은 한국 소설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1-3인칭 혼합 주인공 시점’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시인인 그녀의 산문 문장은 그녀의 시만큼 조촐하면서도 미려하다. 또박또박한 단문과 감각적 쉼표의 배치는 줄글의 서사감과 운문의 속도감을 모두 획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또한 거의 모든 감각이 공감각으로 처리될 만큼 그녀의 감각 활용은 단연 돋보인다. 시인 출신의 소설가들이 줄곧 범하기 쉬운 유장한(?) 장문의 유혹을 이겨낸 작가에게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현대적인 청신함을 기대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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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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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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