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과 닫힘 - 인문학적 상상을 통한 종교문화 읽기
정진홍 지음 / 산처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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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라는 말은 백 년 전만 해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한 말로 도입되었다. ‘religion’은 서양의 중세 초기에 새롭게 출현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 ‘religion’을 낳은 서양에서 ‘종교란 그리스도교’이고, ‘종교인이란 그리스도교 교인’이었다. 서양에서의 ‘종교’라는 개념은 이렇게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종교란 오직 그리스도교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서양의 종교개념은 종교란 오직 그리스도교 밖에 없다는 주장의 확산을 낳았고, 우리 역시 그 확산의 수혜자로 종교라는 개념을 수용했다. 그 결과 종교는 닫힌 것이 되고 말았다.

원로 종교학자인 정진홍 교수가 독특한 사유로 종교문화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종교라는 개념이 곧 종교는 아니라고 말한다. 개념화된 사물은 이미 ‘경험적 실재’가 아니며, 단지 ‘개념적 실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약한 것은 이런 곡절을 거쳐 생성된 ‘개념’이 스스로 ‘경험’을 재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가 현실을 규정하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종교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개념’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종교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종교라는 현상이 존재하게 된 것은 경험주체의 ‘경험’이 있어 가능한 것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험주체들, 즉 다양한 종교인들의 자기주장을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의 막힌 장벽을 활짝 열고 평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제시한 ‘인문학적 상상을 통해 종교문화에 다가가기’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단, 몽매주의가 당당하게 종교계의 한 축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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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온 2014-09-1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수업 안 듣고 뭐 했었나 싶습니다. 들으셨다니 부럽네요ㅎㅎ 책 읽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의 지적 깊이가 느껴집니다.