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은 흥미롭다. 현대사회의 소비는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 상품(대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유명 광고 모델(매개자)이 쓰는 것을 따라가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욕망에는 전염성마저 있다고 한다. 정당의 정강정책(대상)보다는 정당의 지역성(매개자)을 보고 투표권을 ‘소비’하는 한국 유권자들의 ‘지역감정’도 이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싶다.

 

귀족적 품위를 뜻하는 'distinction'은 차별, 구별을 뜻한다. 귀족이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차이’이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다. 부하 직원이 외제차를 타면 자신은 소형 국산차를 사용함으로써 차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아래 계층과 구별되는 차이의 효과 그 하나이고, 돈 많은 사람이 소박하고 겸손하기까지 하여 서민에게 친근감을 준다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그렇다면 거부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만나 10달러대의 검소한 식사를 한 것도 과소소비(under-consumption)를 통한 차별화 시도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서울대 폐지론 주장자들을 한국의 ‘주류’로 간주하는 것은 생뚱맞다(119쪽). 이 같은 인식 오류는 ‘지적 반(反)소비현상’일까(103쪽)? 아니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분리’일까(187쪽)? ‘잃어버린 10년’에 방향감각을 잃은 이 시대 ‘주류’ 지식인의 어지러운 내면의 일단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미덕도 덤으로 갖춘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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